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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만 명의 붉은 물결

기사입력 2006.05.29 08:49 / 기사수정 2006.05.29 08:49

편집부 기자
        
20세기 인류의 가장 훌륭한 발명중 하나라는 월드컵은 이제 세기를 넘어 새로운 천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1세기를 여는 첫 번째 월드컵. 2002년에 열린 제17회 월드컵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받기에 충분했다.

60억 지구촌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500g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공 하나에 울고 웃게 했던 월드컵은, 지난 70여 년의 시간을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고 21세기와 2000년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제17회 2002년 한-일 월드컵(상)

▲개최 배경


▲ 한-일 월드컵 포스터
ⓒ fifaworldcup.com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의 기적(1988년 올림픽 서울 개최)으로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쳤을 때, 대한민국은 환호했고 열광했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 중 하나인 올림픽의 개최권을 따냈을 뿐 아니라, 일본을 상대한 유치 대결에서 압도적인 승리(표 대결 서울 52:27 나고야)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런 서울 올림픽의 감동에 취해 있던 1988년, 일본은 2002년 월드컵을 겨냥하며 월드컵 개최 준비에 들어갔고, 1990년엔 월드컵 준비단을 발족시켜 올림픽의 개최 실패의 아픔을 씻으려 했다.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주앙 아벨란제(89, 브라질) 역시 공개적으로 일본의 월드컵 개최를 지지하고 나서며 일본이 아시아의 첫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우리는 월드컵 개최에 대해 이렇다할 계획이나 마음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1993년 정몽준씨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1993년 카타르 도하의 기적을 지켜보며 '아시아 축구 최강인 한국이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한 정몽준 회장은 모두가 고개를 저었지만, 월드컵 유치 경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너무나 늦은 월드컵 유치 활동의 시작이었지만, 한국은 6년이나 앞섰던 일본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기 시작했다. 1994년 5월 FIFA 부회장으로 취임한 정몽준 회장의 외교력과 한국 유치 홍보단의 눈물겨운 홍보 활동의 결과였다. 여기에, FIFA 내 '반 아벨란제'의 성향을 띄었던 UEFA(유럽축구연맹)이 한국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면서 일본 쪽으로 기울었던 월드컵 개최권은 치열한 경쟁 양상으로 바뀌었고, 1994년 말, 일본의 고노 요헤이 외상이 도쿄를 방문한 한승주 당시 외교부 장관과의 만찬 자리에서 처음 공동 개최론을 꺼냈다. 과열되는 유치 경쟁으로 어느 한쪽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아보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일본은 곧 공동 개최 입장을 철회했고 그 이면엔 아벨란제 회장과 블레터 사무총장(현 FIFA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 일본의 승리를 장담해 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유치 경쟁이 계속되던 1996년 3월 AFC(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인 술탄 아마드 사가 정식으로 공동개최론을 제기했지만, 아벨란제 회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이를 거부했다. 이런 아벨란제 회장의 노골적인 밀어주기에 폭발한 UEFA는 '공동 개최'를 결의안으로 채택하고, 이를 묵살할 경우 한국에 표를 몰아주겠다는 강경 노선을 택했다.

위기를 느낀 아벨란제 회장과 블레터 사무총장은 당시 취리히에 와있던 일본의 미야자와 전 총리에게 공동 개최 수락을 종용했고, 결국 1996년 5월 31일 한-일 양국의 합의하에 역사적인 첫 '월드컵 공동 개최'가 성사되었었다.

일각에서는 표 대결에서 한국이 유리했었는데 왜 공동 개최안을 수용했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우리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한 그런 싸움이었다. 만약 한국이 단독 개최를 고집했다면 FIFA 내 개혁 세력으로부터 그런 지지를 받을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6년이나 먼저 시작한 일본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세계를 감동시켰던 붉은 물결과 태극기
ⓒ fifaworldcup.com

▲월드컵 뒷얘기

수천 만 명의 붉은 물결

6월 4일 폴란드전 70만 명, 10일 미국전 100만 명, 14일 포르투갈전 350만 명, 18일 이탈리아전 500만 명, 22일 스페인전 600만 명, 그리고 25일 독일전 650만 명.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을 뜨겁게 붉었다.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은 붉은 옷을 차려입은 '붉은악마'들로 가득했으며 4천7백만 국민의 30%에 이르는 1천 3백여만 명이 한번쯤은 거리 응원에 참가했었다.

