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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10주년 기획특집②-1]수원의 10년 우승 역사

기사입력 2005.03.11 01:38 / 기사수정 2005.03.11 01:38

이상규 기자


(2002년 아시아 수퍼컵 우승 기념사진)
(사진출처 : 수원삼성 블루윙즈 공식 홈페이지)

K리그 9번째 구단으로서 1995년 12월 15일에 창단한 수원. 신생팀 시절부터 지금까지 K리그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여, 명문 구단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1년과 2002년에 아시아 최고의 클럽으로 발돋움하여, 아시아 축구계에서 수원과 K리그의 위상을 높였다.

1996년 후기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005년 수퍼컵 우승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 총 18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리그 우승 3회(1998, 1999, 2004년), 아시안 클럽 선수권 대회와 아시안 슈퍼컵 2연패(2001~2002년), 아디다스컵 3연패(1999~2001년) 등의 값진 우승 경력들을 쌓았다. 지난 10년간 수원보다 더 많이 우승한 K리그 팀이 없을 정도로, K리그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두말할 필요없이, 현 K리그의 최강팀은 수원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수원의 영원한 아버지'로 통하는 김호 전 감독(현 숭실대 교수)의 성과가 컸다. 원년 감독으로서 수원의 전력을 향상시켜, 2003년까지 총 14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K리그의 명문과 아시아의 최강팀으로 발돋움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동안 10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박건하, 바데아, 고종수, 김진우, 올리, 데니스, 산드로, 가비, 나드손 등과 같은 K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많이 배출 되었다.


신흥명문으로 떠오른 수원

1996년부터 K리그에 참가한 수원은, 첫해부터 신생팀 답지 않게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김호 전 감독이 구사하는 4-4-2 대형의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로, 팬들에게 수준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골잡이 박건하와 이기근은 투톱으로서 공격력을 주도했고, 루마니아 출신 바데아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수원의 아기자기한 공격력을 이끌었다. 고교신인 고종수는 어린 나이에 수원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았다. 결국, 후기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원년 시절부터 우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96년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울산을 1:0으로 꺾은 수원은, 2차전에서 1:3으로 패하여 정규리그 준우승에 머물렀다. 2차전이 홈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러나 2년뒤인 1998년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울산과 다시만나, 신홍기의 프리킥골로 1:0으로 승리했다. 홈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는 0:0으로 비겨, 창단 이후 첫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년전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울산에게 패한 것을 복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최고 전성기를 보낸 1999년에는, 전관왕을 달성했다. 수퍼컵에서 안양(현 FC서울)을 5: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봄에 열린 대한화재컵과 여름에 여린 아디다스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에서는 독주를 할 정도로, 독보적인 경기력을 펼쳤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부산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2차전에서 우승 확정시에 벌어진 샤샤의 '신의 손'사건은 큰 오점 이었다. 하지만 K리그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휩쓸어, K리그의 신흥명문으로 발돋움 했다.

특히 1999년에 거둔 성과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44번 소화한 K리그 경기에서 34승1무9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당시 홈구장인 수원 종합 운동장에서 벌어진 21번의 K리그 홈경기에서 19승1무1패의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K리그 최고의 인기팀으로 도약한 수원은, 최고의 경기력 및 성적으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그리고 2000년과 2001년에는 아디다스컵 우승, 2002년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하여, 우승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2년 연속 아시아 정상에 오르다

2000년까지는 K리그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아시아 클럽 대회에서는 우승과의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았다. 1998년 아시안컵 위너스컵에서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나스르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2000년에 벌어진 제 19회 아시안 클럽 선수권에 출전했지만, 4강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히랄에게 0:1로 패하여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3~4위전에서는 이란의 피루지에게 0:1로 패했다.

하지만 2001년에 접어들면서 아시아 클럽 대회 우승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제20회 아시안 클럽 선수권 대회 동부 4강전 첫번째 경기인 일본의 주빌로 이와타 전에서 0:3으로 패했으나, 그 이후 2경기에서 대승을 거두고(PSM 마카사로전 8:1승, 산동전 6:0) 4강전에 진출했다. 4강전 부터는 모든 경기가 수원 종합 운동장에서 치르기 때문에, 홈팀 수원에게 유리했다. 4강전에서 피루지를 2:1로 꺾은 수원은, 주빌로 이와타와의 결승전에서 산드로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아시안 클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사밥과 격돌한 2001년 아시안 수퍼컵은, 더욱 어렵게 우승을 차지했다. 홈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2:2로 비겨, 8월의 무더운 중동 날씨 속에서 벌어지는 2차전 원정 경기 전망이 어려웠다. 그러나 제다에서 열린 2차전에서 서정원의 2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수원은 2002년 제21회 아시안 클럽 선수권 대회 동부 4강전에서, 일본 J리그의 명문 가시마 앤틀러스와 중국 C리그의 명문인 다롄 스더를 각각 2:0으로 꺾었다. 동부 4강전에서 2승1무를 기록한 수원은 대회 4강전에 진출한 뒤, 우즈베키스탄의 나사프 카르시를 3: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당시 라이벌 안양과 상대하여 연장전까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2로 승리하여 대회 2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2002년 아시안 수퍼컵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히랄과 만난 수원은, 홈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이기형의 천금같은 40m 프리킥골로 1:0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원정에서 벌어지는 2차전이 정규리그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2차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출전 선수를 비주전급으로 구성했다. 연장전까지 0:1로 밀린데다, 조성환은 경기 도중에 퇴장 당했고, 몇몇 선수들이 쥐가 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의 선방으로 4:2의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2년 연속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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