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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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100배] 5. 신이 빚은 선수들(上)

기사입력 2005.06.10 07:54 / 기사수정 2005.06.10 07:54

손병하 기자

◈ <축구 100배 즐기기> 5. 신이 빚은 선수들(上)


지금의 NBA가 있게 했던 '기록의 사나이' 윌트 채임벌린과 빌 러셀. 미국 4대 스포츠에 불과했던 NBA를 전세계인의 스포츠로 만든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전설의 홈런왕' 베이비 루스. 메이저리그 최다승(511승)과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기록했던 사이 영.

위와 같이 스포츠의 각 종목들에는 한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불멸의 영웅'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100년을 훨씬 넘겨버린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라는 스포츠 속에서도 이런 '불멸의 영웅'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축구황제'로 아직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펠레부터 현역 선수 중 '가장 위대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네딘 지단까지….

[축구 100배 즐기기]의 마지막 시리즈로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20세기를 풍미했던 '신이 빚은 선수들'을 찾아가 본다.


'축구 황제', 펠레 (본명: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 브라질)

축구에서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문화 속에서 '펠레'라는 이름은 단순한 한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하나의 종교와도 같은 신념이 되어 버렸다.

축구 선수로서 갖추어야 할 것과 경기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도 거의 완벽했던 그는 조국인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갖는 펠레라는 이름의 경의감은 대단하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펠레를 비교하면서 '셰익스피어를 준다 해도 우린 펠레와 바꾸지 않는다'라며 절대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로도 그의 진면목을 설명할 수 없는 영원한 축구 황제가 바로 펠레다.

그에 대한 찬사나 평가는 접어두기로 하고 '펠레의 후계자'로 지목 되어왔던 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의 말을 빌려 그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저는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펠레를 넘어서고 싶지는 않아요. 아니,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주요 경력

*월드컵 4회(1958~1970)출전 3회 우승(1958, 62, 70).
*1366경기 출장 1280골 성공(경기당 0.937골)
*FIFA(국제축구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정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진정한 '득점 기계', 게르트 뮐러(독일)

월드컵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74년 월드컵 결승전인 독일-네덜란드 경기. 1:1의 숨막히는 접전에 종지부를 찍은 독일 뮐러의 환상적인 터닝슛. '전차군단의 폭격기' 게르트 뮐러를 가장 잘 상기시킬 수 있는 장면이다.

국가대표경기에서 62경기에 68골(평균 1.1골), 클럽 경기에선 490경기 447골(게임당 평균 0.91골),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 그리고 월드컵 13경기 출전에 14골(최다골)의 기록 보유자.

뮐러는 지금까지 여느 스트라이커가 가졌던 좋은 신체조건도 아니었고, 빠른 스피드도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딱히 개인기나 드리블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골이 성공된 그 자리엔 항상 뮐러가 있었으며 골을 터트리는 선수는 언제나 뮐러였다.

스트라이커에게 빠질 수 없는 필수요건인 '위치 선정'. 뮐러는 가장 완벽하고 시기적절한 위치선정의 달인으로 골을 사냥하는, 전형적인 골 넣는 기계였던 셈이다.

뮐러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만큼은 펠레를 능가하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골을 결정짓는 최강의 '타깃맨'. 이 땅의 모든 스트라이커들은 뮐러의 완벽한 골 결정력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있다.

▶주요 경력

*1974년 월드컵 우승
*1970년 유럽 최우수선수상, 1970ㆍ72년 골든슈
*월드컵 13경기 1230분 출전 14골 최다골 기록
*유럽챔피언스컵 우승 2회(74, 75)


완벽한 '무결점의 천재',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그의 플레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계산기와도 같았던 그의 플레이는 어느 위치에서든, 어느 상황에서든 가장 적절하고 가장 완벽하게 구사되었다.

그것이 바로 네덜란드에서 카이저, 반바스텐, 굴리트 같은 불멸의 공격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최고로 꼽는 이유일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는 전형적인 센터포워드였지만, 경기장에서 그는 어느 위치든 가리지 않았고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팀이 수세일 때는 전방에서 든든한 방어벽이 되었고, 속공 찬스 때는 상대진영 깊숙이 드리블하여 팀원의 득점을 돕는 크로스를 날렸다.

