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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이광종호, 졌지만 진 것이 아니다‏

기사입력 2013.07.09 21:44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졌다. 졌지만 아름답다. 그래서 운다. 박수를 치면서 운다. 3-3으로 비기고 승부차기에서 패해 4강 진출이 좌절된 2013 터키 U-20 월드컵 이야기다. 축구에도 버저비터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막판 극적으로 터진 동점골이나 역전골은 있었어도, 종료 3분 전, 그것도 연장전에서 농구처럼 골을 주고받는 광경이라니. 2005년 네덜란드 U-20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대 나이지리아 전, 후반 종료 1분을 남기고 터진 박주영, 백지훈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둔 만화같은 경기 이후, 실전에서 이런 명장면을 다시 보게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축구는 골이 많이 나지 않는 경기다. 펠레는 한 경기 다섯골, 3-2를 ‘가장 재미있는 경우’로 꼽았다. 그만큼 다득점 경기는 쉽게 보기 어렵다. 그래서 베팅 배당률을 정하는 전문가들은 여섯골 이상 나는 경기를 별난 경기(odd score)라고 부른다. 한국 축구의 전진을 위해, ‘별난 경기’의 역사를 살펴보자. 단, 세 골 이상을 득점하고도 진 경우만 골라서. 다득점 대승의 경우는 그 예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1978년 5월 20일부터 일주일 간 벌어진 제1회 재팬컵 축구대회. 첫 경기를 브라질 챔피언 팔메이라에게 0-1로 내준 한국의 두 번 째 상대는 분데스리가 챔피언 보루시아 MG였다. 우승상금 10만달러, 준우승 상금 5만달러는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액수였기에, 참가팀 모두가 정예부대를 내보낸 진검승부. 77년 유럽 최우수선수 알란 시몬센(덴마크), 서독 대표팀 주전 레프트 윙 델하이가 출전한, 히로시마에서 열린 이 경기의 전반전 스코어는 0-4다. 김호곤, 최종덕, 조영증, 박성화가 막아서고 김황호가 골문을 지킨 한국은 유럽 정상급의 2대1 패스에 속절없이 돌파를 허용했다.

한없이 밀리던 한국은 후반 중반 이후 진격의 대반격을 감행한다. 65분 차범근의 단독 드리블에 의한 25미터 오른발 롱 슛으로 한 점 만회. 70분, 김호곤이 상대의 전진패스를 인터셉트하고, 하프라인부터 치고나가 연결한 크로스를 김재한이 밀어넣어 2-4. 이 골은 한국 축구사에 기념비적인 골이다. 한국 축구 최초의 오버래핑이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수비는 세트피스 상황이 아닌 한 절대로 하프라인을 많이 넘어서면 안되고, 공격수가 수비가담하는 것을 체력의 낭비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차범근 감독은 소생과의 어느 저녁 자리에서 “우리 선수들은 팔메이라 전에서 윙백이라는 걸 처음 봤다. 아, 저렇게 해도 축구가 되는구나, 싶더라. 촌사람이 서울 처음 와서 고층빌딩 보고 놀라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거니와, 김호곤의 이 플레이는 바로 윙백이라는 걸 보고 접한 바로 다음 경기에서 ‘창조적 응용’을 통해 이 전술을 그대로 써먹은, ‘세계 최신유행을 따라간’ 골인 것이다. 3분 후, 차범근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김호곤이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3-4. 한국은 남은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보루시아MG를 밀어 붙였으나 끝내 동점골은 터지지 않았다. 94년 미국 월드컵, 0-3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황선홍, 홍명보의 연속골로 따라 붙으며 막판 25분간 상대를 자기 진영에 가둬놓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그러나 끝내 동점골은 터지지 않았던 대 독일전이 이 경기의 복사판이다.

경기 후 라데크 보루시아MG 감독은 “우리가 이겼지만 이긴 것이 아니다. 내용 상 우리가 진 경기다. 그래서 유쾌하지 않다. 한국 팀 4번(조광래)과 15번(허정무)은 유럽에서 통할 실력이고 11번(차범근)은 매우 뛰어난 선수다”라고 인터뷰했다. 누가 알았으랴. 훗날, 허정무(필립스 아인트호벤), 차범근(프랑크프르트)의 유럽 진출에 이 인터뷰 하나가 큰 역할을 하게 될 줄을. 한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유럽의 스카우터들이, ‘직접 보니 어떻드냐’고 라데크에게 자문을 구했다기에 하는 말이다.



1982년 7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제23회 아시아 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 동부지역 예선. 첫 경기를 중국에 0-2로 내준 한국은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를 6-0, 6-1, 6-0으로 초토화시키며 준결승에 진출한다. 상대는 북한. 선취골 넣고, 동점골 역전골 먹고, 다시 두 골 득점하며 3-2로 뒤집었다가 3-5로 내 준 경기. 3-3에서 맞이한 북한의 코너킥 상황, 골키퍼 차징으로 보이는 애매한 몸싸움이 벌어진 가운데 원 바운드로 골문 중앙까지 이어진 공을 북한 공격수가 배로 밀어넣어 결승골을 기록했다.

