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 정지석이 2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승리,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완성한 뒤 챔프전 MVP를 수상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안산, 고아라 기자
(엑스포츠뉴스 안산, 최원영 기자)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니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은 2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3차전 OK금융그룹과의 원정경기에서 접전 끝 세트스코어 3-2(27-25 16-25 21-25 25-20 15-13)로 승리를 차지했다.
3연승으로 챔프전을 끝마쳤다. 정규리그에 이어 챔프전 우승까지 싹쓸이했다. V리그 사상 최초로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 2020-2021시즌부터 통합우승으로 시동을 건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V리그 역대 두 번째로 통합 3연패를 빚었다. KOVO컵 대회 우승까지 얹어 창단 첫 트레블을 이뤘다(남자부 역대 두 번째). 올 시즌 마침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날 교체 출전한 아포짓 스파이커 임동혁이 블로킹 2개 포함 18득점(공격성공률 64%), 선발 출장한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이 블로킹 2개, 서브 1개를 묶어 18득점(공격성공률 50%)으로 앞장섰다. 막심 지갈로프(등록명 막심)가 13득점(공격성공률 54.17%), 교체 투입된 정한용이 10득점(공격성공률 83.33%)을 보탰다. 세터 한선수가 먼저 코트에 나섰고 유광우가 힘을 합쳤다.
영예의 챔프전 MVP는 정지석에게 돌아갔다. 정지석은 기자단 투표에서 22표를 얻었다. 3경기에 모두 나서 59득점, 공격성공률 57.50%, 리시브 효율 35.82%, 디그 세트당 2.167개를 올렸다. 특히 1차전서 블로킹 7개, 서브 1개 포함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31득점(공격성공률 67.65%)을 터트리며 포효했다. 정지석에 이어 임동혁이 4표, 막심이 3표, 아웃사이드 히터 곽승석과 한선수가 각 1표를 획득했다.
우승 세리머니 및 시상식을 마치고 취재진과 마주한 정지석은 "그냥 기쁘다. 경기 초반 조금 흔들렸는데 마인드 컨트롤해 5세트까지 끌고 갔다"며 "겨우겨우 정신력으로 버텼다. 행운의 여신이 우리 손을 들어준 것 같다. 기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 정지석이 2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승리,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완성한 뒤 왼쪽의 한선수, 오른쪽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정지석은 챔프전 MVP를 수상했다. 안산, 고아라 기자
통합 4연패의 시작점이던 2020-2021시즌 정지석은 정규리그, 챔프전 MVP를 모두 거머쥐었다. 올해 개인 두 번째 챔프전 MVP를 수상했다. 그는 "처음 받았을 때는 요스바니(요스바니 에르난데스·현 삼성화재) 아니면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뺏어온 느낌도 있었다"며 "이번에도 전체적인 그림은 (임)동혁이를 위한 무대 같았다. 또 내가 빼앗은 듯하다"고 멋쩍게 웃었다.
정지석은 "동혁이가 통합 MVP를 노리는 중이었다. 내가 동혁이 입장이어도 무척 아쉬울 것 같다"며 "그래도 이번 경기를 통해 임동혁이 누구인지 팬분들에게 제대로 보여줬다. 자랑스럽다"고 미소 지었다.
임동혁은 오는 29일 상무(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다. 정지석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아니다. 형은 올 시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훈련을 열심히 했다. 얼마나 준비했는지 아니 괜찮다"며 "형이 챔프전에서 제 기량을 발휘해 받은 것 아닌가. 난 형만큼 경기를 탁월하게 풀어나가지 못했다. 누가 MVP든 우승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는 "난 정규리그 MVP 받으러 가겠다"며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규리그의 정지석은 예년과 달리 주춤했다. 허리 부상 등으로 3라운드가 돼서야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24경기서 192득점, 공격성공률 45.68%에 그쳤다. 정지석은 "부상으로 시즌 출발이 늦었다. 전반적인 리그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들어왔던 것 같다"며 "나 혼자 '여긴 어디지'라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감이 사라지고 실수 하나에 얽매였다"고 돌아봤다.
이어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시즌은 진짜 이대로 끝난 건가 싶었다"며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트레이너님들이 '네 몸은 이제 준비됐다. 자신감만 찾으면 된다'고 말해주셨다.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계속 하향세가 될 듯해 그것만 피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 선수단이 2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승리,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완성한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안산, 고아라 기자
정지석은 "힘들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팀에서 동혁이와 함께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팀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제 와 말하자면, 너무 힘들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챔프전서 부활했다. 정지석은 "서브에 집중했다. 스타일을 조금 바꿨다"며 "서브 감을 찾는 연습을 중점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통합 4연패를 이뤘으니 다음 목표를 세워야 한다. 정지석은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그걸 찾는 게 가장 큰 목표다"며 "건방진 소리겠지만, 감사하게도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아본 듯하다. 나태해질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한)선수 형이 '너 아직 아니야'라며 채찍질해 준다. 다음 시즌에도 통합우승을 목표로 달려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왕관의 무게는 생각보다 더 무겁다. 정지석은 "다른 팀이 보기엔 2위도 좋은 성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린 우승해야만 성공인 것 같고, 못하면 실패인 듯했다"며 "부담감이 엄청났다.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통합우승은 포기 못 한다. 정지석은 "컨디션을 다시 끌어올려 과거 내가 잘했을 때의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 동혁이가 전역 후 돌아올 때까지 팀을 열심히 지키고 있겠다"며 "대한항공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팀 내 중고참으로서 동료들에게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자극도 줘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사진=안산, 고아라 기자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