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황희찬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진출 3년차를 맞아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지난 시즌 득점 수를 이번 시즌 10경기 만에 돌파하더니 위르겐 클롭과 펩 과르디올라 등 프리미어리그의 지난 10년을 지배한 두 명장으로부터 짧은 간격을 두고 연달아 극찬을 받았다.
이어 강팀 뉴캐슬 유니이티드를 상대로 폭발한 환상 골이 프리미어리그 사무국 선정 10월 이달의 골 후보에 올랐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2일(한국시간) '10월 버드와이저 이달의 골' 후보를 발표했다. 10월에 터진 프리미어리그 골 중 총 8골이 후보 리스트에 오른 가운데 '코리안 가이' 황희찬의 골도 하나 들어갔다.
황희찬은 지난달 29일 영국 울버햄프턴 몰리뉴 경기장에서 열린 뉴캐슬과의 2023/24시즌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경기에서 1-2로 뒤지던 후반 26분 동점골을 넣어 2-2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뉴캐슬이 지난 시즌 4위를 차지해 이번 시즌 21년 만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오른 강팀이란 점을 감안하면 울버햄프턴엔 천금 같은 승점 1점인 셈이다. 그걸 황희찬이 엮어냈다.
황희찬은 득점 상황 때 페널티박스 안에서 공을 잡은 뒤 상대 수비가 달려들자 왼발로 접어 완벽하게 따돌렸다. 그런 다음 자신이 주로 쓰는 오른발이 아니라, 왼발 강슛을 때려 골망을 출렁였다. 우직한 돌파가 트레이드마크인 줄 알았던 황희찬에게 이런 세밀한 테크닉과 골결정력이 있었나란 생각이 들 정도의 훌륭한 골이었다.
이번 시즌 황희찬의 프리미어리그 6호골이자 리그컵까지 합쳐 통산 7호골이었다. 황희찬은 특유의 무릎 세리머니를 펼치며 마침 비가 쏟아져 잔디가 흠뻑 젖은 그라운드 위에서 크게 웃었다.
특히 이날 골이 더 가치 있었던 것은 황희찬이 1-2로 뒤지는 페널티킥을 심판의 석연 찮은 판정 속에 내줬기 때문이다.
울버햄프턴은 전반 추가시간 뉴캐슬의 코너킥을 막아냈는데, 황희찬이 박스 안에서 공을 밖으로 걷어내려는 찰나에 뉴캐슬 수비수 파비앙 셰어가 달려와 공을 건드린 뒤 황희찬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울버햄프턴 선수들은 즉각 항의했고 비디오 판독(VAR)까지 가동됐으나, 판정 변화는 없었다. 그대로 뉴캐슬의 페널티킥이 인정됐다. 하지만 경기 직후 개리 오닐 울버햄프턴 감독이 "(황희찬이 준 페널티킥은) 스캔들 감(Scandalous decision)이다. 끔찍한 복기였다. VAR이 판정 번복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끔찍했다"며 "황희찬이 공을 걷어내려하는 과정에서 셰어와 전혀 닿지 않았다. 축구화 털끝도 안닿은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중립적 위치에 있는 영국 채널 '스카이스포츠'의 축구 전문가 캐런 카니조차도 "전혀 페널티킥 감이 아니었다"며 "황희찬이 공을 차려했지만 제때 발을 뺐다. VAR 리뷰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원심을 뒤집지 않았다"며 심판 판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 만큼 억울하고 멘털 정리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득점을 하고 자신은 물론 울버햄프턴까지 패배 수렁에서 구해내 골 가치가 더욱 컸다.
영국 미러는 "황희찬이 있다는 건 축복 받은 일이다. 황희찬은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득점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등장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황희찬은 구단 역사로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황희찬은 울버햄프턴이 창단된 1877년 이후 최초로 홈 6경기 연속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앞서 홈 5경기 연속골도 146년 역사상 처음이었는데 황희찬이 다시 갈아치웠다.
물론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선정한 '이달의 골'을 보면 황희찬 수상 가능성이 만만치 않다.
황희찬 외에 제이콥 브룬 라르센(번리), 잭 해리슨(에버턴), 브라이언 음뵈모, 사만 고도스(이상 브렌트퍼드), 디오구 달롯(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디 은케티아(아스널), 필립 빌링(본머스)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해리슨, 고도스가 각각 터트린 중거리 골, 빌링이 쏜 장거리 로빙 슛이 꽤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달의 골' 후보에 올라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황희찬이 한 단계 올라섰음을 인정받는 것으로 간주된다.
마침 과르디올라 감독과 클롭 감독이 올 가을 황희찬을 극찬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먼저 지난 9월30일엔 맨시티를 지휘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황희찬의 이름을 몰라 "코리안 가이"라고 부르면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과르디올라 감독은 울버햄프턴전을 앞두고 "우린 항상 울버햄프턴과의 경기에서 고전했다. 마테우스 누네스 등 몇몇 선수들이 떠났지만 울버햄프턴엔 퀄리티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페드루 네투, 마테우스 쿠냐, 그리고 그 한국 선수는 정말 훌륭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정확히는 "더 코리안 가이(The Korean guy)"라고 칭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코리안 가이'라고 했는데 이 표현이 한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화제가 됐다. 울버햄프턴은 '더 코리안 가이' 셔츠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평가를 정확해서 황희찬은 맨시티전에서 결승포를 터트려 지난 시즌 '유러피언 트레블' 주역을 쓰러트렸다. 그러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황"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에 앞서서는 리버풀을 지휘하는 독일 출신 세계적인 감독 위르겐 클롭도 황희찬의 성인 '황'을 분명히 발음하며 그를 경계했다.
클롭 감독은 9월16일 역시 울버햄프턴 원정 경기를 앞두고 "(울버햄프턴이) 중요 자원들을 잃어버린 것은 맞다. 그럼에도 그들의 선수단을 보면 '정말 좋은 팀이구나' 싶다울버햄프턴 선수단 면면을 살펴보면, 황(희찬)이나 사샤 칼라이지치같은 (위협적인) 선수들은 선발로 출전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페드루 네투 같은 좋은 선수들이 많다"며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황희찬은 클롭 감독이 교체로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방증하듯 전격 선발로 나와 전반 초반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골망을 출렁이며 울버햄프턴이 전반전을 1-0으로 이기는 중심이 됐다. 물론 홈팀이 후반에 3골을 얻어맞아 역전패했지만 황희찬은 자신의 가치를 클롭 감독 앞에서 입증한 것이다.
황희찬을 시즌 초반 벤치에 앉혔던 오닐 감독 역시 이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면서 황희찬을 치켜세웠다.
오닐 감독은 황희찬이 프리미어리그 5호골을 넣을 때까지 슈팅이 11개밖에 되지 않아 프리미어리그 골전환율 1위를 달리는 것에 주목하면서 "100반먼 쏘면 들어가는 중거리슛보다는 황희찬처럼 위치 선정을 잘 해서 정확하게 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극찬했다.
그런 많은 칭찬 속에 황희찬의 골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수한 골 중 하나로 인정받는 일까지 일어났다.
사진=프리미어리그 SNS, 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