우리측 MOM은 두 골을 기록한, ‘반 박자 빠른 슈팅’이 전매특허이던 이기근. 동부지역 두 팀, 서부지역 두 팀이 모여 최종 예선을 치르고 그 중 1,2위 팀이 두 장의 본선 티켓을 가져가는 제도 상 한국은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에 갈 수 없었다. 그런데 1982년 11월 19일부터 12월 4일까지 벌어진 제9회 뉴델리 아시안게임. 한국 대표팀은 이란, 일본에 연패하며 예선 탈락했는데, 문제는 북한이었다. 쿠웨이트와의 3,4위전을 2-3으로 지고 나서 북한은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항의만 한 것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했다. 선수들의 이단 옆차기가 난무하고 코치는 코너플래그를 뽑아 창검처럼 휘둘렀다. 선수들을 말리러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본부 임원이 선수 교체 알림판으로 심판을 내리 찍은 것이 이날 소동의 하이라이트다.

출동한 경찰들 사이로, 뼈마디가 부러지고 안면에 피를 흘린 채 엉금엉금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태국인 주심 피지트 씨의 처첨한 사진. FIFA는 격노했다. AFC의 결의를 받아들여 2년 간 국제대회 출전 금지. 청소년 대회 동부지역 3위팀 한국이 북한의 자격을 계승했고, 한국 청대는 태국에서 거행된 최종예선에서 UAE를 4-0, 이라크를 2-1로 꺾고 중국과는 1-1로 비기며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멕시코 행 비행기를 탄다. 83년 세계 4강의 신화 뒤에는 이러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이다.

1984년 4월 17일부터 29일까지 열린 LA 올림픽 최종 예선전. 그때는 월드컵만큼이나 올림픽도 머나 먼 험로였다. 64년 토쿄 올림픽 이후 20년 간 예선탈락. 아시아에 걸린 티켓은 석 장. 한국은 2승1무 동률인 채로 사우디 아라비아와 A그룹 수위자리를 놓고 결전을 벌였다. 각 그룹 1위가 본선에 직행하고 남은 한 자리를 놓고 각 그룹 2위끼리 플레이오프를 벌이는 방식. 두 경기 중 한 경기만 이겨도 본선에 나가는 유리한 고지. 4월 24일 사우디 전 초반은 한국의 페이스였다. 13분 수비수 전종선의 롱 슛과 3분 후 최순호의 어시스트를 받은 정해원의 오른발 슛으로 2-0. 사우디의 개인돌파에 이은 득점과 다소 애매했던 심판 판정이 이어지며 페널티 킥 골을 허용하며 2-2. 정해원의 헤딩슛이 사우디 수비를 맞고 굴절되며 득점으로 이어지고 이길룡이 또 한 골을 뽐아내며 분전했지만 최종 스코어는 5-4, 승자는 사우디였다.

한국은 적어도 명백한 페널티 킥 하나를 도둑맞았다. 이 경기의 뒷면의 우여곡절은 1983년 9월, 박종환 감독의 지도방식에 반발한 주축선수 다섯 명이 선수촌을 이탈했다. 이태호, 변병주, 최순호, 박경훈, 최인영 등 에이스 5인방. 협회의 결정은 자격정지 3년, 사실상의 선수자격 박탈이었다. 숙소가 그 근처였기 때문일까, 잠실중학교 운동장에서 기약없는 개인훈련에 열중하던 최순호의 모습을 먼발치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던 추억이 있다, 소생에게는.

그 해 11월 1차 예선에서 한국은 83년 청소년 4강 멤버로 대표팀을 꾸렸다. 이것이 한국축구사상 평균연령 역대 최연소 대표팀이다. 더블리그 첫 경기를 피아퐁이 2골을 넣은 태국에게 1-2로 패하고, 중국에게 3-0으로 앞서다 3-3으로 비기고, 천신만고 끝에 최종전적 3승2무1패 조2위 턱걸이로 최종예선 진출. 대 중국전 3-2 상황에서 우리 수비수 하나가 쥐가 오른 동료를 돌보는 사이 동점골을 먹고, 태국 언론이 ‘한국이 세계 4강 멤버라는 건 청소년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라며 비판하자 대한축구협회는 베테랑 5인조의 징계를 푼다. 이들의 능력을 좀 더 활용할 수 있었다면 이 경기의 결과가 달라졌을까? 사우디에 지고 이라크와 벌인 마지막 경기, 전반 43분에 터진 롱 슛 한 방으로 0-1패. 올림픽의 꿈은 그렇게 끝났다. 한국 대표팀이 네 골이나 넣고도 진 경기는 지금까지 이 때의 사우디 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다시 이번 대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죄송하다, 팀보다 앞서는 개인은 없다, 이렇게 좋은 멤버와 다시 함께 할 수 없다니, 너무 안타깝다는 젊은 선수들의 SNS 메시지가 심금을 울린다. 아쉬워 마라, 2016 리우 올림픽이 그대들을 기다린다. 논어(論語) 안연 편에 나온다.


“君子(군자)는 以文會友(이문회우)하고 以友輔仁(이우보인)한다.”

해석) 군자는 서로 애쓰며 노력하는 것으로 친구를 사귀고 좋은 친구들과 더불어 어짊을 도모한다.


이 말을 축구에 적용하면 다음처럼 뜻풀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훌륭한 선수들은 서로 애쓰며 노력하는 것으로 동료 선수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더불어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를 꿈꾼다. 브라질 리우에서 우리들을 한 번 더 울려다오, 그 때는 지금 참는 눈물을, 오늘과 다른 의미의 눈물을, 강감찬 장군 둑 터뜨리듯 한꺼번에 펑펑 쏟고 싶구나. 나는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 = U-20 대표팀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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