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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3위·농구 은메달·테니스 우승…인구 380만 크로아티아가 말하는 것 [김현기의 스포츠정경사]

기사입력 2022.12.22 06:30



(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이변과 명승부가 이어졌던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리오넬 메시의 '라스트 댄스'를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한 아르헨티나가 최고의 주인공이었고, 아프리카 4강 돌풍을 쓴 모로코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도 결승에서 졌지만 굉장히 잘했다. 포르투갈전에서 황희찬의 기적 같은 결승포로 12년 만에 16강에 오른 한국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팀이었다.

그리고 3위를 차지한 크로아티아의 선전도 눈부셨다.

지난 대회 준우승팀이었던 크로아티아는 이번 대회 조별리그 탈락까지 거론됐던 나라였다. 그런데 16강에 간 것은 물론 8강에서 우승후보 1순위 브라질까지 누르고 3~4위전을 이겨 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근 두 차례 월드컵에서 각각 준우승과 3위를 차지한 크로아티아를 보면 대단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1991년 6월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된 크로아티아 인구가 400만명이 채 안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500만에 육박하던 인구가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공산 세계 붕괴 뒤 20% 이상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크로아티아 성과가 더욱 돋보인다. 이 나라는 1998년에도 월드컵 3위를 했다.



더 놀라운 것은 크로아티아가 축구만 반짝 잘하는 나라가 아니란 점이다.

올드팬들이라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미국의 '드림팀'과 남자 농구 결승에서 붙었던 나라가 크로아티아였다는 것이 생각날 것이다.

축구와 함께 경쟁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 테니스도 어찌나 잘 치는지,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2018년 우승, 2021년 준우승을 포함해 우승과 준우승을 각각 두 번씩 차지했다.

남자 핸드볼과 남자 수구도 올림픽을 제패했고, 스키·조정·사격·요트 등에서도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4개나 딴 여자 알파인스키 스타 야니카 코스텔리치는 국민적 영웅 반열에 올라 있다. 유명 격투기 선수 크로캅도 크로아티아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이번 카타르 월드컵 3위 입상을 계기로 '크로아티아가 왜 이렇게 스포츠에 강한가'를 다시 묻고 있다.

스포츠천국이라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 '마르카'도 스페인 리그에서 뛰는 크로아티아 축구, 농구 선수들에게 스포츠 강국 비결을 물어보고 있다. 다만 거기서 뛰는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내놔 '마르카'는 '크로아티아의 스포츠는 미스터리'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현지 언론과 스포츠인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크로아티아가 스포츠를 잘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좁혀진다.



우선 성인남자의 평균 신장이 180cm를 뛰어넘는 월등한 신체 조건이다. 키가 크다는 네덜란드를 앞선다고 한다. 체격이 크다보니 체력도 좋고 스포츠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포츠 강국 달성에 체격이 전부라고 할 순 없다. 

그래서 일각에선 동유럽 특유의 스포츠 유산에 민주주의, 산업화 결합되면서 시너지를 낸 것을 배경으로도 본다.

크로아티아는 독립 이전에 지금의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코소보와 함께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을 이루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역시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미국과 소련에 모두 속하지 않는 '제3세계'의 리더 중 하나였고 그러다보니 스포츠에 많은 신경을 썼다. 1987년 U-20 월드컵 우승, 1988 서울 올림픽 남·여 농구에서 미국과 소련을 위협하며 나란히 은메달을 따낸 것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주의 시절 체계화된 스포츠 시스템과 유능한 코칭 스킬이 동유럽에서 가장 민주주의와 경제 안정을 다진 크로아티아와 만나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크로아티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7000달러 수준으로 동유럽 국가들 중 최상위권이다. 내년 1월1일부터 동유럽 국가 중엔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에 이어 3번째로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가입이 확정되면서 서유럽에서도 인정 받는 국가가 됐다.


       
'크로아티아위크' 등 현지 언론들은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꾸준한 관심, 스포츠로 나라를 알리겠다는 션수들의 애국심, 엘리트스포츠가 국가 홍보로 탁월하다는 정부의 식견 등을 추가한다.

스포츠를 존중하고 체육을 소중하게 여기는 무형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계승된 것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농구 은메달 주역으로 지난해 미국프로농구(NBA) '명예의 전당'에 오른 토니 쿠코치는 "나도 어릴 때 농구는 물론 탁구와 축구까지 함께 배웠고 결국 농구를 택했다"며 "지금도 스포츠 스타가 되고자 하는 크로아티아 젊은이들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준우승 주역이 된 이반 라키티치는 "농구라는 종목을 이해하고, 또 내가 볼을 차기 전부터 토니 쿠코치가 누구인지 이해하면서 자랐다"며 "스포츠 영웅이 '반 옐라치치 광장(수도 자그레브의 대형 광장)'에 올 때마다 축구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히 됐다"고 했다. 체격과 기술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크로아티아 스포츠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스포츠의 가치를 알고, 스포츠를 국가의 상징으로 여기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이음새로 쓰는 곳이 크로아티아가 아닌가 싶다.

한편으론 그간 스포츠로 울고 웃었고,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환호했던 한국 사회도 크로아티아라는 나라를 통해 체육과 스포츠의 중요성, 엘리트 스포츠의 기능과 필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정립해아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AP, EPA/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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