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도하, 권동환 기자) 세계선수권 금메달, 입상이라는 큰 성과를 올리고도 겸손한 자세가 눈에 띈다. 그래서 한국 수영의 미래가 더 밝다.
한국 수영이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상승세를 세계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잇고 있다. 이달 초 개막한 2024 도하 세계수영선수권에서 금2 동2이라는 역대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다이빙에서 김수지가 여자 3m 스프링보드 동메달, 김수지-이재경 조가 혼성 3m 싱크로 동메달을 따내더니, 경영에선 원투펀치 황선우와 김우민이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거는 그야말로 쾌거를 일궈냈다. 지난 12일 김우민이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깜짝 우승하더니, 14일엔 황선우가 남자 자유형 200m에서 금빛 물살을 갈랐다. 둘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다. 방장과 방졸이 나란히 우승하는 위업을 일궈냈다.
단일 세계선수권에서 메달 4개는 사상 처음이다. 복수의 금메달 역시 처음이고, 한 대회에서 경영과 다이빙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메달을 거머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리영-허윤서는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하는 노력 끝에 12년 만에 아티스틱 스위망 올림픽 티켓을 한국에 안겼다. 경영에서도 남자 접영 50m 백인철이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 기세를 이어 세계선수권 결승까지 오르고 7위를 차지했다. 단거리의 경우 폭발적인 스피드가 중요해 아시아 선수가 결승 가기도 쉽지 않다.
물론 이번 대회 앞두고 한국 선수들에게 호재는 있었다. 파리 올림픽이 불과 5개월 남다보니 메달 가능성이 높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올림픽에 전념하기 위해 일찌감치 대회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여자 자유형 800m 6연패를 비롯해 세계선수권 개인 종목 금메달 1위(16개)이자, 단체전 포함 공동 1위(21개)인 '리빙 레전드' 케이티 러데키(미국)는 "파리 올림픽에 전념하겠다"라며 도하 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후쿠오카 대회 5관왕 몰리 오캘러헌(호주), 4관왕 친하이양(중국), 3관왕 케일리 매키언, 카일 차머스(이하 호주), 2관왕 서머 매킨토시(캐나다) 등 전대회 다관왕은 물론이고 아리안 티트머스(호주), 다비드 포포비치(루마니아), 장위페이(중국) 등 스타 선수들도 도하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B급 대회라고 할 수도 없다. 다이빙의 경우, 세계 1강 중국의 정예 멤버들이 대부분 참가했기 때문이다. 경영에서도 판 잔러(중국), 닉 핑크, 케이트 더글러스(이상 미국) 등 적지 않은 스타들이 이번 대회를 올림픽 전초전으로 여기고 참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선수들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메달 사냥에 나섰고,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팀도 메달 소식을 속속 추가하며 국민들의 새벽잠을 깨우고 있다. 올림픽을 자신감도 크게 끌어올렸다.
자신감은 살리되 올림픽으로 가는 과정에서 방심하지 않겠다는 게 한국 수영 메달리스트들의 각오다. 입상의 기쁨 와중에도 냉정하게 실력을 되돌아보고 보완점을 찾았다.
한국 선수단에 이번 대회 첫 메달을 안긴 김수지는 다이빙 여자 3m 스프링보드 시상식을 마친 후 "사실 오늘 뭔가 (귀신에)씌였던 거 같다. 연습한 거에 비해 상당히 시합을 잘 뛴 거 같다"라며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다음 날 다이빙 혼성에서 동메달을 또 하나 추가할 때도 "아직 내가 생각하기엔 실력이 너무 많이 모자르다고 느낀다. 메달도 운이 많이 따라온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메달 획득을 '어제 내린 눈'이라 생각하며 파리 올림픽을 정조준하겠다는 뜻이다.
김수지와 함께 좋은 연기를 펼치며 생애 첫 세계선수권 메달을 딴 이재경도 그랬다. 그는 "메달을 따서 너무 기쁘지만 이제 개인 시합이나 싱크로 (올림픽 종목)에서 메달 딸 수만 있다면 그 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기쁠 것 같다"고 했다. 혼성 싱크로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다보니, 이젠 올림픽 종목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이 묻어났다.
월드 챔피언이 된 경영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회 경영 첫 종목에서 우승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우민은 "솔직히 이번 대회 기록이 이렇게 잘 나올 줄 몰랐다"라며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함께 레이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영광인데 그 선수들을 내가 이겼다는 게 가장 뿌듯했고, 또 믿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레이스에서 일단 내 강점인 초반 레이스를 믿고 전반에 좀 앞으로 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후반에 이제 레이스적인 부분이 조금씩 갖춰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 부분을 조금 더 보완하면 확실한 나만의 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파리 올림픽 해법을 찾아나갔다.
황선우 역시 비슷했다.
지난 두 차례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던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면서도 "기록적인 부분은 좀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이 세계선수권이라는 큰 무대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이를 토대로 (파리)올림픽도 잘 준비하면 될 거 같다. 1분43초라는 꿈의 기록을 위해 무조건 달려가겠다"고 했다. 이번 대회 남자 자유형 200m의 경우 포포비치를 비롯해 매튜 리처즈, 톰 딘(이상 영국) 등 지난 주 두차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 혹은 준우승했던 선수 3명이 불참했다. 세계선수권 우승 감격은 마음껏 누리지만 최종 목표인 올림픽을 향해 전진하겠다는 겸손한 자세가 묻어났다.
파리 올림픽을 비롯해 2026 나고야-아이치 아시안게임,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더 밝게 보이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