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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TalkTalk] 프로야구 비즈니스 '니혼햄에 물어 봐'

기사입력 2012.06.01 11:46 / 기사수정 2012.06.01 11:51

서영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프로야구의 기본은 지역 연고 정착이다. 프로야구를 운영하는 한미일 3국은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북미 시장만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여타 스포츠 산업을 능가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 제 3의 경제대국 일본도 프로스포츠 중에서 프로야구(NPB)가 가장 큰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두 나라의 프로야구 발전기는 스포츠 마케팅, 비즈니스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한국 프로야구 역시 관중 증가를 통한 시장 향상을 꾀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발전 방향에는 NPB와 협력, 참고 사례가 증가하며 ‘벤치마킹’으로 이어지고 있다.

NPB를 구성하는 12개 구단은 제각각 비즈니스 모델 방향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전국구 구단,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즈, 오사카 한신 타이거즈 등은 철저한 지역 연고를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니혼햄의 경우 팀 창단 후 50년간 도쿄에서 머물다 연고이전을 했음에도 급속도로 지역에 뿌리 내린 경우로 일본 내 연고정착 성공 사례로 뽑힌다. 스타 마케팅 뿐만 아니라 지역 밀착, 타 종목 연계 등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니혼햄의 프로야구 비즈니스는 무엇일까.



인기 없는 도쿄 셋방살이 구단

니혼햄의 전신인 세네타스 도큐는 철도회사 세이부의 후원을 받아 1945년 창단됐다. 하지만 도쿄에 구단이 많다는 이유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반발이 있었고 1948년 센트럴리그에 맞서는 퍼시픽리그로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도쿄의 야구 인기는 요미우리가 독식하고 있었으며 이들 외에도 도쿄 오리온스(현 지바롯데), 도쿄 스왈로즈(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존재했다.

요미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들은 일명 ‘셋방살이’라 불리는 눈치 게임을 해야했다. 눈치 게임이란 요미우리의 경기 일정을 피해 이른 낮이나 늦은 저녁 등 관중 유치가 힘든 시간에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타 구단의 일정을 피해 경기를 배정받은 세네타스의 인기는 좋지 못했다.

프런트의 특별한 무능력은 없었지만 모기업의 부채만 안겨주는 폐물 취급을 받은 세네타스는 토에이 플라이어스(방직회사)에 인수됐다. 1960년대부터는 장훈, 백인천 등 거물 타자들의 발굴과 더불어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그것도 특정 선수에 의존했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했다.

스타 선수로 인기를 얻고 구단 팬이 증가했지만 토에이는 1964 도쿄 올림픽 개최로 경기장 점검에 나선 일본 정부의 권유에 따라 당시 홈구장이던 고라쿠엔(현 도쿄돔)을 내주고 지역의 공영 구장과 메이지 신궁을 돌며 경기를 치렀다. 연고지 내 다양한 곳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경기 홍보와 운영에 차질이 생겨 시즌을 치르는 흐름이 끊기는 등 악영향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토에이의 상태는 좋아지지 못했다. 1970년대 일본 프로야구를 흔들었던 승부조작에 주축선수 일부가 적발되며 팀은 하락세를 피할 수 없었다. 구단 운영에 신물을 느낀 토에이는 부동산 회사에 팀을 매각했고, 매입한 부동산 회사 역시 비즈니스의 가망성이 보이지 않자 1시즌 만에 식품 회사 니혼햄에 매각한다.

이전 회사들과 니혼햄의 차이는 모기업의 비즈니스 대상이 특정 지역이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니혼햄은 일본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식품 회사였기 때문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던 중 연고이전이라는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 도쿄돔 성공과 한계, 연고이전 결심

니혼햄의 연고이전 계획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야구 칼럼리스트 오카와 히로시는 자신의 저서 ‘진지한 승부의 삶’을 통해 “니혼햄의 연고이전은 오래전부터 이뤄졌다. 단지 늦어진 것은 도쿄돔 건축이었다”며 돔구장 비즈니스를 먼저 해보려는 의지로 해석했다.

1980년대 초반 니혼햄이 홈으로 사용하던 고라쿠엔은 재건축 계획을 통해 돔구장으로 신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1988년 개장과 동시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역시 셋방살이를 지속하던 니혼햄은 고른 성적과 돔구장 비즈니스의 성공으로 팀 역사상 최고 관중 수인 245만명을 기록하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당시 니혼햄은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외야, 내야, 응원석으로만 나눠진 좌석구분을 ‘가족석’, ‘커플석’, ‘홈런존’등 흥미 있는 좌석 마케팅을 실시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진 돔구장과 특석을 내세운 마케팅이 통했지만 후쿠오카돔, 나고야돔, 세이부돔, 삿포로돔이 차례로 건설되며 특색이 사라졌다.

