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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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보다 특별한 그들만의 별명

기사입력 2005.03.12 02:08 / 기사수정 2005.03.12 02:08

최수민 기자


유난히 바둑 기사들은 각자마다 별명을 가지고 있다. 별명은 바둑 기사들의 성격과 기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돌부처 이창호, 어떠한 수식어도 부족하다

이창호 9단의 많은 별명 중 대표적인 것은 단연 '돌부처'다. 워낙 무표정인데다 대국이 이기든 패하든 언제나 한결같은 표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둑이 끝나고 복기할 때도 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고 어떠한 상황이든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있다. '어느 일본 촬영가의 발견'이라는 중국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한 일본 사진 기자가 이창호 9단의 대국 장면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한국에 찾아왔다. 린하이펑과 대국을 하는 이 9단의 모습을 무려 필름 3통에 담아 냈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워 하며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잡지에 실을 사진을 선택하려고 사진을 인화하여 비교하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놀랍게도 200장이 넘는 사진속의 이창호는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단 하나도 다른 표정을 찾아볼 수 없어 통탄했다는 후문.

또 그는 강태공이라고도 불린다. 아무리 불리해도 결코 옥쇄나 자멸을 택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다리는 그의 자세는 곧은 낚시로 때를 기다리며 평생을 보낸 강태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리해도 서두리지 않고 참는 그의 인내를 가르킨다. 얼마전 농심배 신화를 일으킨 후 바둑팬들은 이창호 9단에게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국수, 기성, 神(?) 등 많은 후보가 있었지만 결국은 이창호라는 이름 그 자체가 가장 큰 의미가 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영원한 바둑황제 조훈현
일지매 유창혁, '꿇어!'


조훈현 9단은 한국 바둑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업적에 걸맞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바둑황제'다. 설명이 필요없는 별명이다. 이 외에 포석에서 발빠르게 둔다고 하여 제비, 청출어람을 이룬 이창호를 길러냈다고 하여 반상의 조련사라고 불렸다. 또한 75년부터 80%의 승률을 기록하여 조관왕(다관왕을 지칭)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유창혁 9단은 일지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무예의 달인답게 화려하고 깔끔한 공격을 선보인다. 날렵하게 상대를 공략해 굴복시킨다. 이세돌 9단은 쎈돌이다. 이름에 빗대어 붙여진 쎈돌, 말 그대로 센 기풍을 말해준다. 또 불패소년이라는 닉네임도 얻었는데 공격적인 기풍과 32연승의 대기록을 세웠을 때 만들어졌다. 


최철한, '내가 독사라고?'

최철한 9단은 너무도 유명한 ‘독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한번 물면 놓아주지 않는다고 해 독사가 됐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념과 공격적인 기풍을 표현해주는 별명이다. 얼마 전 이창호 9단이 농심배에서 ‘불패 신화’를 이룩하며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최 9단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창호 사범님이 더 독사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일본의 사카다 9단은 면도날같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수읽기와 결정력을 지녔다고 해서 면도날이란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창하오의 '슬픈 별명?'

얼마전 응씨배에서 첫 세계대회 우승을 일군 중국의 창하오 9단은 모두 준우승 징크스를 일컬어 얻어진 '슬픈 별명'이 많다. 한 때는 '중국의 이창호'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우승 실패로 '만년 2인자'라는 별명을 들어야 했다. 또 연이은 패배로 '새가슴'이라는 불명예로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설움을 딛고 세계대회 우승을 이뤄냈으니 이제 새로운 별명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바둑 스타일과 전적에 상관없는 별명을 가진 프로도 있다. 조한승 8단과 중국의 쿵제 7단은 출중한 외모 덕에 '꽃미남'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본 이름 외에 그 사람의 생김새, 행동, 성질 등을 알 수 있는 별명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별명의 이미지와 다른 변화를 이룬다 하더라도 이미 대상과 별명이 너무 익숙하여 변경이 쉽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름보다 더 많이 쓰이는 그들의 별명. 바둑 기사에게 있어서 별명이란 자신이 풍미했던 시대를 떠올려주는 소중한 추억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


사진 / 한국기원



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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