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1.20 03:53 / 기사수정 2008.11.20 03:53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지긋지긋한 '사우디 19년 무승 징크스'를 깨며 남아공행에 '파란불'이 켜졌다. 한국은 20일 새벽(한국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 파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와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에서 후반 31분에 터진 이근호(대구)의 선취골과 후반 45분에 나온 박주영(AS모나코)의 쐐기골에 힘입어 2-0으로 짜릿한 완승을 거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승 1무로 승점 7점을 기록하며 B조 단독 1위를 굳게 지켰다.
특히, 경기 전까지 승점이 같았던 사우디와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와 1-1로 비긴 이란을 2-3점차로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월드컵 본선행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한국은 전반 초반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축으로 한 활발한 미드필드 공격과 강한 압박을 통해 사우디 공격을 무력화시키며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후반, 사우디의 주포 나예프 하자지가 퇴장당하는 수적인 우세를 잘 살려 두골을 뽑아내는 결실을 맺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선발 라인업으로 이근호(대구), 정성훈(부산) 투톱을 세경기 연속 선발 출전시켰다. '캡틴' 박지성이 '젊은 피' 이청용(서울)과 좌우 미드필더로 나섰고, 중앙에는 기성용(서울)과 김정우(성남)가 출장했다. 수비에는 강민수(전북), 조용형(제주)이 중앙을 맡고 좌우 풀백으로는 이영표(도르트문트), 오범석(사마라FC)이 선발로 나왔다. 골키퍼에는 이운재(수원)가 오랜만에 월드컵 예선전 출장을 했다. 이영표는 이번 경기 출장으로 우리나라 선수로는 7번째로 A매치 센추리클럽(100경기 이상 출장)에 가입했다.
시작부터 치열한 공방이 이어진 가운데 사우디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전반 4분, 우측 코너킥에 이은 날카로운 헤딩슛을 골대 앞에서 기다리던 이영표가 걷어냈고 다시 때린 슈팅을 또 막아내며 가슴 철렁한 순간을 맞이했다. 이어 곧바로 반격에 나선 대표팀은 전반 5분, 우측 측면을 돌파한 이청용이 가운데에 있던 이근호를 보고 날카롭게 패스했지만 아쉽게 사우디 골키퍼에 막혀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6만여 사우디 관중 앞에 긴장한 모습을 보인 대표팀은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지성의 감각적인 플레이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특히, 사우디전을 위해 중점을 뒀던 세트플레이 기회가 이어지면서 사우디의 골문을 두드렸다. 전반 11분, 좌측 아크에서 얻은 박지성의 프리킥이 아쉽게 오른쪽으로 흘러갔고, 이어 전반 16분에도 골에어리어 바깥 왼쪽에서 날린 프리킥이 골키퍼 정면으로 가며 아쉬움을 남겼다. 효과적인 압박플레이도 조금씩 살아나면서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한 사우디는 거친 플레이로 한국 공격의 맥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이를 잘 극복한 한국은 전반 26분, 왼쪽을 돌파한 박지성이 수비수 3명을 사이에 두고 크로스한 것을 정성훈이 넘어지면서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에 막혔다. 전반 32분에는 순간적으로 공간을 내준 상황에서 사우디의 나예프 하자지가 중거리슛을 때린 것이 골대 왼쪽을 살짝 벗어나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도 전반 39분에는 박지성이 왼쪽에서 올린 프리킥을 정성훈이 논스톱으로 슛을 때리며 찬스를 계속 살려나갔다. 세트플레이에 의한 찬스를 잘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대표팀은 무난한 경기 운영으로 수차례 사우디의 골문을 두드리며 징크스를 깨기 위한 '전주곡'을 울렸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한국은 기선 제압을 통해 상승세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청용의 헤딩패스를 받아 이근호가 골문을 돌파하며 슈팅해 수비에 막혔다. 이 볼을 살려낸 이근호는 다시 뒤에 있던 이청용에 내줬고, 곧바로 정성훈에 패스해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혀 결정적인 찬스를 놓쳤다. 후반 6분에는 정성훈이 중거리슛을 기록했지만 골문 위를 벗어났다. 전반전에 경고 한개를 받았던 하자지는 후반 13분, 골키퍼 이운재에 걸려 넘어지는 '시뮬레이션 액션'을 보이며 퇴장당했고, 이것이 경기 흐름을 바꾸는 주요한 요인이 됐다.
수적인 우세를 잘 살린 한국은 더욱 공세적인 모습을 보였다. 후반 17분, 코너킥 상황에서 기성용이 회심의 강한 헤딩슛을 했지만 아쉽게 크로스바를 살짝 넘겼다. 후반 23분에는 중앙에서 몰고 가던 박지성이 과감하게 중거리슛을 했지만 왼쪽을 살짝 빗나갔다. 후반 28분, 정성훈 대신 박주영이 교체돼 들어가면서 공격의 강도를 더욱 높인 대표팀은 드디어 선취골의 결실을 맺었다. 후반 31분, 공격 진영까지 올라간 이영표가 좌측에서 올린 크로스를 박지성이 가슴 트래핑을 해 단독 찬스를 만들었고, 가운데에 위치해 있던 이근호에게 밀어주며 이근호가 그대로 골문을 향해 침착하게 밀어넣어 선취골을 뽑아냈다. 수적인 열세에도 공세를 늦추지 않은 사우디였지만 한국 수비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잘 극복했다.
그리고 후반 42분, 이근호 대신 염기훈(울산)을 투입한 한국은 곧바로 알 하우사위에게 두차례 위협적인 슈팅을 허용해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득점과는 연결되지 않았다. 뒤이어 후반 45분, '쐐기골'이 터지면서 사우디를 완전히 침몰시켰다. 패널티 박스에 있던 박주영이 염기훈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로 통렬한 중거리골을 기록하면서 시원한 추가골을 뽑아냈다. '조커'로 들어간 박주영의 '한 방'이 '징크스'를 날린 축포로 이어진 것이다.
기분 좋은 완승을 거둔 한국 대표팀은 내년 2월 11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과 최종예선 4차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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