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4.19 20:24 / 기사수정 2009.04.19 20:24
[엑스포츠뉴스=서울 목동, 유진 기자] 1만 6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동구장이 주말 경기를 맞이하여 모처럼 이틀 연속 ‘만원관중’을 기록했다. 히어로즈 팬들이나 롯데 팬들 모두 열정적인 응원을 보여주며 ‘뜨거운 야구열기’를 이어갔지만, 경기 전과 클리닝 타임 때 호명된 한 선수의 이름은 경기장을 잠시나마 조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임수혁.
2000년 4월 18일, LG 트윈스와의 서울 잠실 원정경기에서 2루 주자로 출루한 임수혁은 경기 도중 쓰러졌고, 이후 9년간 단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한 채 4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낙후된 야구장 시설과 ‘안전 불감증’이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수혁 사건’은 많은 야구인들이 평생토록 ‘숙제’로 안고 가야 하는 십자가이기도 하다. 이는 모든 국내 야구선수들이 프로와 아마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제 2의 임수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시절부터 ‘타고난 타격감’ 자랑
임수혁은 고려대 재학 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대형 포수 유망주였다.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국가대표 안방 자리를 결코 놓지 않았다. 또한, 당시 포수로서는 드물게 파워 넘치는 타격 능력을 갖췄고, 도루도 종종 성공할 만큼 기동력까지 갖춘 전형적인 공격형 포수였다.
임수혁은 대학 시절부터 큰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선수였다. 1988년 고려대/연세대 정기전 야구 8회초 공격, 당시 임수혁은 1대 4로 뒤진 상황에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제 갓 19살 밖에 안 된 이 타자는 당대 최고의 왼손투수였던 조규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정기전 야구 역사상 최초의 대타 홈런이었다. 그러나 아쉽게 추가점이 나오지 않아 역전에는 실패했지만, 임수혁은 프로에 데뷔하기 전부터 야구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하게 만들었다.
“깨어나라 임수혁!” 외친지도 ‘벌써 9년’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임수혁은 팀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던 1995년,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그 해 한국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던 이상훈을 상대로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당초 전력 열세로 평가받던 롯데가 플레이오프에서 LG를 잡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데에는 1차전 기선제압에 성공했던 임수혁의 홈런이 컸다.
그랬던 임수혁이 다시 한 번 극적인 드라마를 쓴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임수혁은 3-5로 뒤지던 9회초 1사 1루에서 호세가 퇴장당하며 텅 비어 있던 타석에 대타로 들어섰다. 그러나 당시 상대는 그 해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던 임창용이었다. 그러나 임수혁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중간 담장을 훌쩍 넘기는 대타 동점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그렇게 롯데 영광의 순간마다 임수혁은 늘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쓰러진 임수혁은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그를 대신하여 그의 아버지(임윤빈 씨)가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하고 있다.
그렇게 병석에 누워 있는 그를 향해 ‘깨어나라, 제발 깨어나라!’고 외친 것도 햇수로 벌써 9년째다. 이제 야구팬들은 기적적으로 그가 깨어나 아버지 대신 그가 시구자로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2루주자 포수 임수혁. 그의 기적적인 ‘홈인’을 기원한다.
[사진=임수혁 (C) 롯데 자이언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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