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3.10 08:42 / 기사수정 2008.03.10 08:42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트레블 꿈이 또 다시 좌절되었습니다.
맨유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FA컵 8강전에서 포츠머스에 0-1로 덜미를 잡히며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로써 웸블리에서 FA컵 4강 경기를 치를 팀이 모두 확정되었는데요, 재미있게도 맨유를 꺾은 포츠머스는 4강에 오른 유일한 프리미어리그 팀이 되었습니다.
리버풀을 꺾은 반슬리는 첼시마저 꺾으며 웸블리행을 확정지었고, 김두현의 웨스트 브롬은 브리스톨 로버스에 대승을 거두며 마찬가지로 4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카디프 시티는 이동국의 미들즈브러를 2-0으로 꺾으며 마지막 FA컵 4강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유례없이 프리미어리그 빅4가 모두 탈락한 상황에서 챔피언십 팀들이 FA컵에서 모처럼 신바람 행보를 보이고 있네요.
맨유의 포츠머스전 패배는 선수의 기량, 전술, 그 어떤 '축구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독하게 골 운이 따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주전 골키퍼가 사타구니 부상을 당했습니다. 거친 포츠머스 수비진을 흔들 수 있었던 유일한 장신 스트라이커 루이 사아는 라커룸에서 무릎을 삐끗하며 경기 시작 직전 벤치명단에서 빠지는 '어이없는' 부상을 당했고요.
골키퍼 교체 자원이없는 상황에서 쿠쉬착의 퇴장은, 맨유에 그야말로 '불가항력'이었습니다. 퍼디난드가 아무리 다재다능하다고 해도, 문타리의 총알 슈팅을 막기엔 골키퍼로서 경험이 전무했으니깐요.
그렇지만,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서는 분명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맨유가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과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은 분명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팬들의 큰 관심거리인 박지성의 입지와도 연관성이 있으니까요.
언론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지만, 퍼거슨 감독의 딜레마는 바로 미드필더입니다. 여기서 미드필더란 호날두, 나니, 긱스, 박지성과 같은 측면 자원이 아닌 스콜스, 안데르손, 하그리브스, 캐릭, 플레쳐 등의 중앙 자원을 말합니다. 주전급 미드필더가 5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퍼거슨 감독은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로테이션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주 풀럼전에는 스콜스와 하그리브스가 나왔고, 주중 챔피언스리그 경기에는 안데르손, 캐릭, 플레쳐가 선발로 출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포츠머스전에는 다시 스콜스와 하그리브스가 선발로 출장했습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자신의 선택을 100%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중앙 자원들이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하는데다 자주 파트너가 바뀌면서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뮌헨 참사 50주년 기념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도 스콜스와 안데르손을 선발로 내보냈지만, 두 선수는 극악의 호흡을 보여주었고 결국 퍼거슨 감독은 캐릭과 하그리브스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선발명단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퍼거슨 감독은 후보 명단에 2명 이상의 중앙 미드필더 자원을 올려놓습니다.
포츠머스전 역시 맨체스터 시티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중앙의 두 미드필더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한 것이지요. 두 선수는 특유의 활동력도, 멋진 전방패스도, 기습적인 중거리슛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다시 고민을 시작했고, 결국 벤치 명단에 올려두었던 두 중앙 미드필더 - 캐릭과 안데르손 - 를 투입합니다. 캐릭과 안데르손은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에 활력을 부여했지만, 지독한 불운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억울한 피해자, 박지성
이처럼 중앙 미드필더 문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맨유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중앙 자원의 부족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중앙 자원의 과포화가 문제니까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박지성입니다.
박지성에게 긱스의 부상은 '엄청난 기회'였습니다. 부상 후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하던 박지성에게 모처럼 선발 출장의 가능성이 열렸으니깐요. 그러나 긱스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의 출전기회는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박지성은 종종 벤치명단에서조차 빠지기 일쑤며, 포츠머스전 역시 루이 사아의 어이없는 부상이 아니었다면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경기를 봐야 했을 것입니다.