그리고 팀이 승리를 필요로 할 때는 시원하고 깨끗한 골로 경기를 마무리 하였다. 이 모든 상황은 요한 크루이프 하나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크루이프 턴'은 아직도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드리블 기술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1970년대 혜성과 같이 나타나, 조국인 네덜란드를 넘어 세계축구의 '심장'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선수. 바로 요한 크루이프이다.

▶주요 경력

*월드컵 준우승 1974년
*1971∼1973년 유럽컵 3연패(소속팀 아약스)
*A매치 48경기 출장 33골 기록
*1999년, 20세기 최고의 유럽 축구선수로 선정


'축구 신동 & 축구 악동', 디에고 알만도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아름다운 항구, 베수비오 화산, 그리고 마라도나…. 그가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클럽 생활을 할 때 그에게 붙은 별명은 나폴리의 3대 보물이었다. 환상적인 드리블과 폭발적인 스피드 그리고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해결사 역할까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신의 손' 사건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곧이어 센터서클에서 공을 잡아 단독 드리블로 잉글랜드의 수비 다섯 명과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은 그의 천재성과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순간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비운의 천재.' 마라도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신이 그에게 주어진 천재성을 조금만 조절했더라면 그는 더욱 더 훌륭하고 위대한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완벽했기에 더 이상의 발전을 위한 노력할 이유가 없었던 마라도나. 그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던 천재성만으로도 전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진정한 축구의 천재였다.

선수생활 도중과 은퇴 후에도 마약과 방탕한 생활로 '한 인간으로서는 낙제점'을 받은 그였지만 최소한 '축구'에서만큼 마라도나는 최고, 그 이상이었다.

▶주요 경력

*월드컵 우승 1986년
*1979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 1990년 월드컵 준우승
*1979, 86, 89, 90, 92년 올해의 남미축구 선수
*1986 FIFA 월드컵 골든볼(최우수선수)


막을 수 없는 '금빛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스페인)

스페인의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고 있는 스테파뇨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던 선수였다.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였으며, 가장 완벽한 수비수까지.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스피드와 체력을 앞세워 그라운드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스테파뇨의 전성기였던 1950년 중반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인 미구엘 무뇨스는, "디 스테파뇨를 한 팀에 두는 순간, 당신은 22명의 선수(포지션별로 두 명씩)를 데리고 경기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스테파뇨의 엄청난 경기력을 찬사하는 발언이었다.

한편 아르헨티나 최고의 축구영웅이자 펠레의 유일한 비교대상이었던 '축구신동' 마라도나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제가 펠레보다 더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에 대해 얘기하자면 달라요. 그는 분명 펠레보다 한 수 윕니다. 최고예요."

이탈리아 부모의 피를 받고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국적을 갖게 된 스테파뇨는 위 세 나라의 모든 축구재능을 물려받은 실로 위대한 선수였다.

▶주요 경력

*1956~1960년 유럽컵(UEFA 챔피언스리그) 5연패
*1957,1959 최우수 유럽 선수상
*FIFA(국제축구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2위)
*'프랑스 풋볼' 금세기 최고의 유럽선수 선정


'아트사커의 영혼' 중원 장군, 미셸 플라티니(프랑스)

남미의 마라도나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유럽의 대안'이었던 미셸 플라티니는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볼컨트롤러로 명성을 날렸다. 완벽에 가까운 게임 리딩과 그 어떤 스트라이커보다 정확했던 골 결정력은 그가 왜 프랑스 축구의 영혼이라 불리는지 가장 잘 이해하게 해준다.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역사상 가장 많은 A매치 골기록을 갖고 있고(A매치 72경기 41골), 통산 429경기에 출장해 224골을 기록한 프랑스 최고의 스트라이커이기도 했다.

1958년 월드컵에서 13골로 득점왕에 올랐던 쥐스트 퐁텐느와, 1950년대 그라운드의 예술가로 불리며 절정의 활약을 펼쳤던 천재 미드필더인 라이몽 코파를 합쳐놓은 최고의 프랑스 축구 선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터치'로 전세계 축구팬들을 매료시켰던 플라티니.

분명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중원 사령관임에 틀림없다.

▶주요 경력

*1978,82(4위), 86(3위) 월드컵 참가
*1984년 유럽선수권대회(유로 84) 우승 및 득점왕(9골)
*1983,84,85 올해의 유럽선수 3연패
*통산 429게임 224골(평균 0.52골)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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