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5.04 12:46 / 기사수정 2009.05.04 12:46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우리는 처음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에 실망할 때가 많다. 완벽한 이상형이라 생각한 여자가 만날수록 자꾸 흠이 보일 때, 새로 산 MP3 플레이어가 몇 달 쓰다 보니 잔고장이 많을 때, 처음엔 맛이 좋던 새로 생긴 식당의 음식이 시간이 갈수록 그 맛을 잃어갈 때, 우리는 실망감을 느낀다.
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신인 유망주가 혜성같이 나타나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다 어느 순간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해외축구에선 잉글랜드의 폴 개스코인이 그러했고, 90년대 NBA의 엔퍼니 하더웨이와 그랜트 힐이 그랬다. 프로야구에서는 박충식과 염종석이, K-리그에서는 고종수가 그러했다.
스트라이커 이동국과 윙 포워드 이천수, 최태욱, 최성국은 2000년대 초반 한국 축구의 미래로 평가받던 유망주였다. 이들에 대한 기대는 K-리그의 '좋은 선수' 수준을 넘어서 '리그의 지배자', 더 나아가서는 한국 축구의 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전성기가 될 것으로 생각됐던 2000년대 중후반, 이들은 심한 부침을 겪었다. 이동국은 독일과 잉글랜드에 진출했지만 최악의 성적을 안고 돌아왔고, 이천수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모두 실패했다. 최태욱은 K-리그와 J리그에서 6년간 다섯 개 팀을 전전하는 '저니 맨'으로 전락했고, 최성국은 '패스 없이 혼자 축구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지난 몇 년간 이들의 부진에 많은 축구팬들은 비난과 조롱을 보냈다. 하지만, 이는 이들에 대해 갖었던 큰 기대와 애정에 대한 아쉬움 혹은 배신감의 다른 얼굴일 뿐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어쩌면 이전의 '몰락한 유망주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두려웠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2009년, 이들 4인방은 과거의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보이며 K-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올 시즌 K-리그 초반을 수놓고 있는 2000년대 초반 스타 플레이어들의 맹활약은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생클리의 "컨디션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란 명언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과거 이들의 유망주 시절 걸었던 기대를 추억하게 하고 있다.
돌아온 '스트라이커' 이동국
이동국은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 단 한 번의 인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단숨에 이회택-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지는 한국 대형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을 적자로 떠올랐다. 이후 이동국은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와 각급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며 K-리그 신인왕과 각종 국제 대회의 득점왕에 그의 이름을 올리며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2 월드컵 본선 엔트리 탈락의 충격으로 슬럼프에 빠졌던 이동국은 이후 부상으로 2006 독일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고,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스브로와 성남 일화에서 지난 2년간 4골밖에 넣지 못하는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하지만, 올 시즌 전북 현대에 새 둥지를 튼 이동국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트라이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골. 이동국은 K-리그 8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현재 7경기(리그컵 포함)에서 7골을 기록하며 당당히 K-리그 정규리그 득점 선두에 올라있다.
리그 초반만 하더라도 이동국은 페널티 킥이나 문전 앞에서 '받아먹는' 방식의 득점만을 성공시켜 짐짓 평가절하를 당했지만, 최근 득점을 올리는 과정에서의 볼 터치나 슈팅 능력은 그의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킬 만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무엇보다 자신감 회복이 고무적이다. 지난 시즌만 하더라도 문전에서 머뭇거리거나 자신 없던 모습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골을 기록할수록 사라지고 있다. 특히 제주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후에 헤딩, 왼발, 오른발로 완벽한 해트트릭을 완성하는 모습은 한층 성숙한 마음가짐과 집중력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 할만했다.
이동국은 항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지만 신인상을 제외하고는 개인상 수상 경력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올 시즌 득점왕을 향한 이동국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면 시즌 MVP도 바라볼 수 있다.
만약 부상 없이 지금 같은 골감각을 유지한다면 그가 올 시즌 부로 역대 K-리그 득점왕 출신 선수들의 모임인 '황금 발 클럽'에 가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리틀 마라도나'의 진가는 지금부터
최성국은 고려대 재학 시절이던 2001년 FA컵에서 깜짝 득점왕에 오르며 자신의 존재를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청소년 대표팀에서 정조국(FC서울)과 함께 두각을 나타낸 최성국은 2002한일월드컵에선 대표팀 훈련선수로 참가하며 기대를 모았고, 2003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 각급 대표팀에 차출되며 리그 출장 기회를 많이 놓쳐 정조국에게 신인왕을 내주긴 했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좋은 활약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최성국은 2005년 J리그 가시와 레이솔에서 6개월간 임대되어 총 12경기에 출전해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하는 등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울산으로 돌아온 뒤 슬럼프를 겪었다. 2006 독일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도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이후 분위기 반전을 노리던 최성국은 2007년 성남 일화로 이적한다. 하지만, 모따, 우성용, 이따마르, 두두, 김동현, 조동건 등 특급 공격수가 즐비했던 성남에서 최성국이 주전급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많은 경기에서 교체투입되어 조커로서 활약해야 했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리그컵 포함 7골 3도움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그가 가진 능력을 모두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상황에 불만을 느낀 최성국은 결국 지난 시즌 말 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입대를 선택했다.
