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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리그 Express] 안양 한라, 亞 통합 챔피언이 되기까지

기사입력 2010.03.29 02:59 / 기사수정 2010.03.29 02:59

이경섭 기자

[엑스포츠뉴스=이경섭 기자] 안양 한라가 일본 쿠시로 단초 아레나에서 열친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일본제지 크레인스를 상대로 연장 4분 33초경 주장 김우재의 서든데스 골로 5-4, 1점차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2006-07시즌 크레인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아시아리그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안양 한라는 창단 16년 만에 플레이오프 첫 정상에 올랐고, 7번째 시즌 도전 만에 통합 챔피언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안양 한라가 아시아 통합 챔피언이 되기까지는 험난한 고비들을 넘기며, 수많은 일본팀의 견제를 받아야만 했다. 그동안 일본팀들이 전부 우승컵을 가져왔던 전례를 볼 때, 안양 한라의 챔피언 등극은 신선한 충격이다.

아시아 넘버 3의 오명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국가대표 공식 경기 전적을 살펴 봐도 한국 아이스하키 역사 82년 동안 일본을 한 차례도 넘어선 적이 없다. 그만큼 챔피언십을 도전하는 입장인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 매김하고 있고, 디비전 1에서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한국팀 입장에서는 그 벽이 너무나 높아 보였다. 현재도 한일전 A매치 전적을 보면 16전 1무 15패로 한국의 절대 열세다. 

기록에서 나온 1무도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극동지역 예선에서 현대오일뱅커즈가 코리아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국가대표 경기에 나섰던 것이고, 당시 일본 국가대표팀을 맞이해서 골리 김성민(현대)이 70세이브를 기록하며 1-1로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는 전설로 남아있다.  그 당시 한국대표팀은 80년대 전성기를 거쳐왔던 중국 아이스하키에도 일방적으로 밀려 있던 위치였고, 아시아에서도 넘버 3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안양 한라(당시 한라위니아)는 초창기부터 아시아 넘버 3의 오명과 함께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원년(2003-04)리그 첫 경기로 신요코하마에서 열렸던 고쿠도전에서 1-11로 패했었고, 쿠시로 원정에서 크레인스에 3-13으로 패하며 아시아의 변방 한국 아이스하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당시 공, 수 양면에서 일본에 비해 뚜렷한 실력 차가 나기 때문에 용병 쿼터를 4명을 사용했지만, 일본팀과의 경기에서 고전을 거듭하며 제대로 된 경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라는 당시 리그 출범 이전부터 전통의 강호로 인정받던 일본 실업팀들에 빈번히 연습경기를 제안했으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차례 외면받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일본팀들의 존재는 우승을 노리기에 너무나 높은 산처럼 느꼈다.

안양 한라의 성장 프로젝트, 아시아 리그에서 날개를 달다

2004-05 시즌부터 안양으로 연고계약을 체결 후, 안양 한라는 아시아리그에서 가장 파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성장 가능성이 있는 팀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전 2003-04 원년 시즌에는 체코, 슬로바키아 4인방을 영입하면서 기지개를 켰고, 2004-05 시즌에는 웨인 그레츠키와 한솥밥을 먹었던 오일러스 골든 세대의 주역, 스탠리컵 5회 우승의 위엄을 자랑하는 핀란드의 에사 티카넨을 영입하면서 전 세계에 주목을 받았다.

그렇지만, 한라의 성적은 정규리그 5위로 추락했고, 플레이오프에 탈락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또 다시 새로운 용병들을 수급하며 다른 방향에서 성장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성장 프로젝트는 안양 한라의 체코화였다. 2005-06 시즌, 변선욱 감독 후임에 체코의 오타카 베보다 감독을 영입하면서 외국인 감독 체제로 변환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갔다. 거기다 체코 4인방을 직접 데려왔는데, 그 중 1명인 패트릭 마르티넥은 아시아리그 정상권 플레이메이커로 인정받으며 올 시즌 아시아리그 정규리그 MVP를 차지하며 최절정의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 31골을 기록하며 한국인 최초의 득점왕을 차지한 송동환과 패트릭 마르티넥의 콤비네이션 플레이가 통하면서 25승 13패 승점 78점을 기록하며 정규리그 2위에 오른 동시에 리그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2005-06 시즌 플레이오프 4강에서 고쿠도에 1승 3패로 밀리며 챔프의 꿈을 다음으로 기약하였다. 그 이후 2년간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지만, 기술은 좋지만, 힘이 부족하다는 평 속에서 부진한 성적으로 어려운 시즌을 보냈고, 베보다 호와는 이별을 해야만 했다. 

