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인천공항, 유준상 기자) 대회 내내 답답한 흐름을 이어간 문보경(LG)이 결승전에서의 활약으로 아쉬움을 훌훌 털어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7일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에서 대만에 2-0 승리를 거두고 대회 4연패를 달성했다. 대회 준비부터 조별리그, 슈퍼라운드와 결승까지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나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대표팀은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여러 선수의 활약이 빛났지만, 노시환(한화)과 함께 내야 양 쪽 코너를 책임진 문보경 역시 팀에 기여한 바가 컸다.
조별리그까지만 해도 문보경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성적은 3경기 10타수 2안타 타율 0.200 4타점. 문보경은 5할 이상의 타율로 맹타를 휘두른 최지훈(SSG)이나 윤동희(롯데)에 비해 부진한 편이었다.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1차전에서도 4타수 무안타로 침묵한 문보경은 슈퍼라운드 2차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5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안타는 1개에 불과했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장타가 나왔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문보경은 팀이 6-0으로 앞선 8회초 2사 1·2루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치면서 주자 2명을 모두 불러들였고, 결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문보경은 이튿날 결승에서 2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대만 선발 린위민의 초구를 통타, 우익수 방면 2루타를 때리면서 단숨에 득점권 기회를 잡았다. 이후 1사 3루에서 김주원(NC)의 희생플라이 때 홈으로 쇄도하면서 팀에 선취점을 안겼고, 결과적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한 게 결승전 승리로 이어졌다.
대표팀이 금메달을 확정하는 순간 모두가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나눴고, 몇몇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부담감을 훌훌 털어낸 문보경도 울컥한 모습이었다.
대회를 마친 뒤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문보경은 "(결승이 끝나고) 운 건 아니고 울컥했다. 울 뻔했다"라며 "그냥 누구 한 명이 그런 게 아니고 전부 다 고생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정말 다 좋았던 것 같다. (금메달을 딴 순간은) 야구를 시작하고 나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다. 생각보다 더 긴장했고, 뭔가 가슴에 단 태극마크가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리그와 다르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것이었다. 팀이 2-0으로 앞선 9회초 1사 1·2루에서 고우석(LG)의 땅볼 유도 이후 2루수 김혜성이 타구를 잡아 1루주자를 태그했고, 1루수 문보경에게 공을 전달하면서 병살타를 완성했다. 그렇게 한국의 대회 4연패가 완성됐다.
문보경은 "갑자기 공이 전광판과 겹쳐서 순간적으로 안 보였는데, 일단 어떻게 해서든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을 잡았다. 비디오 판독이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먼저 뛰쳐나가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1루 베이스를 끝까지 밟고, (1루심의) 아웃 제스처를 보고 뛰어 나갈 때 '진짜 이겼구나, 우승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대표팀에 소집되기 전만 해도 물오른 타격감을 자랑하던 문보경은 조별리그에 이어 슈퍼라운드 1차전까지 침묵했다.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나도 좀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김)혜성이 형이나 대표팀 형들이 다른 타구들도 운이 나빠서 잡힌 것이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결과가 안 좋았던 게 아니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마냥 빗맞은 타구만 나오지 않은 것 같았고, 그 얘길 들은 이후 '내가 기죽을 필요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더 자신있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아쉬움을 잊게 만든 건 결승전 첫 타석에서 나온 2루타였다. 불과 5일 전에 만났던 린위민을 다시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문보경은 소속팀의 선배이자 캡틴인 오지환(LG)의 조언을 떠올리며 타석에 섰다.
문보경은 "(조별리그 2차전과) 구위는 비슷했던 것 같은데, 비가 많이 와서 대만 선발투수(린위민)의 컨트롤적인 부분은 좀 힘들었던 것 같다. 공 자체는 좋았다"라며 "(오)지환이 형과 전화했을 때도 '그럴 때일수록 더 과감하게 쳐야 하고, 볼카운트에 몰리고 어려운 승부를 하면 워낙 공이 좋으니까 더 어렵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초구부터 자신있게 쳐야 한다'고 했다"고 얘기했다.
이어 그는 "일단 그 생각으로 초구에 무조건 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들어갔는데, 운이 좋게 타이밍이 맞아서 그렇게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직구 타이밍에 나가다가 그냥 딱 타이밍이 잡힌 것 같다. 어떻게 쳤는지도 모르겠고 워낙 많이 긴장해서 치고 나서 그냥 베이스만 보고 열심히 뛰었던 것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2루타 이후 린위민의 폭투 때 3루로 이동한 문보경은 1사 3루에서 김주원이 타구를 멀리 보내면서 태그업을 시도할 수 있었다. 문보경은 "여유가 있었는데, 내가 생각보다 많이 느리더라. 그날 비를 많이 맞아서 그런지 다리가 안 나갔다. 뛰면서 '왜 이렇게 안 나가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냥 달리기가 느린 것 같다"고 웃었다.
소속팀에서 주전 3루수로 활약하던 문보경은 대표팀에서 1루수를 맡았다. 수비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는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그냥 경기에 집중해서 잘하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라며 "타구 같은 건 3루수를 볼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각도만 좀 다를 뿐이었다. 대표팀 내야수들의 어깨가 너무 좋아서 공이 정말 강하게 날아와서 처음엔 살짝 어려웠지만, 그래도 훈련하면서 계속 공을 받다 보니까 적응됐다"고 미소를 지었다.
문보경은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1차전 당시 9회초 유격수 김주원의 송구를 받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공식 기록은 유격수 송구 실책이었지만, 본인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 문보경은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그게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어떻게 해서든 잡았어야 했는데, 공을 잡지 못해서 (팀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돼서 정말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제 문보경은 소속팀의 통합 우승 도전을 위해 힘을 보태려고 한다. 그가 항저우에 머무르는 동안 LG는 지난 3일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이튿날 부산 원정에서 세레머니를 펼친 선수들은 6일 홈구장인 잠실야구장에서 다시 한 번 우승 세레머니로 팬들과 기쁨을 누렸다.
문보경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시안게임에 집중하느라 소속팀을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다. 9일 복귀하는데, 가서 또 느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소속팀, 대표팀 다 우승했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고 앞으로의 활약을 다짐했다.
사진=중국 항저우, 김한준 기자/엑스포츠뉴스 DB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