전 세계 외신과 축구팬들은 한국의 놀라운 승리와 더불어 더 놀라운 거리의 '붉은 물결'에 경의감을 나타냈고, 이는 가장 월드컵답고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세계인들의 가슴에 각인되었다.

우승후보들 줄줄이 '집으로...'

2002 월드컵만큼 축구 강국들이 눈물을 흘렸던 대회가 또 있었을까? 우승을 목표로 내세우며 한국과 일본 땅을 밟았던 세계의 축구 강국들은 본선 토너먼트 진출은 고사하고 1라운드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며 쓸쓸히 고국 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A조에 속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세네갈에 개막전 패배를 당하며 1무 2패 무득점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며 예선 탈락했으며, 죽음의 F조에 속했던 아르헨티나도 스웨덴과 잉글랜드에 가로막혀 16강행이 좌절되었었다. 또, 포르투갈은 한국에 덜미가 잡혀 예선 탈락을 아픔을 맛봐야 했었다.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나라가 줄줄이 예선 탈락을 당하자 월드컵의 '질'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기우는 대한민국의 드라마와 같은 연승 행진과 브라질의 5회 우승을 향한 쾌속 질주로 곧 사라져 버렸다.

월드컵 최단 시간 골 터지다

6월 29일,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는 아쉽게 요코하마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한 대한민국과 터키가 월드컵 3, 4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은 비록 결승행이 좌절되었지만, 4강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뤄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한국의 선공으로 진행되었던 전반, 휘슬이 울리기가 무섭게 터키의 하칸 수쿠루가 한국 진영으로 돌진했고 홍명보는 자신에게 연결된 공을 제대로 트래핑 하지 못하면서 하칸 수쿠르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하칸 수쿠르는 골키퍼 이운재의 빈 곳으로 침착하게 밀어 넣었고, 월드컵 역사상 최단 시간 골(10. 8초)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냈다.

종전 기록은 15초로 1962년 대회에서 나왔었는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체코 슬로바키아의 바끌레프 마세크가 기록했었다.

▲ 안정환, 이탈리아전 골든골의 순간
ⓒ fifaworldcup.com

▲대회 기록

*대회기간 : 2002.5.31 - 2002.6.30(31일간)
*참 가 국 : 프랑스, 세네갈, 우루과이, 덴마크, 스페인, 슬로베니아, 파라과이, 남아공, 브라질, 터키, 중국, 코스타리카, 한국, 폴란드, 미국, 포루투칼, 독일, 사우디, 아일랜드, 카메룬,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잉글랜드, 스웨덴, 이탈리아, 에콰도르, 크로아티아, 멕시코, 일본,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 (32개국)
*개최도시 : 한국-서울, 부산, 광주등 10개 도시, 일본- 요코하마, 삿포로 등 10개 도시
*총 득 점 : 64경기 161득점, 평균 득점 2.51골
*총 관 중 : 2,705,134명, 평균 광중 43,517명
*득 점 왕 : 호나우두(8골·브라질)
*결 승 전 : 브라질 vs 독일 ( 2 : 0 )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사상 첫 월드컵 공동 개최로, 밀레니엄을 여는 새천년의 첫 월드컵으로 그리고 아시아에서 열린 최초의 대회로 많은 의미와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동안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만 열렸던 월드컵이 비로소 제3대륙에도 닫혔던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더 많은 세계를 품에 안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한 전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었다.

대회 진행과 경기 내용 등 월드컵의 기본 요소들은 물론이고, 한국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함성으로 더 아름답게 간직되고 있는 2002 한-일 월드컵은 분명 FIFA가 자부할만한 감동적이고 월드컵다운 월드컵이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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