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잠실, 김현세 기자) "편견을 조금은 깨지 않았을까요?"
유희관(36)은 남달랐다. 그의 직구는 있는 힘껏 던져도 평균 130km/h 초중반대에 머물렀다. 싱커는 평균 120km/h대. 흔히 '아리랑볼'이라고 부르는 이퓨즈볼을 던지기라도 하면 전광판에는 80km/h대 구속이 찍혔다. 150km/h를 던지는 투수가 즐비한 가운데 느린 공을 던지는 유희관을 흥미로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편견을 갖는 이도 많았다. 또 보통의 운동선수들과 달리 둥그런 체형을 가졌다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편견과 맞선 시간은 13년이다. 그동안 101승이 쌓였다. 베어스 프랜차이즈로는 역대 최다 109승을 달성한 OB 시절의 장호연에 이은 2위. 좌투수로는 유희관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또 그가 달성한 100승은 KBO리그 역대 32명만이 누린 영광이다. 이때도 '수비가 강한 두산이니까, 넓은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니까 100승한다'는 비판이 뒤따랐지만, 이를 본 최원호 한화 퓨처스 감독은 감독대행 시절 "그러면 모든 두산 투수가 100승해야 하지 않느냐"며 "철저한 관리가 수반됐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봤다.
■2013년 5월 4일
유희관은 "그날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날"이라고 말한다. 이전까지 불펜에서 뛰어 온 그는 그날 외국인 선수 더스틴 니퍼트가 근육통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자 1회부터 던질 기회를 받았다. 대체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5⅔이닝 무실점으로 입단한 지 4년 만에 데뷔 첫 승을 거뒀다. 그리고 2013년 데뷔 첫 10승까지 내달린 그는 이후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2015년에는 커리어 하이인 18승을 거두며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거둔 건 KBO리그 역대 기록으로 따져도 이강철, 정민철, 장원준, 그리고 유희관까지 4명밖에 없다. 이에 그는 '편견을 이겨내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8년 연속 10승을 달성한 때"라며 "100승을 달성한 순간에도 편견을 조금은 깨지 않았을까"라고 돌아봤다. 그는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첫 승, 그때 니퍼트의 대체 선수로 등판해 승리 투수가 됐다. 그 1이라는 숫자가 있었기에 101이라는 숫자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 "나를 미워한 팬 분들도 감사합니다"
두산은 2022년 선수단 연봉 협상에 유희관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런데 금액을 조율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두산 관계자는 "연봉 협상이 아닌 진로를 고민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귀띔했다. 짧은 시간에도 그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현역 은퇴를 공식화하는 것으로 모든 오해를 풀었다. 그가 은퇴를 선언하자 그의 소셜 미디어(SNS)에는 '그동안 감사했다',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쉽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는 "악플이 아닌 선플을 받아 본 게 참 오랜만이다"라며 웃었다. 고마운 마음에 댓글도 일일이 달았다.
은퇴를 결심한 그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여기에는 '나를 미워한 팬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적었다. 그는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다. 관심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당사자는 속이 상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게 애정이 있었기에 그렇게 말씀해 주신 거다. 그런 분들조차도 감사했다. 어떻게 보면 내 팬이 아니어도 넓게 보면 야구 팬이다. 야구 팬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 "이제는 다른 분야에서 국가대표가 돼 보겠습니다"
유희관은 프로야구선수로 지낸 13년 동안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국내 선수 가운데 월등한 성적을 남긴 시즌에도 국제대회에서는 외면받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느린 공이 국제대회에서도 통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뽑혔더라면 잘했을 거라는 자신은 있었다. 내 공이 느리기에 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부족했다고 본다. 이제는 다른 분야에서 국가대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받아들였다.
그라운드에서는 13년 동안 편견과 싸웠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시작할 제2의 인생에서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다. 방송과 해설 분야에서도 탐낸다고 한다. 그는 "야구를 그만두면 막막할 줄 알았는데, 너무 감사한 일이다"라며 "아직 해설위원이 될지, 방송을 할지, 코치가 될지 아직 모른다. 무슨 일이든 내게 주어지면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이제는 웃는 얼굴로 제2의 인생 멋지게 살아 보겠다. 많이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사진=잠실, 박지영 기자
김현세 기자 kkachi@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