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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츠 모닝와이드] 아버지, 저 왜 이러죠?…배리 본즈 이야기

기사입력 2008.07.15 02:25 / 기사수정 2008.07.15 02:25

조영준 기자

Sports Essay - 아버지, 저 왜 이러죠?(배리 본즈 이야기)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0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는 리그 최다 승률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와일드카드로 진출한 뉴욕 메츠와 징검 승부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박빙의 승부가 계속 이어질 때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자이언츠의 새로운 홈구장인 퍼시픽 벨파크(현 AT&T 파크)가 개장한 해이기도 했던 2000년에 본즈가 기록한 홈런은 본인의 단일시즌 최고 홈런 개수인 49개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홈구장은 우측 외야가 항만으로 바로 연결돼 있었고 본즈는 이곳으로 홈런을 날려 '스플레쉬 홈런'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켰습니다.

홈구장을 가득 메운 자이언츠의 팬들은 연이어 배리! 배리!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루상에는 역전주자가 진루해 있었고 본즈의 한방이면 역전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즈는 투수와의 수 싸움에서 계속 이기나 싶더니 마지막 결정구에 손을 갖다대지도 못하고 삼진아웃 당했습니다.

스스로도 심판이 삼진아웃을 외치기 전에 매우 아쉬워하며 타석을 벗어났었습니다. 피츠버그 시절부터 포스트시즌에만 들어서면 물방망이가 되는 징크스를 안고 있던 본즈는 2000년 디비전시리즈에서도 그의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었습니다.

본즈가 부진했던 샌프란시스코는 결국 뉴욕 메츠에게 패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리 본즈는 포스트시즌에서 자신이 부진할 때마다 가장 미안하게 생각했던 이는 팬들이 아닌 아버지 바비 본즈였습니다.

1964년, 18세였던 바비 본즈는 마이너리그의 유망주였습니다. 그런데 18세의 어린 나이에 아들을 얻게 되었고 그의 이름은 배리 라마 본즈였습니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애증을 받게 되는 선수가 비로소 세상에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바비 본즈는 일찍 얻은 아들을 너무나 끔찍하게 여겼으며 집은 물론, 경기장에도 늘 함께하며 좀처럼 아들과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배리가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 더욱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던 바비 본즈는 배리에게 철저하게 왼손으로 타격을 하도록 조기 교육을 시켰으며 자신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메이저리거가 되자 팀의 간판급 선수였던 윌리 메이스에게 배리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버지와 윌리 메이스의 격려와 지원 속에 무럭무럭 성장한 배리 본즈는 타고난 재능도 뛰어났지만 더할 수 없던 두 스승을 어릴 적부터 곁에 둔 덕에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본즈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최고가 돼야만 하는 의무감을 무의식적으로 강요받으며 자랐습니다. 만약 본즈가 조금이라도 재능이 부족해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됐다면 지금보다 훨씬 인간미가 넘치고 겸손한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즈는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기 위한 재능도 완벽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인 바비 본즈의 조기교육도 한몫을 했지만 리틀 야구 시절부터 볼을 때려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고 타격만 잘하는 것이 아닌 주루와 수비까지 능수능란하게 습득해 나갔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본즈는 바비 본즈와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윌리 메이스의 지도를 어릴 적부터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환경 속에서 자란 본즈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선수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어디를 가도 나만큼 잘하는 선수가 드물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의식하고 성장한 것입니다.

본즈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것 때문에 어려서부터 거만함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늘 다른 동료와 원만하게 사귀지 못했었습니다. 이런 본즈를 응원했던 이는 역시나 아버지인 바비 본즈였습니다. 배리가 다른 선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바비 본즈는 “내 아들은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고 특별하다. 난 비범한 아들에게서 긍지를 느낀다.”라고 자신의 아들을 감쌌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지나치게 넘치면 자식을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바비 본즈의 자식 사랑은 긍정적인 영향도 끼쳤지만 잘못된 자식교육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아들의 재능을 칭찬해주고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것은 필요했지만 올바른 인성을 기르는 교육에는 ‘채찍’ 대신 ‘당근’이 넘쳐났던 바비 본즈의 교육은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거만함의 표본으로 여겨지고 있는 배리 본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자신이 특별하다고 대우를 받으며 성장한 배리 본즈는 메이저리그에 입성해서도 늘 자신이 최고의 위치에 있는 선수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표명했습니다. 늘 자신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으니 다른 선수들에 대한 배려와 팀의 융화에 녹아드는 행동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고 자신의 이미지를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기자들에게도 본즈의 건방진 태도는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기자들에 따라 본즈를 달리 해석하고 평가하는 이들도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프라이드가 강한 기자들은 하나같이 본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일례로 어느 기자는 본즈와 처음 만났을 때, 옆에 있었던 당시 피츠버그 파라이어츠 감독인 짐 릴랜드 감독이 앞으로 기자들과도 잘 소통을 해야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며 대면시켜 주자 본즈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등을 돌렸다고 합니다.

“내가 왜 이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거죠?”

그러나 본즈는 90년대에 MVP를 세 번이나 수상하고 96년엔 40-40클럽에 가입하는 등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며 리그를 평정했습니다. 아무리 언론과 사이가 안 좋아도 많은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최고의 타자로 주저 없이 배리 본즈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90년대에도 위력적이던 본즈의 실력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날렵하고 호리호리하던 체격은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2001년에 본즈가 기록했던 성적은 가히 경악할 정도입니다. 한 시즌 최다홈런기록은 73개의 홈런에 137타점, 0.328리의 타율에 0.863의 장타율, 그리고 177개의 볼넷은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2004년까지 믿기지 않는 기록을 양산한 본즈는 현 2008시즌에는 어느 팀들에게서도 선택받지 못한 '실업자'신세에 처해있습니다. 약물 복용 의혹과 위증혐의로 인해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남겼으며 이렇게 논란이 많은 선수를 안게 될 팀들은 지역 언론들의 반발과 팬들의 불만들을 거세게 당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현재 본즈는 최저연봉도 괜찮으니 받아주면 뛰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만 러브콜을 내미는 구단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2000년 뉴욕 메츠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무산시킨 본즈는 지금은 고인(바비 본즈는 2003년 8월 23일 작고.)이 된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 저 왜 이러죠?"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500홈런, 500도루를 성공시킨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는 존경과 애정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팬에게 미움과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이렇게 착잡한 현실 속에서 본즈는 또다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오직 네가 최고라고 줄기차게 대답하준 아버지는 지금의 본즈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요.

[사진 = sanfrancisco.giants.mlb.com]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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