올 시즌 광주에서 확실한 주전이자 에이스로 떠오른 최성국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강조 광주 감독은 "(최)성국이는 오히려 성남에서 활용을 잘 못했다. 전반부터 활약해야 몸이 달아오르는 스타일인데, 결여돼있던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주력했다."라며 그간 최성국의 부진은 기량이 아닌 그의 활용 방식의 문제점에서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이 감독의 배려로 광주에서 프리롤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받은 최성국은 활발한 움직임과 폭발적인 돌파력을 바탕으로 광주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올 시즌 광주 상무의 '돌풍'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는 최성국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고, 이제 그는 최고의 '조커'에서 리그를 지배하는 공격수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플레이 자체도 한층 성숙해졌다. 전 소속팀인 울산이나 성남에선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하다 마무리 동작이 좋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드리블과 패스가 한결 간결하고 정확해졌고, 동료를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플레이를 할 줄 알게 됐다. 골결정력까지 덩달아 좋아졌다.
특히 수비의 빈 공간을 파고들어가는 움직임은 가히 리그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이제 최성국은 그저 작은 키(171cm)와 빠른 돌파력 때문에 '리틀 마라도나'로 불리는 것이 아닌, 그 별명에 걸맞은 진가를 보여주는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특급날개 '좌천수-우태욱'의 몰락과 재기
최태욱과 이천수는 고교 시절 박용호(서울)와 함께 '부평고 3인방'으로 불리며 큰 기대를 모으던 유망주였다. 서로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가까운 동료였던 둘은 나란히 2000 시드니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며 엘리트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고, 이들의 활약에 대표팀 날개 라인에는 '좌천수-우태욱'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둘은 시차를 두고 부침에 시달렸다. 최태욱이 먼저였다. 2000년 안양LG에서 데뷔하며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고향팀 인천 유나이티드가 생기자 이적을 결심했다. 이후 시미즈 S-펄스, 포항 스틸러스 등으로 이적했지만 감독과의 불화를 겪으며 출장시간이 줄어든 최태욱은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버렸다. 결국, 새로운 기회를 찾아 2008년 전북 현대로의 이적을 결심했다.
그러나 떨어진 자신감과 경기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방황은 계속 됐다. 전북을 떠나 다른 팀을 찾을 생각마저 했다. 그런 그를 잡아준 사람이 최강희 전북 감독. 최 감독은 늘 "최태욱이 살아나야 한다."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그를 채찍질하면서도, 서로 장문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격려와 응원을 나누는 인간적인 면모를 발휘하며 최태욱의 부활을 도왔다.
결국, 최태욱은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 정확한 크로스는 물론이고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활동폭이 넓어지자 최태욱의 진가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고, 골을 기록하자 자신감도 살아났다. 이후 최태욱은 전북의 공격을 이끌며 팀의 극적인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도왔다.
올 시즌에도 최태욱은 시즌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리그컵 포함 5득점 4도움을 올리며 자신의 완벽한 부활을 알리는 동시에, 팀 동료 이동국-에닝요-루이스와 함께 '공포의 4각 편대'를 형성하며 전북의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태욱에 비해 이천수는 2002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몇 차례 부침을 겪긴 했지만 2005 K-리그 우승과 MVP를 획득하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골까지 기록하며 꾸준히 한국 축구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진출 이후 여러 가지 외적 요인에 시달리며 슬럼프에 빠진 이천수는 결국 K-리그로 돌아와 수원으로 이적했지만 불성실한 태도와 부진한 경기력으로 인해 임의탈퇴선수로 공시되는 치욕을 겪었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로 다시 이적해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노리던 이천수. 그러나 그는 정규리그 개막전인 서울과의 경기서 1-6 대패 상황에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심판에게 '주먹 감자'와 '총쏘기' 모션을 취했다가 6경기 출장정지와 벌금은 물론 '페어플레이 기수 봉사 활동'이라는 수모까지 겪게 된다.
"운동장에서는 축구에만 집중하겠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던 이천수는 그의 말대로 최근 경기에서 감정을 다스릴 줄 알고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9 K-리그 7라운드에서 50일 만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온 이천수는 K-리그 6라운드에서 지난 시즌 소속팀이었던 수원과의 경기서 1골 1도움이라는 초특급 활약을 선보이며 화끈한 복귀 신고를 했다. 특히 이날 중앙선부터 단독 돌파 후 꽂아 넣은 중거리포는 '역시 이천수!'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천수가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자 전남 역시 최근 2연승의 상승세를 타며 리그 하위권에서 순식간에 6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기량만큼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천수가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K-리그에서든, 대표팀에서든, 혹은 해외리그에서든 다시 한번 더 큰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들의 귀환에 한국축구는 즐겁다
이동국, 이천수, 최태욱, 최성국은 이미 K-리그와 많은 국제 무대에서 그 기량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한국 축구의 기린아들이었다. 여전히 많은 축구팬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한국축구의 희망적 존재임에 틀림없다.
아시아쿼터제와 해외진출, 원화 약세 등의 원인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잃었던 K-리그의 입장에선 2000년대 초반 한국 축구의 가장 빛나던 유망주들의 재기가 무척이나 반갑다. 이들의 순도 높은 활약은 리그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더욱 재미있고 역동적인 경기를 팬들에게 선사해 주고 있다. '왕년의 스타'들의 귀환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K-리그로 끌어올 수 있는 자극제도 될 것이다.
국가대표팀 허정무 감독에게도 이들의 부활은 희소식이다. 각급 대표팀에서 잔뼈가 굵었던 이들이 가세한다면 대표팀의 전력도 훨씬 견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가오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나아가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만 할 것이다.
잊혀졌던 스타 플레이어들의 '귀환'에 2009년 한국 축구가 들썩이고 있다.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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