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K리그를 망치고 있는 'K-잔디'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마저 발목 잡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오만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캐나다-미국-멕시코 공동개최)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7차전에서 1-1로 비겼다. 황희찬의 선제골이 터졌지만, 후반 35분 오만에게 동점 골을 내주면서 승점 2점을 잃었다.
한국이 주춤한 사이, 요르단이 팔레스타인을 3-1로 제압하면서 쿠웨이트와 2-2로 비긴 이라크를 3위(3승 3무 1패∙승점12∙골득실+2)로 내리고 2위(3승 3무 1패∙승점12∙골득실+6)로 올라섰다. 한국과의 격차는 승점 3점 차다.
오는 25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한국과 요르단의 맞대결은 사실상의 1, 2위 결정전 느낌이 됐다. 여기에 한국은 6월에 열리는 9차전이 이라크 원정이다. 이라크가 팔레스타인과의 8차전에서 승리한다면 한국은 더욱 난처한 입장에 처한 가운데 이라크 원정을 떠나야 하는 위기 상황에 몰린다.

그런 만큼 오만전 승리가 아주 중요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이어진 월드컵 본선 진출을 3차 예선 단계에서 마무리 짓기 위한 중요한 결전이었는데 오만의 의도적인 5-4-1 밀집 수비를 전혀 뚫지 못했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말고의 수비진 문제가 아닌 공격진에서의 파훼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졸전이었다.
특히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이재성(마인츠),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 등 유럽파가 2선에서 받치고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주민규(대전하나시티즌)가 FIFA 랭킹 80위의 수비진을 뚫지 못했다.
적어도 이강인(PSG)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위협적인 장면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 백승호(버밍엄시티)의 부상으로 전반 38분 교체 투입된 이강인은 3분 만에 번뜩이는 왼발 전진 패스로 황희찬의 골을 도왔다.
후반에도 여러 기회가 찾아왔다. 특히 주민규를 대신해 투입된 오세훈(마치다 젤비아)의 제공권이 후반 초반 돋보이면서 추가 득점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놓치면서 흐름을 내줬다. 요르단이 교체로 역습에 나서자 이에 대비하지 못한 것도 화근이었다.
경기력 자체가 졸전이었지만, 문제는 잔디였다. 선수들이 킥을 할 때마다 잔디가 들리고 오만 선수가 직접 들린 잔디를 발로 밟아 보수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이강인의 부상 장면도 잔디 때문으로 드러났다. 실점 직전 장면에서 이강인이 수비에 가담해 공을 빼앗으려 왼발을 들이밀었는데 발을 디딘 뒤, 곧바로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이강인은 일어나지 못했고 실점 직후에도 의료진이 달려가 치료했다.
왼발을 제대로 딛지 못한 이강인은 부축을 받으며 오른발로만 경기장을 빠져나왔고 이후 스태프에게 업혀 라커 룸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경기 후 퇴근길에는 목발을 짚고 부축을 받으며 퇴근했다. 21일 오전 병원 진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잔디는 비단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부터 유럽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기성용(FC서울)을 비롯해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지금까지 10년 넘게 잔디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홈에서 경기력이 더 떨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인 상황이다.
한국 기후가 워낙 변화무쌍하고 극단적이지만, 관리 주체의 미흡한 관리가 늘 도마 위에 오른다. 실제로 이번 3월 A매치 역시 기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예상됐지만, K리그1 FC서울과 김천상무의 경기에서 드러난 처참한 잔디 상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을 인지한 협회는 지난 2월 AFC에 그나마 잔디 상태가 좋은 고양종합운동장과 지난해 말 잔디 교체를 진행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을 홈 경기 개최지로 알렸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3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부지방은 기후변화로 인해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계속 남하하면서 최저기온이 영하를 유지했고 이로 인해 비가 내릴 것도 눈으로 바뀌어 3월 첫째 주와 셋째 주에 잇달아 폭설이 쌓였다.
축구협회도 폭설이 내린 지난 18~19일에 걸쳐 고양종합운동장 잔디를 점검했지만, 잔디 문제는 결국 대표팀에게 아킬레스건이 됐다.
상대 팀 오만의 라시드 자베르 감독도 한국 잔디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자베르 감독은 "잔디가 달랐다. 아주 소프트했다. 부드러웠다. 어제 훈련하면서 느꼈던 부분이다.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이 잘 튀긴다고 생각했고 스터드도 잔디 안으로 잘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경험했던 다른 잔디와는 달랐다고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잔디 상태에 대해 "양 팀 모두 동일한 조건에서의 경기였다"라며 길게 말하지 않았지만, 명단 발표 기자회견 당시 이미 잔디 관리 주체에 간곡히 부탁한 바 있다.
홍 감독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잔디 문제에 대해 "팀의 경기력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건 어떤 잔디에서 하느냐다. 축구가 기술적이고 전술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잔디가 받쳐주지 못하면 큰 문제다. 우리도 지난해 경험이 있고 올해도 고양과 수원으로 옮긴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선수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팀의 퀄리티를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잔디를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더 부탁의 말씀도 드리고 좋은 잔디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한다면 좋은 경기력이 나올 거라고 100%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고양종합운동장이 그나마 국제대회 조건에 부합하는 경기장 중 잔디가 상급이었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잔디는 더 괜찮을 것"이라고 했지만,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고 부상자까지 나오는 이런 잔디가 한국에서 상급이라는 현실은 한숨만 나오게 한다.
사진=고양, 고아라 기자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