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3.03 10:44 / 기사수정 2010.03.03 10:44
[엑스포츠뉴스/UTD 기자단=김지혜] 유병수를 비롯한 이근호, 최효진 등 신인선수 발굴에 남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올 시즌 선택은 남준재다.
인천 신인드래프트에 당당히 1순위로 입단한 남준재는 누굴까. 포털사이트에서 남준재를 검색해 보니, 아직은 간단한 프로필과 ‘유병수 친구’라는 것이 전부였다. 베일에 싸여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 1988년 4월 7일 (경상북도 경주)
- 183cm, 75kg
-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FC
- 대구 청구고 - 연세대학교
- 데뷔 2010년 인천 유나이티드 FC 입단
당차고, 흔들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 건강한 갈색 피부에, 날씬하게 빠진 팔과 다리, 그의 첫인상은 한창 열정에 불타오른 한 마리의 야생마 같았다.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럼없는 모습, 적극적인 마인드와, 위트 있는 말투, 그 누구라도 그를 직접 만나보면 바로 팬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등번호 10번 에이스
팀 내 에이스에게 부여한다는 등번호 10번, 그는 소위 명문고라 불리는 청구고에서 10번, 연세대에서도 등번호 10번을 달았다. 친구인 유병수 말로는, 스피드와 발기술이 좋은 '제2의 박주영'이라 불리던, 기대주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겸손하게 답변한다. "아니에요. 그때 청구고 선배인 주영이형이 한창 잘 하고 있었던 때라서 제가 그렇게 불리 운 거지, 뭐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만 뛰어다녔어요."
또한, 남준재는 대학 2학년 때 총 네 번의 연고전에서, 모두 결승골을 넣었다. 때문에 '연고전의 영웅'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또한 골 세리머니도 확실하게 해서 그를 기억하게 했는데…"결승골 넣고, 팬 앞으로 달려가서 위에 유니폼을 벗어 던졌어요. 항상 응원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거든요."
병수, 나의 고마운 선물
지난해 인천 드래프트1순위로 입단해서, 대단한 활약을 한 ‘인천의 호날두’ 유병수. 유병수의 절친이란 이야기에 친구의 활약이 부담되지 않느냐 물었더니, 오히려 고맙다고 답한다. "병수는 저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산이예요. 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생긴 거죠. 그게 병수라서 더욱 기분이 좋아요. 병수가 저한테는 친구이면서도, K-리그 선배잖아요, 조언도 많이 해주고 세세한 것 까지 잘 챙겨줘요. 저에게 있어 선물 같은 친구죠."
유병수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지낸 고향친구다. 다른 학교에서 서로 잘한다는 학생정도로 알고 있던 그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시 대표로, 전국 시도대항전에 처음으로 발을 맞춰보고 서로에게 반했다고 한다. 당시 투톱을 본 그들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 덕분인지 대구가 32년 만에 준우승을 했다고. "그때 정말 즐거웠어요. 병수도 그 때 엄청 잘했거든요. 둘이 발도 ‘아주 그냥’ 끝내주게 잘 맞고."
소꿉내기 친구가 성인이 되어, 운명같이 같은 팀에서 만났다. '절친'이면서, '라이벌'이기도 한 그들. "병수랑 저랑 휴가 때 고향에 내려와서 만나면 '우리는 언제 같은 팀에서 뛰어보나'했었는데, 그 날이 이렇게 올 줄이야."
나의 시작, 인천 유나이티드
무엇이든 첫 숟갈이 중요하다. 유명한 팀에 들어가, 먼 미래를 볼 것인지, 아니면 나를 당장 필요로 해서 기회를 주는 현실을 잡을 것인지, 그의 선택은 간단했다. "당연히 나를 필요로 해주는 팀에 들어가야죠. 날 당장 쓰고 싶어 하고. 날 원하는 팀. 그게 바로 인천유나이티드였어요."
전지훈련 중 페트코비치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심장이 쿵쾅거리던 순간을 이야기 한다. "감독님께서 약간은 구르는 발음으로 ‘준좨이(준재) 준좨이(준재)~ 좋와~알(좋아)!’ 라고 하셨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 순간이 얼마나 좋던지. 앞으로 칭찬받는 선수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이번시즌 목표를 크게 잡는다고 했다. "저를 불러줬으니까,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전 경기 다 뛰고 싶고요, 제가 지금 포지션이 사이드 윙이거든요. 골에 도움이 되는 어시스트도 많이 하고 싶어요. 골 넣을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넣을 것 이고요. 팀 목표인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골 맛을 본 공격수에서, 골을 넣게 도움을 주는 사이드윙으로 포지션이 변경됨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평불만이 없다. "개인기가 좋다고 해서 꼭 좋은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인기도 잘 갖추어져 있으면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멋진 플레이도 구사할 수 있어야 프로선수라고 생각해요. 때에 따라 포지션도 바뀌고, 감독님에 따라 스타일도 바뀌는 게 축구잖아요.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정신력이 밑바탕에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난 2월 19일 남해 전지훈련에서 남준재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처음으로 프로에 와서 인상 깊었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마어마한 팀 내 벌금과, 10살 터울 나는 선배라고. "학교 다닐 때는 벌금이라고 해봤자 5천원에서 2만원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와, 프로는 벌금이 이렇게 센 줄 몰랐어요. 앞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요. 그리고 학생 때는 선배와의 나이차이가 2살~3살이었는데 지금은 10살 터울 나는 선배님도 계시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어려워요."
