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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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두 얼굴.

기사입력 2006.03.03 07:54 / 기사수정 2006.03.03 07:54

편집부 기자





분명 한국 축구대표팀은 하나였지만, 
현장에는 두 개의 한국 축구팬이 존재..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1일 상암 월드컵경기장. 지난 6주간의 전지훈련 성과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여서인지 상암 월드컵경기장에는 한국과 앙골라의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많은 팬으로 북적였다.

오랜만에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월드컵 D-100일을 맞이한 이날 경기장 밖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들이 열려 일찌감치 많은 사람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3:3 풋살 경기와 페널티킥 대회가 열렸는가 하면, 북측 광장 중앙에서는 '꼭지점 댄스'가 열려 수많은 인파가 노래에 맞춰 흥겨운 춤을 추었다. 특히, '꼭지점 댄스'에서는 수백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가장 높은 인기와 관심을 끌었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면서 북측 광장은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헌데, 바로 옆에서는 '근조'를 달고 검은색 옷을 입은 백 여명의 축구팬들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차분한 분위기로 앉아 있었다. 바로 SK의 연고지 이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붉은악마와 비대위의 시위였다. 지척에서 꼭지점 댄스의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이들의 외침마저 삼켰지만, 그들은 한 시간여 동안 자리를 지키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 '근조' 한국 축구
ⓒ 엑스포츠뉴스 손병하
▲ 꼭지점 댄스
ⓒ 엑스포츠뉴스 손병하

















한쪽에서는 월드컵 D-100을 축하하고 국가대표팀의 경기에 앞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고, 한쪽에서는 초상집과 다름없는 분위기를 연출하며 가장 슬픈 한 때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슬픈 분위기는 경기장에서도 이어졌다. 가장 크고 높은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주도하던 붉은악마는 보이지 않았고, 붉은악마들이 있어야 할 자리엔 검은색으로 물들여진 축구팬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10 여분 동안 침묵시위로 일관한 붉은악마는 이후 연고 이전의 부당성을 알리는 구호와 노래를 불렀고, 북측 관중석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응원 구호와 함성 소리가 요란했다. 경기 중간에 시작된 파도타기에서도 붉은악마 쪽은 동참하지 않았고, 이런 풍경은 마치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두 개의 한국 축구팬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SK의 연고 이전 문제가 언론을 통해 이슈화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붉은악마와 비대위(연고이전 반대 비상대책 위원회는)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장 많은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는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연고 이전의 부당성을 알려야만 했었다.

여론을 의식해 애초 계획보다 시위의 폭을 축소하고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로 이끌려고 노력했었다. 장외에서의 시위도 그렇고, 경기장 내에서도 침묵시위와 연고 이전을 반대하는 외침 정도에 그쳤다. 또 대형 통천을 통해 특정 기업에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K-리그와 부천에 대한 애정표현을 담은 통천을 내걸었다.

반면, 오랜만에 해외파가 합류한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평소와 전혀 다른 검은색 옷을 입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붉은악마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기대했던 '대~한민국'은 울려 퍼지지 않았으며, 다른 관중석에서 어렵게 시작했던 파도타기 응원도 붉은악마 측에 와서는 끊기고 말았다. 이런 탓에 제 각기 들려오는 응원 구호들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그저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고, 흥겨운 축제의 분위기를 기대하며 경기장을 찾았던 축구팬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기 내내 보였던 붉은악마의 시위는 일반 축구팬들에게 '연고 이전의 부당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는 따가운 눈총을 더 많이 받아야 했고, 어렵게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아쉬움만 곱씹어야 했다. 붉은악마도 관중도 둘 모두 원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씁쓸하게 경기장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 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는 분명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기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축구팬이 존재했다. 한국 축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무엇이 한국 축구팬들을 엇갈린 길로 가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시작과 원인은 붉은악마와 축구팬이 아닌데,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쓴맛은 붉은악마와 축구팬이 함께 나눠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했다. '하나'인 줄만 알았던 축구에서도 팬들의 '양극화'가 시작될까 안타까운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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