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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갑오년의 스포츠 이벤트와 그리운 손정오‏

기사입력 2014.01.06 16:26 / 기사수정 2014.01.09 21:16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2014년 갑오년(甲午年)은 스포츠 팬들에겐 축제의 한마당이다. 2월엔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6월엔 인류 최고의 축제, 월드컵이 우리를 기다린다. 가을엔 인천 아시안게임이 펼쳐진다.

2014 동계올림픽, 대한민국의 ‘사상 최고 성적’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메달획득 종목도 다변화되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스키점프나 컬링 그리고 보드 종목에서 의외의 낭보가 전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폐막식 날, 전광판에 새겨질 문구가 ‘2018, 평창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점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홍명보호가 참가하는 브라질 월드컵. 피끓는 새벽이 세 번만으로 끝나지 않고 네 번, 다섯 번으로 이어지기를. 한국은 더 이상 ‘본선진출’ 자체에 열광하는 팀이 아니다. 16강 진출과 그 이상의 항해는 쉬운 과제가 아니지만, 월드컵 본선마당이 고난의 도전인 것은 32개 본선진출국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북한의 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이번 아시안게임은 스포츠 외적인 면에서 국제적인 시선을 모을 수도 있겠다. 늘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개최되던 아시안게임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개최년도를 조정한다. 다음 대회가 열리는 시기와 장소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보다 나은 흥행을 위해 세계적 이벤트를 피해 개최일정을 조절한 대회가 하나 더 있다. 아시안컵이다. 하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치르던 아시안컵은 2007년부터 ‘홀수 해’로 이사했다. 다음 대회는 2015년 호주가 주최국이다.       

금년에는 이처럼 스포츠 이벤트가 많으니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하리라. 그런데 정말로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제주도에서 WBA 밴텀급 챔피언 가메다 고키에게 도전했다 너무도 아쉽게 판정패한 사나이, 손정오다. 프로데뷔 15년 만에 첫 세계도전에 나섰던 32세의 노장복서. 전 세계챔피언 최요삼의 스파링파트너로, 복싱 전문가 누구나가 인정했던 미래의 세계 챔피언. 손정오의 전성기는 2006-2007년 무렵이다.



문제는 침체기에 들어선 한국 복싱이 손정오에게 거의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기가 없으니 TV중계가 잡히지 않고, 중계가 잡히지 않으니 매치메이킹을 할 수 없어 세계타이틀전은 성사직전에 번번이 그를 비켜갔다. 2008년에 일단 은퇴를 했다가, 다시 돌아온 링. 이번 세계 타이틀매치도 전념해서 준비할 수 있었던 기간은 고작 4개월에 불과했다던가. 경기 초반 해설자 홍수환이 ‘손정오의 펀치가 끊어지지 않고 밀리는 감이 있다. 그래서 위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건 정확한 통찰이다.

WBA 밴텀급왕관은 한국인에겐 잊을 수 없는 타이틀이다. 두 번 모두 원정경기로 가져온 타이틀. 1974년 7월,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날아간 홍수환이 아놀드 테일러를 네 번 다운시키며 한국인 사상 두 번 째 세계 챔피언의 위업을 달성한다. 해외원정 경기로 획득한 첫 왕관. 1987년 5월엔 박찬영이 역시 일본 원정경기에서 챔피언 무구루마 다쿠야를 11라운드 TKO로 격침하며 한국인으로는 두 번 째로 WBA 밴텀급 대관식을 거행했다. 가메다-손정오의 타이틀전이 열린 제주도도 WBA 밴텀급과 관련이 있다. 제주도에서 열렸던 사상 최초의 세계 타이틀매치가 바로 1983년에 벌어진 WBA 밴텀급 타이틀전이다. 챔피언 산토스 라시아르(아르헨티나)는 한국의 도전자 신희섭을 1라운드 KO로 물리치며 선수권을 지켰다.   

1999년 전 세계의 스포츠 평론가들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 선정 투표를 실시한 적이 있다. 끝까지 남은 후보는 펠레와 무하마드 알리였다. 마지막 결선투표, 전문가들의 선택은 단연코 알리였다. 왜? 67년 5월 22일 뉴욕에서 조라 폴리를 7회 KO로 물리치고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한 후 70년 10월 26일 제리 쿼리를 3라운드에 쓰러뜨리며 링에 돌아오기까지, 알리는 복싱을 할 수 없었다. 월남전 징병거부로 복싱 라이선스 자체를 박탈당했던 까닭이다.

스포츠평론가들은, 타의(他意)에 의해 전성기의 3년을 허송(虛送)하고도 다시 세계 정상에 올라선 바로 그 점 때문에 알리에게 ‘마지막 한 표’를 던졌다. 어떤 경우든 일단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정상으로 복귀한다는 건, 스포츠세계에선 그 자체가 경이적인 업적이다. 하물며 부상이나 자기 자신의 허물이 아닌, 타의에 의한 은퇴 이후의 복귀를 통해서랴.        

<논어(論語)>와 <주역(周易)>을 들어 비교를 해보자. 논어의 핵심 주제는 ‘자기수양’이다. 심신의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정언(正言). 문제는 내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 개인이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주역은 어쩌면 사회적 국가적 역사적 상황의 다양한 케이스를 정리해 놓고, 독자가 처해있는 상황이 책 가운데 어느 상황과 흡사한지를 비교 분석해 보라는 가이드 북인 것은 혹시 아닐는지. 개인이 사회적 역사적 상황 자체를 통제하는 것은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니, 주어진 여건 아래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는 가르침은 아닐 것인지. 논어가 안(內)이라면 주역은 밖(外)이다. 손정오의 은퇴가 알리의 경우처럼 100% 타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본인의 ‘의지’보다는 사회적 ‘상황’이 그를 은퇴로 몰아갔던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모습이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 나온다.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
해석)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4/25)      

가메다 고키와의 재대결이 성사된다면, 손정오는 링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손정오가 한국 프로복싱 전성기에 선수생활을 했더라면, 그는 역사에 남는 전설적 복서가 되었을 터이다. 적어도, 세계 챔피언의 꿈은 확실하게 이뤄냈을 것이다. 손정오의 생애에 걸친 불운은, 어떤 형태로든 보답을 받았으면 한다. 갑오년 언제가 되었든, 그의 경기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을 따름이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홍명보, 손정오 ⓒ 엑스포츠뉴스DB, 채널A 제공]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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