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2008 베이징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금메달 리스트 올하 하를란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 선수를 이기고도 악수를 거부하면서 실격 처리됐다.
하를란은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23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사브르 64강전에서 러시아 출신 안나 스미르노바와 경기를 펼쳤다.
하를란은 빼어난 기량을 과시하며 스미르노바를 15-7로 제압했지만 경기 종료 후 논란의 상황이 발생했다. 스미르노바는 하를란 쪽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했지만 하를란은 자신의 검을 내민 채 거리를 뒀고 악수를 하지 않은 채 피스트를 벗어났다.
스미르노바는 피스트에 의자를 놓고 앉아 한참 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않으며 항의의 뜻을 표현했다. 하를란은 스포츠맨 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실격됐다. 국제펜싱연맹(FIE) 경기 규정에는 경기 결과가 나온 뒤 두 선수가 악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하를란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만 4차례 우승을 차지한 우크라이나 최고의 스포츠 선수 중 한 명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여자 사브르 단체전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하를란은 실격 후 자신의 SNS에 "오늘은 무척 힘들면서도 중요한 날이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며 "그 선수(스미르노바)와 악수하기 싶지 않았고 그 마음대로 행동했다. 나를 실격시키려 한다고 들었을 땐 비명을 지를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심경을 전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는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세상이 변하는 만큼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실격 처리에 불만을 드러냈다.
히를란은 AFP 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FIE 회장이 악수 대신 검을 터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언했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절대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SNS에 "하를란은 공정하게 경쟁해 승리했고 위엄을 보여줬다. FIE가 그의 권리를 회복하고 계속 경기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며 "(스미르노바는) 공정한 경쟁에서 패했고 '악수 쇼'로 더티 플레이를 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 군대가 전장에서 행동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와 침공을 도운 벨라루스 국적 선수들은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 참가 금지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해부터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들이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국 소속의 개인 자격으로 출전할 수 있다. 국제펜싱연맹(FIE)은 5월 러시아 출신 선수 17명에게 이 자격을 부여했고, 6월 유럽선수권대회와 이번 대회 등에 러시아 출신의 중립국 개인 자격 선수가 출전했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러시아 혹은 벨라루스 선수들과 경기 뒤 인사를 거부하는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테니스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우크라이나의 마르타 코스튜크는 벨라루스 선수 빅토리야 아자란카(26위·벨라루스)를 상대해 세트스코어 0-2(2-6 3-6)로 패한 뒤 아자란카와 악수를 하는 대신 라켓을 맞대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코스튜크는 "아자란카는 훌륭한 선수지만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자기 나라의 행위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나는 악수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