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5.01 01:11 / 기사수정 2005.05.01 01:11
역대 한국 축구계가 낳은 선수들 중 가장 대표적인 선수라 하면 대부분 차범근을 떠올릴 것이다. 분데스리가 98골을 넣으며 외국인 선수 최다골을 기록하는 등 차범근은 당시 척박한 한국 축구계에선 보물이자 세계 축구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명실상부한 수퍼스타였다. 그리고 수퍼스타 차범근에게는 평생의 라이벌이 있으니 바로 동갑내기 허정무다.
실제 나이로는 동갑인 두 사람이지만 허정무가 호적상 차범근보다 2살 어려 차범근보다 대표 선발에 2년정도 늦었지만 이 두사람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경쟁 체제를 유지해왔다. 대학 시절 고려대(차범근)와 연세대(허정무)의 대표적인 선수로 양교의 명예를 위해 물러서질 않았고 차범근이 군복무 후 1978년 독일 SV 다름슈타트에 입단하자 허정무는 1980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 진출하며 한국 축구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유럽에서의 선수 생활은 다들 알다시피 2번의 UEFA컵 우승을 보여주듯 차범근의 판정승이라 말할수 있을 정도로 차범근의 활약이 대단했던 반면 허정무는 소속팀의 리그 상위권 유지에 기여한 정도였다.
두 선수는 멕시코 월드컵에서 36년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공수를 지휘했고 차범근은 이후 고정운-서정원-설기현, 차두리로 이어지는 한국 윙포워드 계보의 시초가 되었다. 허정무는 선수 시절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의 효시였고 유상철, 박지성등이 그의 뒤를 이어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감독으로서의 성적을 본다면 선수 시절과 달리 허정무가 조금 앞선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차범근이 지난해 수원 삼성 감독으로 부임해 K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두 사람이 같이 감독직을 맡았던 시기를 놓고 본다면 허정무의 경력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1989년 레버쿠젠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1991년 울산 현대 감독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차범근은 그동안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선진화된 팀 운영으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기존의 규제된 생활만을 해온 국내의 프로 선수들에게 차범근의 팀 운영은 오히려 역효과만 낳았고 1994년 감독직에서 물러날때까지 2~4위를 맴돌기만 했다.
허정무는 1992년 포항을 우승으로 이끈뒤 명예롭게 물러난 이회택 감독에 이어 포항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1995년 황선홍, 라데, 홍명보의 삼각편대를 앞세워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통합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성남 일화와의 명승부를 연출하며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부임, 1997년 전남의 FA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차범근과 허정무가 감독으로서 서로 맞대결을 펼친 기간은 1993년부터 94년까지의 2년간이었고 이 기간동안 13차례 맞붙어 5승 4무 4패로 허정무가 박빙의 우위를 점했다.
1997년 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의 프랑스 월드컵 출전을 이끌었으나 불명예 퇴진을 당했던 차범근. 그런 차범근의 뒤를 이어 대표팀을 지휘했으나 시드니 올림픽 8강 진출 실패와 아시안컵에서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스스로 물러난 허정무.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아픔을 이들은 유소년 축구 발전에 집중했고 그 결과 차범근 축구 교실과 용인FC에서 어린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2002 월드컵 기간동안 KBS(허정무)와 MBC(차범근)의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며 장외에서의 라이벌 대결을 펼치는등 끊임없는 경쟁관계를 보이고 있다. 그러한 이들이 11년만에 다시 그라운드에서 맞붙게 되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허정무가 지휘하는 전남이 차범근의 수원보다 뒷쳐지지만 지난 수요일 성남과의 홈경기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팀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기에 쉽게 결과를 점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11년만의 맞대결. 그리고 또 다시 시작되는 두 사람의 라이벌전. K리그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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