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선발투수는 초반 대량실점을 해도 뒤를 받쳐주는 투수들이 잘 던지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고하지만, 마무리 투수는 뒤엔 그야말로 낭떠러지 밖에 없다. 본인이 승리를 지켜내지 못하면 팀이 패배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도 크고, 또한 고독한 자리가 바로 마무리다.
프로야구 출범이래로 이선희-선동렬-정명원-김용수-구대성-이상훈-진필중-임창용등이 최고 마무리로 군림한 가운데, 올 시즌은 기존의 마무리 투수에 새로운 얼굴들이 마무리로 많이 등장한 한해였다.
지금 8개구단의 성적을 반증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8개구단의 마무리투수를 살펴보기로 하자.
바꿔서 더 공고해진 삼성의 마무리
삼성의 경우는 시즌 초반 임창용 - 권오준 가운데 더 좋은 구위를 가진 권오준을 마무리로 낙점해서 시즌을 시작했다. 선동렬감독의 '절대 신임'을 바탕으로 145km대의 빠른직구와 슬라이더 - 커브를 앞세워 구원 단독 1위를 질주하던 권오준은 6월 7~9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3연전 두번째 경기에서 2:1 앞선 상황에서 구원등판했으나 2사 2루에서 강봉규에게 동점타를 허용 구원에 실패한 이후 부진에 빠졌다. 그러자 덩달아 팀도 6월 9승 15패로 부진했다.
장고를 거듭하던 선동렬 감독은 결국 당시 17세이브로 구원 선두권을 유지하던 권오준을 과감하게 셋업맨으로 돌리고, 신인 오승환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승부수'를 던졌다. 기록적으로 구원실패가 그리 많지않았던 상황에서 더 흔들리기전에 과감하게 바꾼 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권오준을 대신해서 마무리를 이어받은 오승환은 9월 13일 현재 9승 1패 14세이브(11홀드)로 삼성의 뒷문을 확실히 지켜내고 있다.
초속과 종속이 10km정도도 안나는 차이를 가진 묵직한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 - 그리고 승부처에서도 침착한 '포커 페이스'를 무기삼아 팀의 수호신으로 거듭난 오승환을 보면 비록 아직까지도 권오준은 선발과 중간계투에서 헤매고 있으나 삼성 마무리는 더 공고해졌음에 틀림없다.
처음부터 꾸준히 마무리를 믿고 맡긴 현대 & 두산
'조라이더' 조용준이라는 확실한 마무리가 있는 현대가 비록 올 시즌 팀 성적은 하위권으로 쳐졌지만, 마무리 보직 변경없이 한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비록 지난 시즌 무리의 여파로 구위가 떨어진 조용준이지만 그래도 2승 1패 26세이브 3.35의 방어율로 구원 2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은 마무리 투수는 발굴도 어렵고, 또한 전성기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성적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두산은 엄연히 말하면 시즌 개막전에는 '5억 루키' 서동환을 마무리로 점찍었으나 첫 등판이었던 LG와의 시즌 2차전 8:4 상황에서 구원등판. 아웃카운트 하나 못잡고 볼넷을 세 개로 3실점하는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강판당한 이후 얼마 못 가서 정재훈에게 마무리 자리를 내주었다.
올 시즌 첫 '풀타임 마무리'를 소화하고있는 두산 정재훈은 기대 이상의 맹활약으로 9월 15일 현재 1승 6패 29세이브 2.29의 방어율로 구원부분 1위와 30세이브 돌파를 눈앞에 두고있다. 정재훈은 140km대 중반의 투심과 포크볼이 전부지만 공이 상당히 묵직하고, 직구와 변화구의 배합과 제구가 좋아 타자들이 공략하기 쉽지 않다.
물론 시즌 중반 구질이 노출되고, 풀타임 마무리 첫해라서 받는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삼성과는 다르게 두산 김경문 감독은 결국 다른 투수를 마무리로 쓰지않고 끝까지 그를 믿고 맡겨 지금의 좋은 결과를 낳았다.
성적은 상위권이지만 마무리는 불안불안 - SK
시즌 전부터 '우승 후보'로 꼽혔던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SK는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확실한 마무리투수가 없다.