그 원인은 앞에서 말한 중앙 미드필더 자원의 과포화입니다. 중앙 자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퍼거슨 감독이 후보명단 5자리 중 2자리를 중앙 성향의 선수로 채우면,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것은 측면 미드필더인 박지성입니다. 후보 골키퍼 1명, 수비수 1명, 공격수 1명은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있고, 미드필더 2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해왔던 박지성은 다른 중앙 미드필더에 밀려 벤치에서도 밀려나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선수가 실력이 부족해서, 혹은 다른 선수의 실력이 뛰어나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선수의 잘못입니다. 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맨유의 문제는 그렇게 보기에는 다소 복잡한 측면이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긱스가 빠진 자리에 나니를 중용하고 있습니다. 나니는 분명 아스날전 이후 컨디션이 급상승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니의 성향입니다. 나니는 패스보다는 드리블을 통해 전방으로 침투하기를 좋아하며, 대부분 자신의 역할을 크로스로 마무리합니다. 즉, 전형적인 측면 성향의 드리블러인 셈입니다.
나니가 들어간 경기는 분명 재미있습니다. 나니는 좋은 크로스를 자랑하는 선수이며, 중거리슛으로 득점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춘 선수입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은 나니가 공격 상황에서 중앙 미드필더와 호흡을 잘 맞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긱스나 박지성의 경우, 중앙 미드필더 선수들과 적절히 호흡을 맞추며 함께 전진하는 성향의 선수입니다. 때때로 그들과 위치를 바꾸며 중앙으로 파고들기도 하고요. 반면에 나니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측면을 고집하며, 그 결과는 비효율적인 크로스와 슈팅입니다. 즉, 나니가 보여주는 화려한 기술에 비해 그 성과가 적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니의 이러한 성향은 또 하나의 문제를 가져오는데, 그것은 바로 중앙 미드필더의 수비 과부하입니다. 측면 중심의 공격이 계속되면 중앙 미드필더는 우선 역습에 대비하는 위치에 서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중앙 미드필더의 공격적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고요. 포츠머스전에서 스콜스와 하그리브스는 부진했기보단,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퍼거슨 감독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분명 측면 공격은 활발하지만 확률이 낮고, 중앙 미드필더는 공격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며 부진합니다. 여기서 선택은
1. 중앙 자원을 교체한다.
2. 측면 자원을 (좀 더 수비가담이 활발한 선수로) 교체한다.
2번을 선택한다면 그 선택은 박지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한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술이 좋은 선수를 빼기란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선택은 자연스럽게 1번이 됩니다. 포츠머스전에서 안데르손과 캐릭의 투입은 이러한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중앙 미드필드의 하그리브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나니의 성향에 의해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교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경기에 벤치에도 앉지 못할 뻔했고, 결국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습니다. 결과론적이지만, 맨유는 아쉽게도 포츠머스에 패하며 FA컵 우승에 대한 희망을 접어야 했습니다. 지독한 불운을 가장 큰 이유로 삼아야겠지만, 그 불운에는 퍼거슨 감독의 아쉬운 용병술도 한 몫 했습니다.
그래도, 박지성 '이적론'은 아닙니다.
분명 박지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벤치와 관중석에 앉아만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박지성의 이적을 거론하는 것은 성급하고 경솔한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박지성은 맨유에 있어야 빛이 나는 존재입니다.
박지성의 장점은 개인기량이 탁월한 공격진의 역량을 최대한 살려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뛰어야 박지성의 역량도 그만큼 빛이 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박지성이 뉴캐슬, 아스톤 빌라, 토트넘에 간다고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덩팡저우나 크리스 이글스처럼 2군에 밀려 경기에도 나오지 못하는 후보 선수가 아닙니다. 분명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정책에 포함되어있고, 상황에 따라 선발 출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스쿼드 플레이어'입니다. 주전은 아니지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팀에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선수에게 이적을 요구하는 것은 팬의 태도가 아닌듯합니다. 맨유는 박지성의 '직장'이고, 박지성은 충성스러운 맨유의 '직원'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분명 지장입니다. 수많은 경험은 그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일러줄 것입니다. 또한, 박지성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입니다. 분명,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능력을 훈련에서 보여줄 것입니다. 맨유의 패배와 박지성의 결장은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 많지만,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면 분명 더 큰 환희가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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