니혼햄은 요미우리의 인기와 얇은 팬층을 느끼고 더 이상 도쿄에서 성공은 힘들다고 판단해 연고이전 계획을 구체화다. 조건은 명확했다. 프로야구 구단이 없는 곳, 야구 인기가 적은 곳, 프로야구 수준의 구장을 갖춘 곳을 조건으로 내건 니혼햄은 2-3곳의 도시와 물밑 접촉을 하다 일본 열도 북단의 홋카이도를 연고지로 삼기로 결정한다.

홋카이도현은 삿포로를 중심으로 발전된 도시로 2002 한일월드컵 개최로 지어진 삿포로돔이 있었다. 삿포로시 역시 니혼햄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축구 외엔 쓸 일이 없는 구장을 마냥 놀게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요미우리, 세이부 등 인기구단 원정팬만 수용해도 충분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판단됐다. 결국, 2003년 니혼햄은 홋카이도 삿포로로 연고이전을 단행했다.




- 동시 다발적 마케팅 성공

니혼햄은 삿포로 연고이전과 함께 동시 다발적 마케팅을 실시했다. 스타선수 영입, 돔구장 활용 비즈니스 등 다양한 모습으로 팬들을 찾아갔다. 2000년대 초반 MLB에서 일본인 최초 만루 홈런을 때린 신죠 츠요시를 영입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감독, 코치등으로 완전히 새로운 팀을 만들어 갔다.

또 삿포로돔 운영 구상은 기존의 프로축구팀 콘사도레 삿포로와 협력하여 공동티켓 발매, 지역 봉사 활동을 병행하며 자연스레 연고지로 스며들었다. (콘사도레 삿포로와 함께 일본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구장 내 축구단과 야구단의 공동 박물관을 설립하였으며 수익금은 삿포로 시민의 사회 체육 증진을 위해 환원되고 있다)

니혼햄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바로 ‘영업’이었다. 니혼햄은 언론 매체, 지역 기업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자신들의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 결과 운영 모체는 니혼햄이지만 홋카이도 내 공기업, 지역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해 사실상의 홋카이도 구단이 됐다.

니혼햄은 구단 운영은 모기업 니혼햄이 담당하지만 구단 운영 안건은 의례적으로 파트너 기업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스포츠 보도에 목말라 있는 언론들도 니혼햄의 요청에 호응했다. 2012년 현재 야구단 니혼햄만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TV 7국 25개, 라디오 5국 18개나 있으며 이들은 선수단 소식과 하이라이트, 분석, 팬스테이지 등으로 내용을 알차게 꾸미고 있다.

특히 홋카이도 지역 방송국들의 열의가 넘쳐 니혼햄의 클라이막스 시리즈가 열리는 날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하루 종일 야구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문화적 기회가 없었던 홋카이도 주민들은 야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에 호응하듯 니혼햄은 삿포로돔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내 공영구장에서도 정규시즌 경기를 분산 개최하며 인기몰이에 적극 나섰다. 첫해 평균 관중 수는 3만4천여명으로 폭발적이었다.

이후 일본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 우승, 다르빗슈, 나카타쇼 등 스타 선수의 입성과 함께 니혼햄은 인기 구단으로 도약하게 됐다. 홋카이도 주민들은 “사람들이 이곳은 라면과 눈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야구도 유명하다”며 밝히고 있다.



- 니혼햄의 열정, 야구도시로 바꾸다

니혼햄이 홋카이도로 오기 전까지 이곳 주민들은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기타 구단의 지방 개최 경기 몇 경기만 관전할 수밖에 없었다. 특정 팀을 응원하기 보단 그냥 야구가 보고 싶어서였다. 니혼햄은 홋카이도의 야구 ‘포텐’을 터트려 줬고 팬들은 이에 부응했다.

일각에서는 니혼햄이 홋카이도에 뿌리 내리는 과정을 두고 육성게임에 비유하기도 했다. 황무지에 자신의 밭을 일군 것은 모기업 니혼햄의 신입 사원 교육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니혼햄이 연고이전에 성공할 수 있는 요소를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한다.

1. 자신이 성공 했던 것을 기억해라
2.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라
3. ‘우리 팬’을 만들기 보단 ‘당신의 팀’이 되어라

니혼햄의 성공은 야구 본고장 미국에도 소개된 바가 있을 정도로 인정받는 비즈니스가 됐다. 니혼햄 감독을 역임했던 트레이 힐먼은 “분명 시골 동네었다. 하지만 야구장은 가득찼다”라며 니혼햄의 성공을 극찬했다.

삿포로의 인구는 190만명, 이들을 포함한 홋카이도의 인구는 550만명이다. 니혼햄의 지난 해 관중수는 약 200만명으로 홋카이도 인구 2명 중 1명은 야구장을 찾은 셈이다. 니혼햄의 사례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1000만명=1구단’을 비판하는 자료 인용되고 있다.

니혼햄은 구단 운영 뿐만 아니라 성적도 준수해 타 리그 구단의 견학 요청도 뒤따르고 있으며 대만 프로야구와 미국 마이너리그 팀들이 니혼햄의 운영 방식을 배워가기도 했다.





서영원 기자 schneider19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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