물론 시즌 초반 위재영이 마무리 역할을 했고, 시즌 중반 조웅천이 마무리 - 위재영이 셋업맨의 보직으로 전환했지만, 미더운 모습은 보여주질 못했다.
그래서 시즌 중반 결국 기존 용병이던 카브레라와 산체스를 퇴출한 대신 영입한 크루즈는 선발 차바치는 마무리로 보직을 정했었으나 차바치가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최근에는 마무리를 조웅천과 위재영이 더블스토퍼로 꾸려나가는 중이다.
조웅천의 경우 5승 4패 10세이브 5홀드 3.49의 방어율. 위재영이 3승 2패 6세이브 12홀드에 1.89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두 선수 모두 분명 준수한 불펜 투수임에 틀림없으나 위재영이 올 시즌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95이닝이나 소화. 포스트시즌에서의 체력 부담이 있고, 조웅천역시 나이와 더불어 최근 싱커의 각이나 마무리로써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투-타의 막강전력을 갖춘 SK의 포스트시즌의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마무리를 찾고 있는 기아와 LG
프로야구에서 손꼽히는 명문팀인 두 팀의 올 시즌 몰락은 마무리 투수의 운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기아는 시즌 초반 신용운을 마무리로 점찍었다가 윤석민에서 다시 최상덕으로 바꿨다가 최근에는 전병두가 마무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운이 4승 6패 7세이브 방어율 3.08. 윤석민이 3승 4패 7세이브 4.48. 최상덕이 1승 5패 1세이브 6.51의 방어율로 모두 믿을만한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다.
그나마 올 시즌 말미에 리오스를 두산에 내주고 영입한 좌완 전병두가 비록 방어율은 4.76으로 높지만 4세이브(1승 2패)나 거둔 점은 마운드에서의 베짱만 더 키운다면 내넌 시즌 마무리로도 쓸만한 선수를 건졌다는 점에서 일말의 소득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7위 LG 역시 기아와 비슷한 상황이다. 시즌 초 2001시즌의 구위를 회복했다는 코치진의 판단으로 마무리 보직을 부여받은 '미륵' 신윤호가 시즌 초만해도 그럭저럭 마무리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으나 5월 들어 얻어맞기 시작하더니 결국 1승 4패 9세이브에 방어율이 6.25에 달하는 부진 속에 2군으로 내려갔다. 높은 방어율도 문제였지만, 볼끝에 힘이 없다보니 상대 타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후 셋업맨으로 좋은 구위를 선보인 정재복을 마무리로 낙점했으나 얼마 가질 못했고 시즌 중반 한참 4위 꿈에 희망을 걸던 LG는 에이스 장문석을 마무리로 돌리는 초강수를 감행했다. 이러한 기대에 장문석은 7세이브(5승 5패)를 올리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마무리지리를 내줬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마무리를 맡고 있는 경헌호는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마무리로 돌아선 지난 8월 16일 현대전 이후 내리 7세이브(2패)를 따내며 내년 시즌 LG의 희망으로 떠오른 상태다.
경헌호의 경우 입단할 때만해도 3억8천의 계약금을 받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전형적인 '불펜용 투수'로 전락 실전에선 별 활약을 보여주질 못했으나 장문석의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물려받은 마무리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 것이다.
기아나 LG나 시즌 내내 마무리로 고생했지만, 시즌 말미에 희망 하나는 얻은 셈이다.
돌발 변수(?)로 마무리를 잃은 롯데와 한화
이외에도 롯데는 노장진(1승 2패 18세이브 방어율 2.45) - 한화는 지연규(1패 20세이브 2.92)라는 걸출한 마무리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노장진은 개인사정 - 지연규는 어깨 통증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다.
대안으로 롯데는 이왕기 - 이정민을 중심으로 한 집단 마무리를 가동 중이고 한화는 현재 최영필로 대신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기존의 마무리 만큼은 못해주고 있는 현실이다.
포스트시즌은 결국 마무리 싸움
위에서 살펴보았듯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삼성 - SK - 두산 - 한화는 걸출한 마무리를 앞세워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고있다.
따라서 10월 1일부터 거행되는 포스트시즌에서 마무리 투수들이 어떤 활약을 보여주느냐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팬들입장에선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기존의 마무리 이외에 어떤 '깜짝 마무리'가 등장하느냐도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