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3 12:53
스포츠

펠레와 마라도나, 누가 더 위대할까?

기사입력 2006.02.28 10:08 / 기사수정 2006.02.28 10:08

손병하 기자

'베토벤과 모차르트 중 누가 더 훌륭한 음악가일까?'라는 무척이나 고전적인 우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에 대해서는 이러한 비교를 무척이나 자주 한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즐기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어떤 분야의 최고를 놓고 다투는 비교라면 더욱 그렇다. 100년을 훌쩍 넘겨버린 현대 축구에서도 그러한 우문과 정답이 없어 보이는 비교의 단골손님들이 있다. 바로 '축구 황제'로 불리는 펠레와 '축구 신동'이었던 마라도나이다.

베켄 바워와 요한 크루이프, 지코와 플라티니, 호마리우와 로베르토 바조 그리고 최근 앙리와 셰브첸코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끼리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주며 이런저런 비교를 즐겨왔다. 하지만, 이런 정답이 없는 논쟁에 가장 많이 그리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지는 두 선수는 누가 뭐래도 60년대에 황금기를 보냈던 펠레와 80년대에 세계를 지배했던 마라도나일 것이다.

'황제' 펠레냐, '신동' 마라도나냐?

각자 활동했던 시대도 달랐고 포지션과 경기를 풀어가는 플레이 스타일도 다른, 심지어 은퇴 이후의 삶마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 두 사람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히 많은 사람의 입에서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펠레와 마라도나가 한 세기를 훌쩍 넘겨버린 현대 축구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소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두 명을 꼽으라고 하면 펠레와 마라도나를 선정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축구 황제' 펠레의 1958년 월드컵 당시 모습
ⓒ fifaworldcup.com
그러한 펠레와 마라도나에 대한 이른바 '축구 황제' 논쟁이 오갈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두 선수가 활약했던 시기상의 문제점이다. 펠레를 응원하는 팬들은, 펠레가 브라질을 월드컵에 세 번이나 우승시켰다는 점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기술을 습득키 힘들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펠레가 현대 축구의 장점을 체득했다면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것이란 얘기도 많다.

반면, 마라도나의 팬들은 태클 등의 수준 높은 수비기술과 함께 치열한 압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던 80년대에 그가 보여준 공격 플레이는 만약 그의 활동 시기가 60년대였다면 펠레를 능가하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펠레가 80년대 활약했다면 당시와 같은 활약을 펼치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마라도나의 경기력은 최고 그 이상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런 시기상의 문제와 더불어 두 선수에 대한 논쟁을 부추기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동료에 대한 부분이다. 펠레는 지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장했다. 당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펠레는 그 자신의 눈부신 기량도 물론 있었지만, 같은 팀 동료의 지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가린차와 자르징요 알베르토와 게르손 등 브라질 역사상 내로라하는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동시대에 활약했기 때문이었다. 펠레와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가장 큰 잣대 중 하나인 월드컵 우승 횟수에 있어서 펠레는 이런 막강한 동료의 지원을 받으며 앞설 수 있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늘 외로웠다.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신기의 드리블은 언제나 펼쳐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한 경기에서 무려 30번 이상의 태클을 당해야 했을 만큼 그는 집중 견제의 대상이었다. 마라도나는 90분 내내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수 없는 태클과 파울을 넘어서야 했고 그런 그는 늘 험난한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그런 상대의 공격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더 빠른 드리블과 날카로운 패싱력으로 또 그렇게 상대를 무력화시켰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펠레의 업적이 폄하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최고의 선수들 속에서 가장 화려한 꽃으로 피었던 펠레가 더 경이로울 수 있다. 역사에 기록될 최고 선수들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선 펠레의 그것도 마라도나가 이겨낸 시련만큼이나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누가 더 위대했나?'의 정답은 없다.

▲ '축구 신동' 마라도나의1986년 월드컵 당시 모습
ⓒ fifaworldcup.com
따라서 이 두 선수 중 '누가 더 우위에 설 수 있느냐?'라는 결론은 사실상 없다. 똑같은 출발선에 서서 총성을 받아 달리는 100M 같은 기록의 경기가 아닌 이상 이런 선수들에 대한 비교는 '누가 더 뛰어난가?'라는 답보다는 '누가 어떤 플레이를 펼쳤는가?'로 귀결되어야 맞을 것 같다.

펠레는 전투적이고 거칠기만 했던 축구에 아름다움과 예술을 불어넣은 선수이다. 상대조차 넋이 나가버리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볼 터치와 유연한 몸놀림, 거기에 적절하게 구사되는 스피드와 적중률 높은 슈팅은 축구 선수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퇴 이후에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펠레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마디'를 간직한 축구계의 황제로 아직 군림하고 있으며, 많은 선수와 팬들에게 동경과 꿈의 대상이다.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부럽지 않은 세계 유일의 나라는 펠레를 배출한 브라질 사람들이다.

마라도나는 그야말로 천재이다. 축구에 관한 그 개인의 능력만 따지고 보면 마라도나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그의 천재성을 너무 믿어서인지 더 발전하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이 완벽했기에 더 발전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펠레와 마라도나의 주요 경력 비교

◆펠레(본명: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
▲주요 경력
*월드컵 4회(1958~1970)출전 3회 우승(1958, 62, 70).
*1366경기 출장 1280골 성공(경기당 평균 0.937골)
*FIFA(국제축구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정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마라도나(본명:디에고 알만도 마라도나)
▲주요 경력
*월드컵 우승 1986년
*1979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 1990년 월드컵 준우승
*1979, 86, 89, 90, 92년 올해의 남미축구 선수
*692경기 출장 352골 성공(경기당 평균 0.51골)
남미의 마라도나에게 대적할 유럽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혔던 프랑스의 '중원 장군' 미셸 플라티니는 '마라도나는 내가 공으로 하는 모든 것을 오렌지로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마라도나의 타고난 축구 실력에 경의를 표했던 적이 있다. 지난 과거 나폴리의 3대 보물로 불렸던 마라도나는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축구계의 빛나는 보석이었다.

펠레와 마라도나는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를 지닌 선수들이다. 하지만, '누가 더 우위인가'라는 이 해묵은 논쟁은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갖은 가정과 추측 혹은 논리적인 기록들을 바탕으로 이 두 명의 위대한 슈퍼스타를 꾸준히 비교할 것이다.

결코, 정답이 나올 수 없는 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펠레와 마라도나. 그만큼 축구에 있어서 이 두 명의 이름은 위대했다.


손병하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