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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광 - 노메달의 유도가에서 ADCC 한국대표까지 (上)

기사입력 2009.03.04 23:56 / 기사수정 2009.03.04 23:56

강대호 기자

2월 22일 일본 도쿄 추오쿠 소고 스포츠센터(中央区総合スポーツセンター)에서 ADCC 실전레슬링 세계선수권 아시아예선이 열렸다.

ADCC는 Abu Dhabi Combat Club의 약자이다. 1998년, 당시 아랍에미리트(UAE) 국왕 세이흐 자예드 빈 나햔(2004년 사망)의 아들 셰이크 탄눈 빈 자예드 알 나햔이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첫 대회를 개최했다. 2001년까지 매년 열렸으나 2003년부터 격년제로 변경됐으니 올해 본선은 제7회 대회다.

유술과 레슬링의 조합이라 할 수 있는 실전레슬링의 영어명칭은 Submission Wrestling이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이를 그래플링(Grappling)이라는 이름으로 담당 종목으로 인정했으며 작년 12월 20일부터 이틀간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첫 세계선수권을 개최했다. 따라서 2007년까지 ADCC 세계선수권은 실전레슬링 혹은 그래플링에서 공신력 있는 유일한 세계대회였다.

이번 아시아예선에는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동천백산유술회 부산 대연 본관(http://cafe.daum.net/kungfuandbjj)의 전두광(만 21세, 브라질유술 보라띠)이 -77kg으로 참가했다. 1차전에서 종합격투기(MMA) 2패의 삼보 출신 미즈노 겐지와 대결한 전두광은 하체관절기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그러나 하체관절기의 비중이 높은 삼보 경력자답게 미즈노의 탈출이 좋았다. 전두광은 정규시간에 세 차례 힐훅을 시도했으며 마지막 토홀드에는 인대가 늘어나는 소리까지 들렸지만 미즈노는 항복을 하지 않아 결국 0-0으로 정규시간 6분을 마치고 연장 3분에 돌입했다.

정규시간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애썼으나 실패한 것은 결국 체력저하로 이어졌다. 몸이 힘들다 보니 브라질유술 경기와 다른 ADCC의 스윕 등 득점규정에 대한 이해 부족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상대가 먼저 가드로 들어왔음에도 감점이 되지 않는 상황까지 발생, 결국 전두광은 셀프가드에 따른 1점 감점을 만회하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미즈노에 대해 전두광은 “생각한 것보다 강해 보여 심리적으로 다소 위축됐지만, 평소 84kg의 안팎의 체중에서 감량하고 임했기 때문에 힘에선 밀리지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MMA 경력자답게 체력과 힘은 좋았지만, 기술적으로 그리 뛰어나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패배에 대해서는 실력부족과 자만에 따른 준비 소홀이라고 자책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동천백산 부산 용호지부(http://cafe.daum.net/Tozikoreabjj) 관장이자 한국인 최초의 브라질유술 검은띠인 박준영 사범은 가장 아끼는 제자 중 한 명으로 전두광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번 대회에도 동행한 박준영은 젊음과 국내 최고 수준의 기량을 겸비한 것을 전두광의 장점으로 꼽으면서 경험과 노력이 더해지면 세계수준까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두광은 중학교 시절 유도에 심취하며 격투기와 인연을 맺는다. 당시에 대해 그는 “대회에도 몇 번 출전했지만, 운동신경과 감각 부족으로 입상은 하지 못했다.”라고 뒤돌아봤다. 전두광은 일본인 스도 겐키(MMA 16승 1무 5패)의 기술 영상을 접하고 브라질유술 입문을 결심,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5년 5월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호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유도는 브라질유술과 뿌리가 같다. 이 때문인지 전두광은 동천백산에서 브라질유술을 시작하면서 유도 수련 경험이 자신감을 준 요소가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집에서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던 시간까지 투자했음에도 브라질유술이 처음부터 전두광에게 쉽게 문을 열어준 것은 아니다.

유도가로서 끝내 입상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처럼 전두광은 브라질유술 도복시합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좌절을 경험한다. 그러나 전두광의 브라질유술 수련은 포기와 회피가 없었고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오른다. 집단의 선두가 되거나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긴 경험이 적던 그에게 우승은 큰 동기부여가 됐다.

2007년 4월 한국브라질리언주짓수연합회 주최 제6회 전국대회 -79kg 도복 흰띠 우승·비도복 2위로 두 부분에 입상한 전두광은 파란띠로 승급했음에도 같은 해 9월 7회 대회에서 -86kg 도복 파란띠 2위·비도복 3위로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

작년 5월 연세대학교 교수 존 프랭클(브라질유술 2단)이 이끄는 컴페티션팀이 주최하고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한민국 공식 딜러 모터원이 타이틀 후원을 맡은 제1회 모터원배 한국 브라질유술 오픈 토너먼트에서 전두광은 -86kg 도복 파란띠 우승·비도복 2위, 무제한급 도복 파란띠·무제한급 석권으로 3관왕과 네 부분 입상이란 걸출한 성과를 냈다.

여세를 몰아 작년 11월 연합회 주최 제9회 전국대회에서 -80kg 도복·비도복 2관왕에 오른 전두광은 이를 인정받아 박준영에게 보라띠를 받았다. 다음 달 동천백산 주최 제2회 전국대회에서는 승급 직후임에도 도복 보라띠 무제한급 3위·비도복 -86kg 우승을 거뒀다.

‘전두광 - 노메달의 유도가에서 ADCC 한국대표까지 (下)’에서 계속.

참고: 이 글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현지시각을 반영했다.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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