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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 -70kg 2회 우승자 마사토에게 권투는 무엇이었나?

기사입력 2009.05.23 08:40 / 기사수정 2009.05.23 08:40

강대호 기자

[엑스포츠뉴스=강대호 기자] 4월 1일 K-1 -70kg 토너먼트 2회 우승자(2003, 2008) 고바야시 마사토(53승 2무 6패)가 입식타격기 은퇴를 선언했다. 마사토는 은퇴의사를 밝히면서 K-1 주최사 FEG의 연중 최대행사인 연말대회 다이너마이트에서 올해 -70kg 토너먼트 우승자와 프로 최종전을 희망했다.

입식타격기 -70kg 최정상급 선수인 마사토는 권투와 인연이 많은 선수다. 은퇴를 앞둔 마사토에게 권투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인생과 권투와의 관계를 조명해본다.

1. 프로권투선수 지망생

1979년 3월 10일 일본 치바에서 태어난 마사토는 1994년 만 15세의 나이로 권투에 입문한다. 프로권투선수를 지망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지만 자격시험 당일에 결장한 마사토의 탈락은 당연하였다.

마사토의 시험 당일 결석은 ‘실종’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이는 ‘자의’였으며 이유는 무언가에 대한 항의의 뜻이었다고 한다.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 압력이었다고 추정된다.

프로권투선수를 포기하고 만 17세에 킥복싱에 입문한 마사토에게 권투는 예민한 유년기 ‘좌절’의 상징인 셈이다. 입식타격기 입문 후에도 마사토의 기술 기반이 권투라는 시각이 많을 정도로 영향은 이어진다. 또한, 이후 권투와의 다양한 인연은 마사토가 권투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갖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2. 이다 사토시 (飯田覚士)

마사토는 입식타격기 선수임에도 별도의 전문 지도자로부터 권투를 배우고 있다. 세계권투협회(WBA) -52kg 챔피언 경력자 이다 사토시(25승 1무 2패)가 마사토의 권투 스승이다.

1969년 8월 11일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이다는 1991년 3월 23일 프로데뷔, 20연승을 거두고 WBA 챔피언에 도전한다. 타이틀전 1무 1패의 좌절 후 3수 끝에 정상에 등극한 이다는 1998년 12월 23일 3차 방어 실패를 끝으로 은퇴했다.

수려한 외모의 마사토가 일본에서 입식타격기에 국한되지 않고 격투기 전체의 간판스타 중 한 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졌다. 마사토의 권투스승인 이다도 대학 재학 중인 1990년 일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복싱 예비학교’라는 기획에서 외모로 주목을 받아 ‘아이돌 권투선수’로 불릴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3. 수리야 브라사틴피마이 (Suriya Prasathinphimai)

일본 킥복싱의 간판으로 여겨지는 마사토지만 현대 입식타격기에서 무에타이를 모르고 정상급 선수로 활약할 수는 없다. 입식타격기 선수로 마사토의 스승은 공식적으로 2명인데 앞서 언급한 권투전문의 이다 외에 다른 한 명인 누아또라니는 무에타이 담당이다.

마사토는 2000년 11월 1일 K-1 J-MAX 2000에서 무라드 사리(프랑스)와 국제스포츠공수도협회(ISKA) -67kg 동양타이틀전을 가져 KO승을 거둔다. K-1 최초의 -70kg(MAX) 전문대회에서 생애 첫 국제타이틀 획득의 영광을 얻은 것이다.

여세를 몰아 마사토는 2000년 12월 5일 타이국왕탄생일 기념대회에 참가한다. 마사토의 입식타격기 프로 61전 중 무에타이 본고장 타이에서 치른 것으로 확인되는 유일한 경기다. 5라운드 무에타이 방식으로 진행된 이 경기의 상대는 수리야 브라사틴피마이였다.

마사토는 수리야에게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며 11연승 도전이 좌절됐다. 마사토에게 입식타격기 프로 두 번째 패배를 안긴 수리야는 후일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2002년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 -72kg 2위, 2004년 올림픽 -75kg 3위의 성적을 낸다.

4. 2002년 1월 26일

2000년 수리야전 패배를 딛고 마사토는 2001년 입식타격기 5전 전승(KO·TKO 4회)을 거둔다. KO·TKO로 이긴 상대로는 세계무에타이평의회(WMC) -70kg 영연방 챔피언 경력자 벤 버튼(56승 2무 21패)도 포함된다.

2002년 1월 26일 마사토는 일본 교에이권투체육관(kyoei-boxing.co.jp)에서 K-1 3라운드 방식으로 권투 훈련을 한다. 세계권투평의회(WBC)·WBA 챔피언만 11명을 배출한 명문 교에이체육관에서 마사토는 코뼈가 골절되고 만다.

