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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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한일전, 5부작 드라마로 승화

기사입력 2008.08.17 11:50 / 기사수정 2008.08.17 11:50

박종규 기자

[엑스포츠뉴스 = 박종규 기자] 그것은 드라마였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16일 베이징 우커송 구장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 4차전에서 일본에 5-3의 역전승을 거두었다. 스코어만 본다면 어떤 승부였는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음을 알 수 있다. 야구 경기였다기 보다는 실시간으로 써내려간 각본에 가까웠다.

제1막 - 불꽃 튀는 투수전

양팀은 선발투수로 김광현(한국)과 와다(일본)를 내세웠다. 패기 넘치는 투구로 타자들을 압도하는 김광현과, 노련하게 타자들을 요리하는 와다의 대결이었다. 역시 한일전에 나선 투수들답게 두 선수의 투구는 빛났다. 

김광현은 1회 첫타자부터 4회 2사까지 11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는 등 6회 1사까지 3안타를 맞으며 한점도 내주지 않았다. 이에 맞선 와다는 3회와 4회 2사 1,2루의 위기를 넘기며 6회까지 4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두 투수의 삼진 퍼레이드(김광현 7개, 와다 9개)도 눈부셨다.

제2막 - 과감한 결정, 그러나

여전히 0의 행진이 이어지던 6회말, 일본은 선두 아오키가 중전안타를 뽑으며 포문을 열었다. 곧이어 아라키의 보내기 번트가 이어져 상황은 1사 2루. 여기서 김경문 감독은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4안타 무실점으로 일본 타선을 압도하던 김광현을 내리고 윤석민을 투입한 것이다. 김광현의 힘이 남아있던 시점이었기에 김감독의 교체 타이밍은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안타 하나면 리드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등판한 윤석민. 첫타자 나카지마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기는가 했다. 그러나 4번 아라이에게 던진 3구째 공이 가운데로 몰렸다. 아라이의 방망이는 날카롭게 돌았고, 공은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일본의 특급 마무리 3인방(후지카와, 이와세, 우에하라)을 고려할 때 2점은 결코 적은 점수가 아니었다.

제3막 - 동점포, 역전극의 서곡

2-0으로 앞선 일본의 마운드에는 여전히 와다가 있었다. 와다는 선두타자 김동주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이것이 불씨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으나 투수 교체는 없었다.

무사 1루에서 세번째 타석에 등장한 이대호. 4회 중전안타로 타격감을 조율한 이대호는 1구와 2구에 연속 헛스윙했다. 와다의 까다로운 공을 계속 커트해낸 끝에 맞은 7구째, 이대호의 입맛에 딱 맞는 높은 코스였다. 이대호의 큰 스윙에 공이 접촉하는 순간, 모두가 홈런을 직감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한방이었다.

제4막 - 야구는 9회 투아웃부터

양팀이 2-2로 맞선 채 맞은 9회초. 이번에도 선두 김동주가 왼쪽 담장을 원바운드로 맞추는 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동점포의 주인공 이대호는 예상을 뒤엎고 보내기 번트를 시도, 완벽하게 성공했다. 후속 이진영이 좌익수 뜬공으로 아웃된 뒤 진갑용이 볼넷을 골라 2사 1,2루의 마지막 기회를 맞이했다.

9번 김민재 타석. 한국은 노장 김민재 대신 김현수를 내세운다. 일본전 9회 2사 후에 내세운 대타라고 하기엔 너무 경험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김현수는 그런 부담을 떨쳐버리고 일을 내고야 말았다.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투구로 일관하던 이와세의 3구째가 몸쪽으로 떨어지자 정확히 맞춰 중전안타를 만들어 낸 것. 박한이의 뒤를 잇는 컨텍트 히터 김현수의 역전타였다.

한국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현수가 2루 도루를 성공시켜 일본 내야진을 흔들어 놓은 직후, 이종욱이 전매특허인 기습번트를 감행했다. 높게 뜬 타구였지만, 이종욱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한 3루수 무라타 바로 앞에 떨어지는 행운이 따라주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땅볼타구를 '발로 차는' 실책을 저지른 일본 3루수 나카무라가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점수는 4-2.

이종욱의 '발야구' 는 또 한번 빛났다. 2사 1,3루에서 이용규 타석. 정신없는 일본 내야진을 헤집고 이종욱이 2루 도루를 시도했다. 당황한 아베는 3루주자에 대한 견제를 잊은 채 2루로 송구했다. 그러나 유격수 키를 훌쩍 넘어 중견수 앞까지 굴러가는 '어이없는' 악송구. 일본이 자멸하기에 이른 것이다.

9회초 2사 후에 3점을 얻은 한국은 5-2로 앞서며 승리를 확신했다. 여기서 드라마가 깔끔하게 끝났으면 했다.

제5막 -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승부

일본의 9회말 마지막 공격. 한국은 한기주를 투입해 경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한기주는 선두 아라이에게 우월 3루타, 이나바에게 3루 강습 타구를 허용해 1실점했다. 급기야 무라타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맞아 무사 2,3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되는 상황으로 변하자 승리에 대한 확신은 온데간데없었다.

한국의 운명이 불펜진의 어깨에 달려있음이 분명했다. 아베를 상대하기 위한 좌완 권혁의 등장. 권혁은 직구의 위력을 앞세워 아베를 짧은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3루주자는 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1사 2,3루 상황. 이번엔 두번째 소방수 정대현이 등판했다. 이전의 투수들이 모두 빠른공을 주무기로 했다면, 정대현은 타이밍을 절묘하게 뺏는 스타일. 정대현은 강타자 G.G 사토를 5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유도해냈다. 이어 대타 모리노를 상대한 정대현은 3루수 땅볼을 이끌어냈다. 방금 저지른 실책을 만회하듯 김동주는 강한 송구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경기 끝.


3시간 30분에 걸친 양팀의 승부는 마지막까지 극적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스포츠의 진면목을 보여준 한판.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무한 감동을 선사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박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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