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부산, 조은혜 기자) 2023년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한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은 올 시즌을 돌아볼 때면 늘 임찬규의 이름을 빼놓지 않는다. 임찬규는 5일 경기 전까지 28경기에 나서 132⅔이닝을 소화, 12승3패 1홀드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하며 팀 마운드의 중심을 잡고 우승에 이바지했다. '엘린이' 임찬규가 LG의 주축 투수로 한국시리즈라는 무대로 향하기까지. 올해 LG의 우승과 도달하지 못했던 지난 우승, 그리고 미래의 우승에 관한 임찬규의 장면들.
# "갑자기 다들 박수를 치더라고요"
10월 3일. 원정경기를 위해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 임찬규는 매직넘버가 걸린 다른 팀의 경기가 아닌 디즈니+의 <로키> 시리즈를 보고 있었다.
"그냥 일부러 안 봤어요. 솔직히 속마음으로는 오늘(4일) 경기장에서 하고 싶었어요. 초반 스코어만 조금 보고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들 박수를 치더라고요. 이어폰을 뺐죠. 웃으면서 '축하한다' 이러더라고요."
임찬규는 야구장에서 우승을 확정했다면 감정이 더 많이 올라왔을 거라고 말했다. 9월 27일 2위 KT 위즈와의 더블헤더, 이지강이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했던 10월 1일 두산전이 임찬규가 말하는 '감정이 오르는' 경기였다.
"1회부터 9회까지 가다 보면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잖아요. 매직넘버가 점점 줄면서 '이거 진짜 큰일났다. 무조건 울겠다' 그랬는데, 갑자기 버스에서 해가지고. 다들 휴게소에서 악수하고 축하한다고 그랬어요. 제 느낌으로는 실감이 좀 안 났어요. 이게 한 건가 싶기도 하고. 물론 일어나서 연락 받고 하면서 조금 더 느꼈죠."
# 10년 전의 기억과 함께
LG는 정확히 10년 전인 2013년, 11년 만의 포스트시즌에 성공하며 암흑기를 끊었다. 그리고 올해 LG는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만약 휴식일이 아니었다면, 경기를 끝내면서 우승을 확정했다면 감동은 더 피부로 와닿았을 터였다.
"그 이상일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 첫 가을야구에 들어갔을 때보다 많은 것들이 오겠다. (오)지환이 형이랑 (채)은성이 형, (유)강남이 형이랑도 통화를 했는데 되게 아쉽더라고요. 같이 고생했던 선수들이, 물론 잘 돼서 다른 팀에서 잘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도 생각이 나고 지금 있는 선수들이랑도 고생했던 것들이 생각나다 보니까 여러 가지가 오고간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끝나봐야 알 것 같아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드리자면 뭔가 없어요. 내일도 등판이 잡혀 있고, 아직까지는 안 끝났으니까. 되게 고대하고 기다렸는데, 아직 뭔가 남아 있는 느낌.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뭐 어쩌겠어, 네 공 던지는 것밖에"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면서 아쉽게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선수들과도 통화로나마 기쁨을 나눴다.
"(고)우석이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정)우영이랑도 연락을 했는데, 우석이가 '축하드립니다' 이러더라고. 다른 팀인 줄 알았어요. 어, 너도 축하한다."
이내 임찬규는 올 시즌 힘들었을, 또 지금도 조금은 힘들어 하고 있는 고우석의 마음을 헤아린다.
"우석이가 올해 저랑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마음고생을 되게 많이 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고. 아시안게임 갔는데 딱 첫 마디로 '너무 힘듭니다' 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되게, 저도 작년에 힘들어서 너무 많이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까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투수는 뭐 어쩌겠어, 마운드에서 네 공 하나 던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데. 그냥 묵묵히 던지다 보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너는 최고의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얘기가 흘러가더라고요. 결국에는 우석이가 잘했으면 좋겠고, 금메달 따서 스트레스 안 받고 좋은 모습으로 금의환향해서 한국시리즈까지 잘 던져줬으면 좋겠어요."
# 소년이 바라봤던 바로 그 자리
"진짜 그러니까 이게 뭔가 신난다, 이게 아니고 엄청 묵묵해지더라고요."
2002년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삼성은 우승 확정 백투백 홈런이라는 역대급 장면으로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았지만, LG팬들에게는 아프기만 한 기억. 그 쓰라림은 초등학생이었던 '엘린이' 임찬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이승엽 감독님이랑 마해영 선배님 끝내기 치면서 막 울었어요. 정확히 기억나요. 그거 다음 날 학교 안 간다고 그랬거든요. 선수들 이름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나는데, 그걸 보고 울던 제가 29년 만인 정규시즌 1등을 하고 이제 한국시리즈에 올라간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뭐라고 해야 될까, 안 믿겨졌어요."
"이 자체가 낭만인 것 같고, 어떻게 이보다 더 한 드라마가 있을까 싶어요. 그 드라마가 잘 끝나려면 잘 던지고 나서 생각을 해야겠지만, 일단은 그 이상의 드라마는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인생 살아가면서 이거보다 더 극한 상황이 올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한 구, 한 구를 던질 때 그 장면 하나하나를 다 남겨두고 싶어요."
# 그 전에, 규정이닝이라는 목표
임찬규는 규정이닝까지 11⅓이닝을 남겨두고 있다. 남은 등판 기회는 두 번.
"제가 한 달 정도 선발에서 빠져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이닝에 들어간다는 것도 의미가 있고 어차피 시즌이 끝나면 2~3주 정도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잘 던지고 마무리하고 싶어요. 끝까지 던질 생각입니다."
# 엘린이였던 임찬규가, 또 다른 엘린이들을 위해
"그 친구가 커서 LG에 입단할 때까지 우승이 없는 팀이 되면 안 되죠. 지금처럼 더 많은 감정이 끓어오르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자주 우승을 하고 반지를 끼는 그런 좋은 팀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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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