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18:39
자유주제

개봉 D-1, 역도산 파헤치기

기사입력 2004.12.15 02:02 / 기사수정 2004.12.15 02:02

두정아 기자




내가 39년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인생이란 온몸을 던지겠다는 각오와 투지가 없이는
결코 얻을게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승부다


-역도산 (Rikidozan)



천왕 아래 역도산 

일본 역도산. 이렇게 써도 편지가 배달됐다고 한다. 천왕아래 역도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남자, 역도산.

김이라 불리는 함경남도 출신의 한 남자가 있다. 스모선수가 되기 위해 온갖 수모를 다 이겨내지만 끝끝내 조센징이라는 차별은 그의 앞길을 막는다. 시대는 그의 믿음을 지켜주지 못했고 이에 분노한 김은 스모선수의 상징인 상투 머리를 스스로 싹뚝 잘라 버리고 태평양을 건너 레슬링을 배워온다.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미국 레슬러들을 줄줄이 제압하는 그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다 주었다. 그는 그 시대가 만들어 놓은 영웅이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였다.

세상을 다 가졌다고 느끼는 순간, 인생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우연히 건물 위에서 떨어진 화분하나에 그는 극도로 불안해 한다. '머리에 맞았으면 분명히 죽었을거야.'라는 역도산의 불안한 독백은 세상을 다 가졌지만 결코 웃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인생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11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비용과 한일합작이라는 스케일을 보더라도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화려한 겉모습을 갖추고 있다. 체중을 28kg이나 불리고 일본어 더빙과 레스링 대역 없이 역도산을 소화해낸 설경구의 연기도 어떤 물량 공세에 못지않은 이 영화의 화젯거리다. 제작사나 배급사, 캐스팅, 게다가 한일 합작이라는 프리미엄까지 이미 개봉을 앞두고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완벽한 영화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대부분의 전기 영화는 일정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이미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기대치를 뛰어 넘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 고비를 넘는 것이 영화의 흥행의 중요한 키워드다.
그렇다면 과연 역도산은 그에 충실했는가.

전기 영화들은 화려하고 사건 중심의 화제로 눈길을 모은다. 반면 역도산은 한 인간이 지닌 감정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 하려 한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영웅 이야기를 들려주길 거부하며 한 인간을 바라보라고 설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매우 심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용기와 열정, 아픔과 슬픔이 모두 담긴 너무 복잡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굳이 하나를 이야기 하자면 그것은 열정이다. 일일이 기사자료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역도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설경구가 체중, 일본어, 레슬링에 도전하며 만든 영화라는 것이다.
혹자의 표현대로 ‘물 먹은 소마냥 몸을 불린 설경구’는 생각보다 일본어 대사도 자연스럽고 레슬링 장면에서는 이미 실제와 같은 연기력으로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었다.


역도산이 과연 한국의 영웅이 될 수 있나?
 
역도산이라는 인물의 영향력은 일본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그동안 일본이 희대의 영웅인 역도산을 영화로 만들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야쿠자와의 깊은 관계 때문이다. 이권다툼으로 인해 역도산의 등에 칼을 꽂았던 야쿠자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보스의 자리에 앉아 있다. 역도산은 또한 북조선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익 정치권의 눈치도 봐야 했다. 역도산 사망 40주년이 되어서야 일본 영화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결국 인간적이고 드라마적인 송해성 감독의 시나리오가 유족들로부터 최후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
그의 사후 평가는 출신에 대한 논란만큼이나 양극으로 나뉘어져 있다. 일본 최고의 신사였다는 평가와 비열한 모사꾼일 뿐이라는 양분된 평가의 모호성은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역도산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그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겼는데 주위 측근들조차도 조선인임을 모를 정도로 철저했다고 한다. 역도산에게 조선 출신이라는 것은 평생의 멍에였다. 영화는 최고의 자리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 남자의 본능적인 욕망 앞에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과연 비난 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고 관객들의 동조를 권한다. 그러나 끝까지 조선인임을 감추며 사라져버리는 역도산을 과연 동정해야하는지 비판해야하는지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심기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이불에 뒤덮인 채 거구의 일본 사내들에게 한꺼번에 짓밟히면서도 '아리가또, 아리가또… (감사합니다)'라며 계속 소리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심기가 몹시 불쾌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스크린은 일본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일본인들로 가득차 있다. 90% 이상이 일본어 대사이기 때문에 외국 영화처럼 자막 대사를 봐야하는 점도 놀라운 것이었고, 과연 감독이 역도산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감독 스스로도 정체성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영웅으로 남은 역도산이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할 때 그가 과연 온전한 세계인이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감독은 ‘역도산이란 인물의 진실은 무엇인가' 하고 의문을 던지지만, 관객들은 감독에게 ‘이 영화의 진실이 무엇인가’하고 묻게 된다. 수수께끼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남겨줄 뿐이다.






흥행은 그 때 그 때 다르다

 실제로 이런 한일 합작 영화, 드라마 치고 양국 한 나라라도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현실은 바로 흥행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데 양국합작 대중문화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양국 합작이라는 계속 되풀이되는 시도를 하기전에 실상과 허실 사이의 공백을 먼저 매꿔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분명 수작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은 영화다. 그러나 그것의 전제는 한국영화 최대작을 이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극중에서의 인물은 배우가 담아내기 마련이다. 설경구를 신뢰하는 많은 이들은 적어도 한 남자의 치열한 삶을 담아냈다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흥행요소는 모두 갖췄다. 그러나 완벽한 '역도산'이라는 잔칫상에 딱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진실성이 없는 교류는 아닐까.



두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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