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축구대표팀, 2004년 11월18일부터 지금까지
2004년 11월 17일.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은 對홍콩전에 7:0으로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동시간에 벌어진 쿠웨이트와 말레이시아의 경기에서 쿠웨이트 역시 대승을 거두면서 중국은 예선 레이스를 조 2위로 마감, 최종예선 조차 오르지 못하고 일찌감치 독일과의 작별을 고하고야 말았다.
그 날 이후 대륙 전역은 중국대표팀은 물론 중국 프로축구와 중국축구계 전체에 대한 온갖 울분과 비난이 쏟아졌다. 막대한 잠재력을 갖춘 시장성에 약 15년 이상 눈독을 들여왔던 코카콜라, 필립스, 아디다스 등의 다국적 기업들이 하나 둘 손을 뗌으로서 바야흐로 2004년 연말의 중국축구계는 도저히 회생불능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하지만 중국축구계는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작업을 발 빠르게 진행시켰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소수민족인 만주족 출신으로 최근 6~7년 동안 중국축구계의 실세역할을 했던 옌스둬의 퇴진이었다. 옌스둬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일개 무명선수에서 각종 하급관리를 거쳐 중국 축구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그네들 표현대로 이른바 ‘혁명적인 연설’과 통 큰 씀씀이로 온갖 화제를 몰고 다녔던 인물.
하지만 옌스둬는 한(漢)족들의 견제를 꾸준히 받아왔다. 무엇보다 그의 치세(?)기간 동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행 좌절, 2002년 한국 월드컵본선 참패, 2004년 아테네올림픽 본선행 좌절 등 중국축구사에 길이 남을 참패들이 연이어 있었기에 언론들과 축구팬들의 ‘공적 제1호’일 수밖에 없었다.
옌스둬의 뒤를 이을 인물로 중국체육계에선 나름대로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사아룡이 등극했고 마침내 실권을 획득한 사아룡은 양이민, 장지룡 등의 다른 실세들과 함께 짧게는 2007년 아시안컵 본선과 길게는 2010년 월드컵을 겨냥한 성인 대표팀의 감독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헌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중국축구협회가 홍콩과의 월드컵 2차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 직전 즉, 옌스둬가 여전히 실권을 잡고 있었던 시기에 이미 새로운 감독을 극비리에 물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스 히딩크, 제라르 울리에, 필립 트루시에 등등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결국 사아룡은 “중국대표팀은 중국人의 손으로”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들이 판단하기에 가장 합당한 중국인은 2004년 중국 수퍼리그에서 센젠 젠리바오 팀을 팀 창단이래 최초로 정상에 등극시킨 주광후 감독이었다.
2005년 중국축구협회는 야심찬 대표팀 전력강화 프로젝트로 05년 1년 동안 스페인,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의 강팀들과 친선경기 시리즈 일정을 발표했고 곧이어 2월초에 정식으로 중국축구대표팀 감독직에 주광후를 취임시키고 그에게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게 된다.
감독 부임 후 주광후는 대표팀의 유럽전지훈련을 단행 스페인, 아일랜드 등 유럽의 강호들과 평가전을 가졌다. 시종일관 상대에 압도당하며 이렇다 할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한채 2연패를 당했지만 중국축구의 현 위치와 한계를 정확히 파악, 차후 어떤 방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에 소득이 있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평가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유럽전훈이 의미가 있었다는 것은 지난 1992년 이후 지난해까지 거의 13년 동안 중국축구의 ‘쌍두마차’였던 하오하이동-판즈이의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는 부분에 있었다.
6월 중순에는 자신들의 홈으로 코스타리카를 불러들여 두 차례 평가전을 치렀는데 6월19일의 1차전에서 2:2 무승부를, 22일 2차전에서는 2:0 승리를 거두며 팀의 경기력이 점차 상승곡선을 타고 있음을 자국 언론과 치우미들에게 과시하기도 했다.
홍승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