당시 오타카 베보다 감독은 일본팀을 상대로 비디오 분석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앞으로 선수단이 운용하는데 많은 노하우를 전수하며 팀에 이바지했다. 그 결과, 안양 한라가 일본팀들과 경기를 치르면서 점점 자신감을 보이면서 실력 차를 많이 줄이기 시작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더욱 강해진 NEW 심의식 호

안양 한라는 2008-09 시즌부터 새롭게 체질개선을 시작하는 작업으로, 두 번째 성장 프로젝트에 돛을 달기 시작했다. 코리아리그 1세대 주역이자 한라의 프랜차이즈 스타 심의식이 감독으로 기용되면서 NEW 심의식 호의 새 출발을 알렸다. 무엇보다 장기간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생긴 무뎌진 정신력을 강조하였다. 

수비수 출신인 하이원의 김희우 감독이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에 임한다면, 공격수 출신인 심의식 감독은 공격적인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체코 커넥션으로 유일한 패트릭 마르티넥과 함께 모두 북미 용병선수들(브래드 패스트, 브락 라던스키, 존 아)을 수혈하며 짜임새 있는 팀을 만들었다.

안양 한라는 국내 최대어로 평가받았던 김기성, 박우상 콤비를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하면서 선수층이 강화되었다. 기존에 송동환, 패트릭 마르티넥 콤비에서 김기성, 박우상, 브락 라던스키가 가세 되면서 용병/토종, 신/구 조화가 이루어지는 다이너마이트 공격진을 만들었다. 

거기다 김원중, 이유원, 김규헌, 김한성, 김근호 등 1~4조까지 모두 공격능력이 좋은 선수들로 채워지는 올 오펜시브 라인을 만들었고, 수비진에서는 브래드 패스트, 존 아를 중심으로 김우재, 윤경원 등 탁월한 토종 선수들로 이루어졌고, 골텐더에서는 손호성 골리가 든든히 버티면서 공수, 골리까지 모두 탄탄해졌다.

당시 일본은 세이부, 크레인스, 오지의 3강 구도가 그대로 이어지는 판국이었으나, 혼혈 선수로 구성된 나가노 구성원들이 은퇴하는 상황에서 좋은 신인들이 나오지 못하면서, 하향 평준화되는 악순환을 거듭해나갔다.  초창기 일본팀과의 경기에서 스피드가 느렸던 안양 한라였지만, 현재는 일본팀들의 스피드를 쉽게 따라잡는 현상이 일어나며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그 과정에서 한일 양측의 대결이,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공격 부문은 안양 한라, 하이원에서 골 결정력과 과감성이 뛰어난 한국 선수들이 호평을 얻었고, 수비 안정성과 골텐더에서는 기본기가 좋은 일본 선수들이 호평을 받았다.

'Dreams come true' 통합 챔피언 등극

2008-09 시즌부터 쾌조의 출발을 보인 안양 한라는 크레인스를 제외한 모든 팀에게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주었다. 결국, 25승 11패의 호성적으로 승점 76점 기록과 함께  2위 세이부에 승점 3점 앞서며 아시아리그 정규리그 첫 정상에 오르며 첫 리더스 플래그를 받았다.

2008-09 리그 MVP 브락 라던스키는 2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 포인트왕을 독식했고, 김기성은 2년 연속 한국인 신인왕에 뽑히며 슈퍼 신인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당시 안양 한라의 공격은 세세하게 했던 유로피언 스타일을 완전히 탈피하고, 북미 스타일의 선 굵은 하키를 통해서 경기 주도권을 잡는 하키로 많은 팬에 인상적인 모습을 심어주었다.

안양 한라는 다음 2009-10 시즌에서 수비진의 핵심 윤경원, 이권준이 빠지면서 어려운 시즌이 예상되었고, 일본 아이스하키도 세이부팀의 갑작스러운 해체로 휘청거리면서 한일 모두 모두 어려운 시즌을 준비했다.  다행히 안양 한라는 대부분의 정규리그 우승 멤버들은 그대로 포진되어 있었고, 맞수 하이원이 알렉스 김, 팀 스미스가 돌아오면서 팀 짜임새가 갖추어지는 등 한국팀들의 동반 선전이 예상되는 분위기였다. 