마사토에게 골절상을 안긴 이는 현 동양태평양권투연맹(OPBF) -67kg 챔피언 사사키 모토키(31승 1무 7패)다. 올해 7월 4일 OPBF 3차 방어전을 치르는 프로권투 -67kg 세계 10위 사사키는 당시 같은 체급 일본 챔피언이었다.

마사토는 사사키의 강력한 오른손 훅을 맞고 등을 돌려 순간적으로 경기 포기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현 동양태평양 챔피언과의 권투 연습에서 골절을 당한 것은 치욕이라고 보긴 어렵다.

마사토의 2002년 1월 26일이 굴욕으로 회자하는 것은 사사키에게 당한 골절 때문이 아니다. 골절 이전 마사토는 오사코 료(3승)와 권투 연습에서도 압도당했다. 주변에서 시간 종료 이전에 말려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마사토의 완패였다.

2007년 6월 18일 현 대한민국 -73kg 챔피언 오필승(본명 정동주, 7승 5패)과의 8라운드 권투경기에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둔 오사코는 마사토와 연습 당시 고등학교 재학 중인 아마추어였다.

물론 오사코 역시 호락호락한 이는 아니다. 고등학교 통산 전국대회 6회 우승(-69kg 2, -75kg 4)은 일본 역대 두 번째였으며 고등학교 1학년으로는 최초로 전국대회 -75kg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오필승전 승리를 끝으로 프로전적이 없는 오사코와 마사토의 지명도 차이는 현격하다. 2002년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권투에 특별한 감정이 있는 마사토가 오사코에게 완패, 사사키에게 골절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5. 버나드 홉킨스 (Bernard Hopkins)

WBC·WBA·국제권투연맹(IBF) -73kg 챔피언 경력자 버나드 홉킨스(49승 1무 5패)는 현재 프로권투 -79kg 세계 1위다. 2004년 마사토는 홉킨스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대전을 희망하며 권투 경기로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04년 홉킨스는 WBC·WBA·IBF 챔피언으로 두 차례 방어전에서 승리했다.

마사토는 자국 프로권투는 보지 않고 외국 경기만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선호하는 선수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9승)라고 한다. 2007년 12월 8일 WBC -67kg 타이틀전을 끝으로 은퇴했던 메이웨더는 7월 18일 WBA -61kg 챔피언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50승 1무 4패)와 복귀전을 갖는다. 마르케스전 체급은 -67kg.

6. 최용수 (崔龍洙)

WBA -59kg 챔피언 경력자 최용수(29승 1무 4패)는 2006년 9월 16일 K-1 한국대회로 입식타격기에 데뷔, KO승을 거둔다. 1995년 10월 21일 WBA 챔피언 결정전 승리 후 7차 방어까지 성공한 최용수는 8차 방어 실패 후 5연승으로 다시금 도전자 자격을 얻었으나 2003년 1월 13일 만장일치 판정패로 진 것이 현재까지 마지막 프로권투경기다.

마사토는 2006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에서 최용수와 대결 예정이었으나 최용수는 연습 중 부상으로 결장한다. 최용수의 대체선수로 투입된 프로권투 -73kg 일본 챔피언 경력자 스즈키 사토루(23승 6패)는 마사토에게 TKO패를 당했다.

2007년 입식타격기 2전 2승을 거둔 최용수는 다이너마이트에서 마사토와 격돌한다. 그러나 1라운드에서 권투에서 몸에 밴 더킹을 하다가 마사토의 하이킥을 맞아 다운을 당했다. 마사토는 이후에도 주먹 공격과 로킥 등으로 최용수를 공략, 3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7. 마에다 히로유키 (前田宏行)

프로권투 -61kg·-64kg·-67kg 일본 챔피언 경력자 마에다 히로유키(29승 2무 8패)는 작년 3월 27일 자신의 블로그(http://blog.livedoor.jp/bukurogym)에서 마사토의 기량을 평했다.

2005년 4월 19일 -70kg 일본타이틀전에서 패한 것을 끝으로 프로권투에서 은퇴한 마에다는 2006년 9월 4일 K-1 MAX를 통해 입식타격기에 데뷔했으나 TKO로 졌다. 작년 2월 2일 MAX 일본예선에는 준결승 진출의 성적을 냈다. 입식타격기 1승 3패 - KO·TKO 1승 2패.

일본예선을 마친 시점에서 마에다는 마사토에 대해 “과거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권투 기량은 3라운드의 K-1 방식이라면 일본 챔피언을 상대로도 통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호평했다.

마에다는 “마사토의 기량은 익히 알고 있었으며 얕잡아 보지도 않았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막상 주먹만을 섞었을 때 경험한 마사토의 실력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국 챔피언의 자부심으로 ‘주먹만이라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지였다고도 덧붙였다.

참고: 이 글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현지시각을 반영했다.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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