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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V] ‘진짜’ 배구 선수였던 최광희

기사입력 2008.01.01 01:19 / 기사수정 2008.01.01 01:19

편집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최근 V리그를 보다 보면 경기가 열리는 연고지 팀 소속 선수들의 은퇴식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삼성화재의 노장 3인방인 신진식, 김상우, 방지섭 등이 은퇴식을 가진데 이어 흥국생명에 ‘미녀군단’이란 명칭을 안겨준 진혜지, 이영주, 윤수현도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그저 조용하게 코트를 떠나며 알게 모르게 뉴스로만 알려졌던 예년에 비해 이제 배구도 은퇴선수들에 대한 예우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정든 코트를 떠나는 시기에 팬들의 환호를 마지막으로 느끼게 해주는 이러한 무대는 훈훈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은퇴식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로서 1년을 더 뛰길 희망한 신진식의 은퇴는 여러모로 아쉬웠으며 흥국생명의 진혜지와 윤수현, 그리고 이영주 등은 부상의 여파가 크기도 했으나 나이와 시기를 생각하면 은퇴가 빠르다는 것은 아쉬움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배구선수들의 빠른 은퇴시기는 이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볼을 향해 풀업 점프를 하고 쫓아가며 때리고 받아야 하는 경기인만큼 무릎과 발목 관절을 포함한 여러 부위에서 부상이 오는 특징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수들의 체계적인 몸 관리 시스템이 미진한 것이 큰 이유입니다. 게다가 프로팀의 수가 적은 만큼 팀에 합류하는 새로운 신인들과 기존의 선수들의 인원을 충당하려면 자연스럽게 20대 중반이 넘는 나이에 은퇴를 고려할 상황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한국의 배구현실을 생각할 때, 배구선수로 오랫동안 활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실업시절까지 포함해 무려 15년 동안 코트에서 뛴 ‘진짜배기’ 선수가 코트에 석별의 정을 고했습니다.

최광희(현 대한배구협회 전력분석관, 전 KT&G 아리엘스)의 은퇴식은 그래서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종목도 그렇지만 직업적인 배구선수로서 무려 15년 동안 뛰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 기간 동안 배구로 인해 빼앗겨야 했던 일상의 생활과 다른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코트에 땀과 눈물을 쏟은 점은 어지간한 열정을 가지고선 힘든 일입니다.

최광희는 외환위기 이전 소속되었던 한일합섬 시절부터 근면하고 성실한 선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훈련도 이겨내고 코트에 들어서도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최광희는 존경받아야 될 현역 선수의 대명사로 여겨졌습니다.

최광희의 배구 인생을 돌이켜보면 순탄치 않습니다. 그러나 최광희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배구는 물론 다른 스포츠 종목들의 대대적인 팀 해체를 양산시켰던 외환위기가 닥치자 여자배구 명가 팀이었던 한일합섬은 끝내 역사 속의 팀으로 사라졌습니다.

팀이 해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던 최광희는 새로운 팀인 담배인삼공사(현 KT&G 아리엘스)로 소속팀을 옮겼습니다. 또한,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그녀는 한국 여자배구의 대명사로 알려진 장윤희(전 국가대표, 전 호남정유 - 현 GS 칼텍스)의 공백을 대신했습니다.

팀의 굿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 역할을 담당한 최광희는 뛰어난 수비실력과 174cm의 작은 신장을 빠른 움직임으로 커버해내며 팀의 레프트 보공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최광희의 활약은 같은 연배의 선수들인 구민정, 장소연, 강혜미(전 현대건설) 등이 은퇴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맏언니가 되어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다독여야 할 위치에 섰던 최광희는 모든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역할까지 맡았습니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김사니(KT&G 아리엘스)와 한유미(현대건설 그린폭스)등도 현재는 소속 팀을 이끄는 역할을 하지만 최광희 앞에선 자신들의 고충을 털어내며 눈물을 쏟는다고 합니다. 스스로 강해져야만 다른 선수들을 이끌고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밝힌 최광희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했으며 그만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강해졌다고 합니다.

그녀의 진가가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한 시기는 바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최종 예선전이었습니다. 이미 대표팀 은퇴를 표명한 같은 연배 선수들인 구민정, 강혜미, 그리고 장소연 등이 다시 돌아와 팀을 이룬 올림픽 예선전에서 최광희는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로 팀의 끈끈한 조직력을 살렸으며 결정적인 상황에서 득점타를 날려주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네 명의 노장들과 당시 신진 선수였던 김사니, 정대영 등이 일심 단결한 대표팀은 세계의 강호인 러시아와 이탈리아를 모두 세트스코어 3:2로 역전승하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또한, 올림픽 메달 권에 들겠다며 야심 찬 발언을 남긴 일본 대표팀을 올림픽에서 만나 한 치의 틈이 보이지 않는 조직력을 과시하며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했습니다.

빛나는 순간의 중심에 최광희가 있었습니다. 또한, 소속 팀의 주공으로 명성을 날린 선수가 팀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리베로로 뛰었던 모습은 최광희의 성실함을 그래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코트에서 자신만의 땀과 눈물을 쏟은 선수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최광희처럼 많은 땀과 눈물을 코트에 바친 선수는 드물 것입니다.

지난 30일, KT&G의 홈 구장인 대전 충무 체육관에서 흘린 은퇴선수 최광희의 눈물은 어느 것보다도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 숱한 세월 속에서 진정한 배구선수로 거듭나고자 노력했던 ‘진짜배기’ 배구 선수가 흘린 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 KT&G 아리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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