결국, 뚜껑을 열어보니 안양 한라와 하이원은 정규리그 우승 이후 자신감을 보이면서 승을 올리는 횟수가 더 늘어났고, 관록 있는 팀으로 성장하면서 리그 상위권에서 경합했고, 안양 한라가 최종적으로 우승후보로서 기복 없는 활약을 선보였다.

결국, 안양 한라는 2009-10 시즌, 모든 팀에게 5할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는 고른 활약 속에 26승 10패 승점 79점을 기록하며 2위 오지 이글스에 승점 5점차로 앞서며 아시아리그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정규리그 2연패는 오지를 상대로 한 홈 3연전에서 모두 스윕하며 이룬 결과라 더욱 뜻깊었다. 당시 우승이 결정되었던 1월 31일 오지전에서 기적적인 동점골과 연장 역전골에 성공한 패트릭 마르티넥은 생애 첫 아시아리그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달콤한 기억을 뒤로하고, 챔프전을 준비한 안양 한라는 패트릭 마르티넥의 부상 공백 속에서도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수 하이원을 3승 1패로 제압하며 사상 첫 아시아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 상대인 크레인스는 정규리그 4회, 플레이오프 2회, 통합 챔피언 1회에 오른 명실상부 아시아리그 명문팀이었다. 

그만큼 경기 조직력이 뛰어난 데 비해 파워가 부족한 크레인스는 뛰어난 경기운영과 관록으로 최종전까지 이끌었지만, PO MVP로 선정된 브락 라던스키의 2연속 결승골과 김우재의 우승 결정골을 성공하며 연장에서만 3차례 승리를 거두는 괴력을 선보인 안양 한라가 통합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우승의 결정적인 견인차 구실을 한 심의식 감독은 감독상을 수여하는 영광을 누렸다.

안양 한라, 그대는 진정한 아시아리그 챔피언

안양 한라는 이번 챔피언결정전 경기를 살펴 봐도 충분히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2009-10  기준으로 2년째 고수한 올 오펜시브 라인은 더욱 짜임새가 갖추어졌고, 기존 핵심 선수들은 기복 없는 기량을 보였다. 거기에 신인왕으로 선정된 조민호가 가세 되면서, 팀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김원중, 김근호의 성장은 안양 한라우승의 큰 보배가 되어주었다.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수비는 올 시즌 신인 이돈구, 홍현목, 벅스의 오노 다카유키가 가세 되면서 얇아진 블루라인을 사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고, 존 아의 슈팅과 수비 집중력은 호평을 받을만 했다. 거기다 브래드 패스트 부상 공백을 더스틴 우드가 제대로 메워주면서 디펜스가 더욱 탄탄해졌다.  수비형 수비수인 더스틴 우드는 블루라인의 선봉장으로 안정적으로 퍽을 다루며 팀 공헌도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주장 김우재의 마지막 마침표 골은 AL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며 팀 내 핵심 수비수다운 면모를 보였다.

주전골리인 손호성은 정규리그 1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출장하며 엄청난 체력을 보여주었고, 특히 마지막 챔피언결정전 4차례의 연장 승부에서 보여준 집념과 강한 집중력은 큰 경기에 강한 이시카와 히사시(크레인스)를 상대로 3차례 이기면서 우승의 견인차로 충분히 빛날 수 있었고, 아시아 챔프 팀 골리 다운 최상의 활약을 펼쳐냈다.

마케팅적인 면에서도 챔피언다운 행보를 이어나갔다. 특히 2006년부터 비인기 종목으로는 최초로 아프리카 방송을 통한 안양 홈 전 경기 인터넷 생중계 중계방송과 라디오 장내방송 중계를 시행하고 있으며, 팬서비스데이와 관객들과 연계된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마련하는 등 아시아리그 7개 팀 중 가장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안양시가 2005-06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아시아 하키타운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구단주의 사랑과 프런트의 노력도 남다르다.  1994년 전신 만도 위니아를 창단했던 구단주 정몽원(54) 한라건설 회장의 각별한 아이스하키 사랑을 통해 꾸준히 투자하면서 팀이 일취월장하게 성장해나갔고, 10년 넘게 구단의 총괄 매니저로 활약하는 양승준 부장의 탁월한 행정 능력도 통합 챔피언의 숨은 견인차였다.  꾸준하고 왕성한 투자를 통해 한국팀 최초의 아시아리그 정규리그 2연패와 통합 챔피언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안양 한라는 한국 아이스하키 82년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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