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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WBC FOCUS] 김광현은 이겼지만 한국에는 패한 일본

기사입력 2009.03.10 02:38 / 기사수정 2009.03.10 02:38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9일 저녁,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1, 2위 순위 결정전을 앞두고 많은 시나리오가 예측됐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확률이 낮은 경우는 1차전처럼 난타전이 일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이 비록, 한국에 콜드 게임 승을 거뒀다고는 하지만 1위 결정전에서도 총력을 다하리라 예상됐습니다.

사실, 이번 일본팀에게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화려한 선수 구성이 아니었습니다. '사무라이 재팬'이란 기치를 내걸고 팀원들이 똘똘 뭉쳐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불필요한 발언을 해 한국팀의 신경을 자극하기는커녕, 본국 팬들에게 물매를 맞았던 호시노 전 일본대표팀 감독에 비해 현 하라 다츠노리 일본대표팀 감독은 '아직도 한국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는 다소 겸손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호들갑스러운 일본 언론들은 콜드 게임으로 일본이 대승하자 기고만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팀은 유리한 자신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짜인 일정에 힘입어 1, 2위 순위 전에도 만전의 준비를 할 수 있었죠. 9일 한국전에 투입된 일본의 투수들은 모두 자국 리그에서 최고로 불리는 투수였습니다.

좌완 슬라이더에게 집착한 일본, 좌완 강속구 투수에게 완패하다

일본은 7일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김광현에게 지나치게 몰입해 있었습니다. 한국대표팀의 김인식 감독이 김광현이 난타를 당한 후, 다음 투수로 기용한 정현욱을 시험가동하고 바로 교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현욱을 조기에 마운드에서 내린 것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제아무리 봉중근이 호투를 했다 하더라도 그 뒤를 받쳐준 정현욱이 부진했다면 일본을 향한 '복수'는 불발로 끝났을 것입니다.

김인식 감독은 일본과의 1, 2위 전에 한국대표팀에서 가장 좋은 구위가 있는 두 투수를 차례로 내보냈습니다. 성격 좋기로 소문난 봉중근은 매우 침착한 선수로 유명합니다. '영원한 타격왕'인 삼성의 양준혁은 가장 치기 어려운 구질로 봉중근의 '직구'를 손꼽았습니다.

봉중근의 직구는 제구력이 잡히는 날에는 좀처럼 공략하기 어렵습니다. 타자들이 치기 어려운 코스에 절묘하게 들어가기 때문이죠. 구속은 140km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지만 볼 끝이 날카롭고 무거워서 좋은 타구가 나올 확률이 낮습니다. 여기에 직구를 살려주는 체인지업과 낙차 큰 커브까지 겸비하고 있는 봉중근은 9일 도쿄돔에서 좀처럼 잊지 못할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잡기 위해 우선적으로 넘어야 할 산으로 김광현을 지목했습니다. '일본 킬러'로 이번 WBC 예선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나올 확률이 높은 김광현을 잡기 위해 일본은 대대적인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철저한 분석 결과, 직구와 슬라이더는 위력적이지만 구종이 단조로운 약점을 일본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슬라이더만 노리자는 세밀한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하루에 좌완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 200개 이상을 치는 특훈까지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그물망 같은 공략은 주효했고 일본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김광현을 2회가 끝나기도 전에 무너트렸습니다.

그러나 일본 타자들에게 봉중근은 낯선 존재였습니다. 설령, 봉중근에 대한 분석을 했어도 쉽게 공략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집요하리만큼 좌완 슬라이더 투수에 초점을 맞춰온 일본 타자들에게 컨트롤이 좋은 직구를 구사하고 커브와 체인지업을 갖춘 좌완 투수는 미지의 대상이었습니다.

봉중근은 김광현과는 달리 심리전에서도 성공했습니다. 1회 말, 경기가 시작되기 전 봉중근은 이 경기의 주심인 데이나 디무스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생활로 익힌 본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 봉중근은 이미 기 싸움에서 일본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치로를 비롯한 일본 타자들은 김광현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좌완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와 변화구에 친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직구 위주로 승부를 겨루는 봉중근의 패턴에 제대로 된 스윙을 휘둘러보지도 못했습니다.



직구 위주의 투구가 승리의 열쇠로 작용


그리고 70개의 규정 투구 수를 마친 봉중근 다음으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정현욱이었습니다. 한국 투수들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직구를 구사하는 정현욱은 거침없이 140km 후반 대에 이르는 강속구로 일본 타자들을 요리했습니다. 변화구에 친숙해 있던 일본 타자들은 묵직하고 볼 끝이 좋은 정현욱의 강속구에 속절없이 당했습니다. 8회 말에 등판한 류현진과 뒷문을 책임진 임창용도 적극적인 직구 승부를 가져갔습니다. 투수운영에 있어서 장인이라 불리는 김인식 감독의 작전은 이번에도 주효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도 드러났지만 일본 야구는 기본기가 매우 탄탄합니다. 한국 타자들의 어설픈 주루 플레이를 놓치지 않은 수비력은 이러한 점을 여실히 증명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구질에 정교한 컨트롤을 갖춘 일본 투수들은 미국과 쿠바 타자들도 좀처럼 때려내기 힘든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을 뛰어넘은 것은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집중력'이었습니다. 투수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았고 빅리그 선수들보다 훨씬 뛰어난 선구안을 가진 타자들은 그토록 컨트롤이 좋은 일본 투수들을 상대로 헛스윙을 남발하지 않았습니다.

이 경기가 한국의 1-0의 승리로 끝나자 일본 중계진은 "콜드 개임 패를 당한 한국과 오늘의 한국 중, 어느 모습이 진실일까"라는 우문을 남겼습니다. 일본은 특정 선수에 대한 집요한 분석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결론적으로 한국팀 자체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사진 = 봉중근 (C) WBC 공식홈페이지 캡쳐, 임창용 (C) KBO 공식홈페이지 캡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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