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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CUP 8강] 허를 찌르는 맛이 있다

기사입력 2008.11.06 03:50 / 기사수정 2008.11.06 03:50

장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지영기자] FA컵대회를 지켜보는 최대의 묘미는 역시 매해 빠지지 않고 벌어지는 이변들이다. 그중에서도 올해는 또 한 번 4강까지 내셔널리그의 돌풍이 K-리그의 아성을 뒤흔들게 된 덕분에 그 재미가 몇 배로 늘어났다. 특히 내셔널리그 강호 고양 국민은행과 K-리그 약체 대구 FC가 나란히 현대 가의 두 형제,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를 물리치고 4강에 안착한 것은 8강전 최고의 이변이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모두의 예상이 뒤집히는 재미를 더하며 관심을 모은 2008 하나은행 FA컵, 그 파란의 8강전.

11월 5일, 전국 4개의 경기장에서 펼쳐진 4번의 승부들을 간단히 돌아보자.

경남-광주 : 철벽수비의 벽은 높았다

경남의 두 마리 토끼몰이가 빛을 발한 경남과 광주의 대결을 요약하자면 '제대로 잠근 경기의 정수'일 것이다.

전반 9분 첫 득점 이후 남은 시간을 철저하게 걸어잠근 경남의 수비력이 빛난 승부. 게다가 광주의 골결정력은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후반 내내 몇 차례의 위기상황을 넘기면서도 마지막까지 강하게 걸어잠근 것에 대해 조광래 감독은 "어쩔 수 없었다. 주말에 있을 전북과의 리그경기를 대비해 체력안배를 하고 싶었다. 전반에 골을 넣고 지키자고 생각했고 다행히 위기상황을 잘 넘겼다."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목적은 두 마리 토끼몰이였던 셈. 오히려 경남은 그동안 출장이 뜸했던 선수들의 경기력을 확인하는 기회까지 마련하는 등 여유를 보이며 가장 먼저 4강의 자리에 안착했다. 팀 창단 이래 첫 4강 진출이다.

조광래 감독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전북과의 대결에 대해서도 강한 자신감과 함께 총력전을 펼칠 것임을 밝혔다. "마지막 가능성이 걸린 경기이니 총력전은 당연하다. 전북이 루이스같은 주요 선수가 결장하게 됐지만 우리는 산토스와 이상홍이 돌아왔다. 득점은 누굴 만나든 자신 있으니 관건은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있는데 그건 자신이 있다."라고 말해 전북과의 경기가 치열할 것임을 미리 예고하기도.


대구-울산 : 되살아난 화력과 근성의 힘

"이번 경기를 앞두고 처음으로 선수들에게 으름장을 놨다."

변병주 감독이 경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털어놓은 이야기다. 말인즉슨 그동안은 선수들의 자신감을 북돋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칭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이번 경기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독하게 마음을 먹고 극약처방을 내렸다는 것. 수비 역시 후반 40분이 지나서야 윤여산을 투입해 힘을 더했을 정도였을 만큼 간만에 총알 축구의 매력을 흠뻑 선사했다.

이 으름장이 제대로 먹힌 것인지 대구는 오랜만에 특유의 빠른 공격력을 잘 살린 것은 물론 그동안 걸림돌이 되어왔던 불안한 수비 역시 전 선수의 몸을 사리지 않는 육탄방어에 힘입어 놀라운 활약을 선보였다. 대구가 오랜만에 선보인 근성 플레이에 경기장을 찾은 이들도 모두 만족했다.

반면 울산은 너무 일찍 걸어잠근 것이 화근이었다. 전반 31분 루이지뉴의 첫 골이 만들어진 직후부터 수비에 치중하려던 울산의 수비는 되려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혼란을 자초했다. 전반 39분 이근호의 골도 이런 혼란 상황을 놓치지 않은 한방이었다. 이후에도 서둘러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했으면 좋았으련만, 여전히 선 수비 후 역습의 양상으로 나온 덕분에 오히려 후반 31분 또 한 번 실점을 허용했다. 리그 최다실점과 더불어 최다득점 팀의 타이틀도 함께 보유하고 있는 대구의 악명을 깜빡했던 것일까.

그동안 16강에서 번번이 무너지며 FA와는 연이 없었던 대구는 이 승리로 경남과 더불어 창단 첫 FA컵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렸다.


고양-전북 : 고양, FA컵의 연인

대구의 4강 진출과 더불어 2008 하나은행 FA컵대회 최대의 이변으로 꼽히는 것은 역시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의 4강 안착.

그러나 고양 국민은행은 나름 FA컵대회에서는 강호라 불릴만한 팀이다. 2006년에도 4강까지 진출한데다 지난해에도 수원에 무너지긴 했지만 16강까지 올라왔던 팀이 아니던가. 고양과의 대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피 말리는 대결을 펼친 K-리그 팀도 부지기수일 만큼 고양의 FA 강세는 꽤 유명한 편.

