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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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은반 위의 무도] 5년 후의 한국 피겨를 생각하다 - 중

기사입력 2009.09.01 11:36 / 기사수정 2009.09.01 11:36

조영준 기자

'김연아 키즈'의 실체

현재 대한빙상경기연맹에 피겨 선수로 등록되어 있는 이들은 200여 명에 이른다. '김연아 신드롬' 이후, '제2의 김연아'를 꿈꾸며 빙판을 찾는 꿈나무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 있는 빙상용품 전문점인 '규 스포츠'의 이인숙 대표는 "김연아의 등장 이후, 링크에 몰려와 피겨를 배우려는 어린 아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현재 피겨 선수의 계층을 보면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는 이들 중, 시간이 지날수록 피겨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피겨가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종목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스링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선수층이 넓어지려면 오래도록 활동하는 선수들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작년 가을에 벌어진 꿈나무 대회에 참가한 인원은 80명 안팎이었다. 아이스링크에서 피겨를 배우는 인구는 늘어났지만 실제로 경기에 참가해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전문 선수 인력'은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다.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정책으로 탄탄한 선수층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선수층은 매우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메마른 사막에서 샘솟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 '한국의 피겨 유망주' - 남자 싱글 편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김연아는 일본 피겨계의 자존심이었던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현존하는 최고의 스케이터'에 등극했다. 김연아가 지닌 재능과 피눈물나는 노력은 오직 김연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 피겨의 발전과 저변을 생각할 때, 이러한 성과는 김연아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국내 피겨 정책과 행정력은 여전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망주들은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5년 이후, 한국 피겨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들 중에 가장 눈여겨볼 스케이터는 '피겨 신동' 이동원(13, 과천중)이다.

이동원의 지도자는 한 때, 김연아의 스승이기도 했던 신혜숙 코치이다. 한국 피겨 지도자의 '대모'이기도 한 신 코치는 김연아에게서 느꼈던 '놀라움'이 이동원에게서도 나타난다고 밝혔다.

"뛰어난 점프력과 타고난 끼는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다. 동원이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케이스다. 어린 남자 선수는 표현력에 한계가 있는데 동원이는 내가 가르쳐주지 못한 것도 즉석에서 해내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1~2년 동안 트리플 5종 점프를 가다듬고 고난도의 기술을 완성한다면 국제무대에서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이동원과 함께 남자 싱글 기대주로 평가받는 이준형(13, 도장중)도 빼놓을 수 없는 유망주다. 이준형의 미래가 밝게 점쳐지는 이유는 '탄탄한 기본기'에 있다. 이준형의 지도자는 어머니이기도 한 오지연 코치다. 오 코치는 "개인적으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기본기'와 '스케이팅'이다. 탄탄한 기본기와 스케이팅 기술의 효과는 시간이 지나야 나타난다. 인내심을 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본기와 스케이팅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피겨 팬들로부터 '버터 스케이팅'이라 불리고 있을 만큼, 이준형은 어린 나이에 비해 매우 유연한 스케이팅을 구사하고 있다. 현재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남자 싱글 토털 패키지'인 패트릭 챈(19, 캐나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스케이팅 기술이다. 또한, 2008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인 제프리 버틀(27, 캐나다, 현재 은퇴)도 유연한 스케이팅과 탄탄한 기본기로 안정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실제로 많은 피겨 전문가들은 이준형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뛰어난 기본기와 스케이팅 기술을 가진 이준형이 큰 부상 없이 성장한다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것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국내 피겨 선수들이 기본기와 스케이팅에 약점이 있다는 지적은 심심치 않게 나왔었다. 눈앞에 있는 승급시험에 합격하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점프' 훈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와 올바른 자세, 여기에 빼어난 스케이팅 기술이 밑바탕을 이룬다면 점프의 습득도 한층 수월하게 진행된다.

이러한 지도방식의 토대가 이루어지려면 눈앞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는 피겨 스케이팅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국내 대부분 스포츠 육성 정책은 여전히 '성적지상주의'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 시일에 '트리플 악셀' 같은 고난도 기술을 익히는 것이 '피겨 천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단시일에 고난도의 기술을 습득했지만 기본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잘못된 기술'을 고치는 시간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정상에 오른 스케이터들 중, 잘못된 기술을 고치는 데에 많은 훈련을 투자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선수들에 비해 기본 코스를 착실하게 수행한 김연아는 자신의 프로그램 완성에 전념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성과는 '록산느의 탱고'와 '죽음의 무도'란 불멸의 프로그램으로 완성되었다.

진정한 '피겨 천재'는 이른 시일 안에 트리플 악셀 같은 고난도의 점프를 뛰는 선수가 아니다. 실전 무대에서 완벽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선수야말로 '특별한 스케이터'로 평가받을 수 있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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