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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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의 기억, 수원의 '무사'를 추억하다

기사입력 2008.12.09 13:33 / 기사수정 2008.12.09 13:33

이순명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순명 기자] 2008년 12월 7일, 수원은 그토록 갈망하던 4번째 우승을 했다.

우승의 주역은 많았지만, 가장 돋보이는 선수 중 하나의 바로 수원 수비의 핵심인 '통곡의 벽' 마토였다. K-리그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은 마토는 수원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유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었고, 이제 수원이 우승한 지금 마토는 다시금 국가대표팀이 되기 위해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마토를 보내는 수원팬들은 고마운 감사의 인사를 보내겠지만, 내심 수원에 '별'을 달아준 선수를 떠나보낸다는 것에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4년 전, 수원이 세 번째 별을 달던 날. 그때도 비슷했다. 마토가 오기 전 수원은 다른 외국인 선수가 그들의 가슴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 당시 수원의 수비의 핵심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수비수 하비에르 마틴 '무사'(29)였다.

당시 수원은 전반기 수비불안으로 인하여 많은 고민이 있던 상황이었다. 전기리그에 수원은 승점 18점으로 리그 4위를 차지했지만, 순위와는 다르게 16실점으로 13팀 중 2번째로 많은 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비슷한 승점이던 2위 전북과 3위 울산이 각각 9, 8실점을 한 것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되는 실점률이었다.

2004 K-리그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거쳐서 플레이오프 팀을 가리는 제도였는데, 수원은 전기리그에서 겨우 4위를 하기는 했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 있었다.

이에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후기리그를 대비하기 위해서 브라질 출신 수비수 크리스를 퇴출하고, 무사를 데려왔다. 무사는 아르헨티나의 라싱을 거쳐서, 포르투갈의 마리티모에서 뛰고 있던 그 당시 젊은 수비수였고, 차범근 감독은 터키 전지훈련에서부터 무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했었다. 무사의 영입 후 인터뷰에서 차범근 감독은 무사의 1:1 수비상황에서의 적극성과 제공권을 높이 샀다고 밝혔었다. 수원은 기존 곽희주, 조성환, 박건하로 구성되던 쓰리백을 보완하기 위해 무사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적 초반, 무사의 수원 적응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후기리그 부천과의 경기에서 데뷔한 무사는 수비진에 녹아드는데 부족한 모습을 보였고, 190cm의 키에도 불구하고 헤딩경합에 실패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교체되었었다. 거기에 7월 29일 FC바르셀로나와 가진 친선경기에서 김대환과 충돌, 부상을 입고 전반 33분 만에 교체되는 등 이적 초반 무사는 순탄치만은 않은 적응기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무사가 적응하자 수원의 수비 문제는 해결되어갔다. 무사의 높이와 체구는 K-리그 공격수들이 감당하기 힘든 벽이었고, 중요한 경기마다 수원은 점수를 지켜내며 승리를 따내는 데 성공하였다. 부상중인 조병국에 대한 향수를 날려버릴 만큼 무사는 수원의 수비를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었다.

전기리그 16실점의 수원은 후기리그 단 8골만을 허용하며 뒤에서 2위이던 전기리그와는 달리 두 번째로 실점이 적은 팀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수원은 후기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전후기 리그 통합 1위로 당당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팬들의 무사에 대한 '환호'는 플레이오프에서 터져나왔다.

2004년 12월 5일 전남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김진우의 프리킥을 머리로 받아 꽂아넣으며 수원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끈 것이었다. 반 시즌을 뛰었을 뿐인 장발의 외국인 수비수에 팬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무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의 우성용과 따바레즈를 완벽하게 묶는 활약을 선보이며 수원의 가슴에 세 번째 별을 안겼다.

무사는 당연하게도 2004 K-리그 베스트11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고, 팬들은 언제까지나 무사가 수원의 벽이 되어주리라 믿었었다.

그러나 해가 지나고, 2005년 무사가 보여준 모습은 팬들의 기억과 많이 달랐다. 언어문제로 인한 수비라인의 문제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고, 맨마킹이 장점이었던 무사가 점점 집중력 저하로 뚫리기 시작했다. 무사에 적응된 K-리그 다른 팀의 공격진들도 스피드를 이용해서 무사를 돌파하기 시작했고, 무사는 결국 새로 영입되었던 마토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2군으로 내려갈 수밖에는 없었다.


결국, 무사는 AFC챔피언스리그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채 챔피언결정전의 영광과는 다르게 쓸쓸히 울산으로 이적했다. 울산에서도 마땅히 자리를 잡지 못한 무사는 중국 C리그 베이징 궈안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더욱 쓸쓸했던 것은, 베이징 궈안에서도 무사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무사에게 화려했던 K-리그 경력은 어쩌면 수원에서의 2004년도 후기리그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2005년 수원과 울산에서 무사는 감독과 팬들이 기대하는 '그때만큼의' 활약을 해주지 못했고, 결국 기량저하의 명목하에 중국 리그로 이적하며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순간 동안에 무사는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갔던 것이다.

수원이 네 번째 별을 달고 마토를 보내는 순간에 장발의 바티스투타를 닮은 한 아르헨티나 수비수. 무사를 추억해 본다.



이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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