인천에서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연세대 선배이신, 김봉길 코치님과, (안)현식이 형이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시고요, 아직 실수도 많이 하는데도, 자신감 잃지 않게 많이 격려를 해 주십니다."
축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그 때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내려놓고 싶은 시간은 누구나 한두 번쯤 찾아온다. 남준재가 축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부상 그리고 드레프트를 넣기 몇 달전.. "그때가 제 축구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부상 때도 정말 힘들었지만, 드래프트 넣기 전이 최대 위기였어요."
선수가 드래프트에 넣으려면 대학의 동의가 있거나, 학교를 자퇴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학교와 의견이 맞지 않아,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드레프트에 넣어놓긴 했는데, 운동할 곳이 없더라고요.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전에 이런저런 힘든 일이 함께 겹쳐서.. 정말 내가 축구를 관둬야 하나.. 회의감이 갑자기 몰려오더라고요."
힘들어 하는 그에게, 주변에서 잠깐 해외에 나갔다 오라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잠시 외국에 나가서 운동도 하면서 마음을 다시 다잡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한편에서 드레프트 보험을 들어놨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아닌데 말이죠.” 그는 자신이 속이 상한 것보다, 자신으로 인해 걱정했을 가족들을 먼저 걱정했다.
네명의 누나들, 그리고 부모님
남준재는 1남 4녀. 딸 부잣집에 막내아들이다. 늦둥이 막내아들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실 부모님 생각만 하면 가슴한쪽이 찡하다. "부모님 연세가 많으세요.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실 때 성공하는 아들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장가도 빨리 가서 제 자식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진짜 효도 하고 싶습니다."
금쪽같은 아들이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상당했을 터, 하지만 축구에 푹 빠져있던 아들을 꺾을 수 없었다고. "제가 살던 경주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어요. 밤낮없이 공을 찼는데.. 어느 날은 축구 골대가 너무 갖고 싶어서 나무를 잘라서 만든 적도 있어요."
그가 살던 곳에는 당시에는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운동을 위해서는 타지로 떠나야 했다. 그것이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결국 축구를 위해 초등학교 4학년때, 누나들이 사는 대구로 올라왔다. 큰 누나랑은 나이차이만 11살이 난다. "누나들이 절 키웠죠. 운동선수 뒷바라지가 얼마나 힘든데. 그동안 힘든 내색도 안하고. 누나들 생각하면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요. 고생한 누나들을 위해서라도, 지켜보는 조카들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 해야해요."
육상선수가 될 뻔 했던 남준재
"대구로 전학을 왔는데 그 학교에 축구부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육상부에 들어갔어요. 어느 날 반대항 축구가 있었는데, 체육 선생님께서 저보고 축구를 하라고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를 소개시켜 주신 거예요. 그 분 아니었으면 육상 쪽에 있으려나?(웃음) 제 축구길을 열어준 은사님…제가 성공해서 꼭 찾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초등학교 4학년 7월달. 축구를 시작하던 그때를 그는 정확히 기억한다. 축구부에 처음 들어가서 기억나는 건, 뜨거운 모래 운동장에서 뺑뺑 도는 거였다. "처음에 체력하고 정신력이 얼마 좋은지 감독님께서 테스트 하신 것 같아요. 전 시골소년이잖아요. 체력이랑 뛰는 것은 정말 자신 있었거든요." 감독님도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다음부터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지도해 주셨다고.
▲ 지난 K-리그 1라운드 홈 개막전에서 ⓒ 엑스포츠뉴스 남궁경상 기자
팬을 위해 존재하는 선수
인터뷰 사진을 요청하자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서슴없이 선보인다. 쇼맨십이 있고, 굉장히 끼가 많은 선수인 것 같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아니면 유럽리그를 즐겨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는데,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팬서비스도 확실하게 하고 싶고..."
그의 미니홈피에는 벌써부터 와서 응원의 글을 남겨주는 팬들이 있다고 한다. "팬분들께 감사해요. 여러분들 실망시키지 않게 열심히 할게요. 응원 많이 해주세요” 인천에서 첫 골을 넣으면 먼저 서포터즈 석으로 달려가서 꼭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인천 팬들은. 이번시즌 남준재의 화끈한 골 세리머니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실패는 포기하는 그 순간. 포기는 없다.
그저 축구가 좋아 땡볕에서 종일 공을 찼던 시골소년이, 이제는 축구에 목숨 건,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은, 만 스물두 살의 남준재. 그는 항상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오늘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내일을 위해 하나하나 목표를 세워나간다고 말한다.
"우선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고 싶어요. 힘들어도, 아니 힘들겠지만 끝까지 제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을 겁니다. 실패는 포기하는 순간이거든요.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글 ] 김지혜 UTD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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