이우형 고양 감독이 괜히 'FA컵하고 궁합이 맞는 것 같다.'라는 말을 꺼낸 게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홈구장에서 치르게 된 덕분에 FA컵 대회에서는 흔치않은 홈 이점도 얻었다. 홈구장의 장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고양 최고의 강점이었던 셈.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황연석의 천금 같은 종료 직전 동점골이 경기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반면 전북은 두 마리 토끼몰이에 나선 것이라고 하기에는 2%로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주말로 다가온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대비했다고 하기에는 2% 과한 경기를 선보이며 FA 강호 고양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전반을 김형범의 득점으로 마무리 지으며 한 골 앞선 상황에서 후반을 맞이했던 전북은 조재진을 투입하며 적극적으로 추가골을 노렸지만 홈팀의 마지막 역습을 막아내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K-리그에서도 이름난 공격수였던 황연석의 한방에 골문을 열어주고 만 것. 결국,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결과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한 전북이 4강 목전에서 주저앉으며 고양은 경남, 대구에 이어 3번째로 4강에 안착하게 됐다.


포항-성남 : 악연의 끝은 어디로

8강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포항과 성남의 대결은 또 한 번 악연의 절정만을 확인한 채 포항의 4강 진출로 끝이 났다. 2008년 정규리그와 컵 대회에 걸쳐 심각한 악연을 쌓은 두 팀.

경기 결과만 보면 1-1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포항이 극적으로 승리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촌극도 이런 촌극이 따로 없다. 하프타임 스프링클러 오작동에서부터 시작된 이날의 촌극은 후반 15분에 그 절정을 이루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말았다. 이날 대결에서 성남은 전반 선취골까지 넣고도 후반전 연이은 신경질적인 대응 끝에 심리적으로 자멸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 잡은 경기를 놓치고 말았으며, 포항은 축구협회와 함께 미숙한 운영 능력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사실 이날은 전반만 본다면 명승부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리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팀들 간의 대결답게 포항과 성남은 강호의 승부다운 전반전을 보여줬다. 문제는 하프타임 스프링클러 오작동 촌극이 벌어지면서부터. 조금만 더 침착하게 사정을 알아보고 항의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성남 측에서 항의와 함께 물이 닿지 않은 그라운드의 나머지에도 물을 뿌려줄 것을 요청하면서부터 경기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김영철의 퇴장 이후 상황은 촌극의 절정. 퇴장 상황의 미묘함이야 어떠하겠느냐만 이미 한 골 앞선 상황이었음에도 판정에 대한 항의로 그라운드 위의 선수를 다 불러들이고, 심판의 퇴장 선언 이후에도 마찰을 보이며 시간을 잡아먹었다는 점은 성남으로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차라리 항의할 시간에 전열을 추슬렀어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성남은 철저하게 신경전에 휘말린 끝에 자멸한 것이나 마찬가지.

덕분에 이긴 팀이나 진 팀이나 이래저래 뒤끝이 남는 경기가 되고 말았다.


4강, 4팀이 만들어낼 조합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운데에서도 4강은 결정됐다. 경남, 대구, 고양, 포항이라는 이 재미있는 조합이 만들어낼 4강의 대진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를 모으는 부분. 특히 맞붙기만 하면 무서울 정도의 난타전을 선보이기 일쑤인 대구와 포항이 나란히 4강에 안착했다는 부분은 특히 재미를 더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두 팀이 마주하기를 기대하는 상황. 게다가 K-리그 3팀에 내셔널리그 1팀이라는 구성 덕분에 고양 국민은행과의 대결이 가장 쉽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예상을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팀이 선호하는 4강 상대는 내셔널리그 강호 고양이 아니라 K-리그에서도 살인적인 득점력과 실점력으로 이름 높은 대구.

포항은 이미 지난 2007년 고양과 16강전에서 만나 피 말리는 승부차기를 경험한 바 있고, 경남 역시 2006년 8강전에서 고양과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은 기억이 있다. 두 팀 모두 호되게 당한 경험이 한번은 있는 셈. 게다가 장신 공격수에 취약한 편이 대구 역시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황연석이 공격수로 버티고 있는 고양이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 고양 국민은행이 괜히 K-리그 킬러가 아니다. 당사자야 반가울 리 없지만 이런 면에서 그동안 16강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없는 대구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4강 상대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대구 역시 FA컵에 마지막 사활을 건 상황이긴 마찬가지.

결국, 8강을 장식한 이변은 4강을 넘어 결승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과연 최후에 웃게 되는 것은 누가 될 것인가? 12월 제주도의 겨울을 뜨겁게 달굴 4팀의 다시 한 번 각축전을 기대한다.

 



장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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