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0.07 03:24 / 기사수정 2008.10.07 03:24
여자배구의 침체기 속에 출전한 AVC컵 대회
[엑스포츠뉴스 = 조영준 기자] 올 5월 달에 벌어진 2008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전에 참가한 여자배구대표팀이 카자흐스탄과 도미니카공화국에게 졸전을 펼치며 완패를 당했었습니다. 당시, 이 경기를 지켜본 많은 배구관계자들은 아연실색했으며 일부 배구 팬들은 여자배구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등을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2007~2008 V리그가 끝나고 나서 바로 소집된 여자배구대표팀은 출발부터 일부 선수들의 대표 팀 소집 불응으로 흔들렸습니다. 특히, 한 특정 구단에서 소속 선수를 데리고 한참 훈련 중인 태릉선수촌에서 무단이탈했을 때는 선수보호차원을 넘어서 프로구단의 이기심이 어디까지 갔는지가 여실히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선수의 부상보호를 위해 그랬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태릉에 남아서 훈련을 받고 있는 다른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처사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결국, 7라운드까지 가는 지옥 같은 레이스를 펼친 후에 별다른 휴식기도 없이 부상을 안고 있던 선수들은 올림픽 티켓을 따기 위해 한 배를 탔지만 행정력과 국제대회에 대비한 정보 습득이 너무나 미비했던 협회의 행정 때문에 베이징올림픽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배구협회와 연맹의 대책 없는 행정력 부재였습니다. 여기에 프로구단들의 이기심도 한 몫을 했지만 국가대표 팀에서 뛰는 여자배구선수들의 정신력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았었습니다.
어찌됐든 한국 여자배구는 최고의 침체기에 빠져 있으며 지난 9월 초에 열린 2008 KOVO 컵 대회에서 나타난 각 팀들의 경기력 저하에 많은 팬들은 재미가 반감됐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와중 속에서 열린 제1회 AVC 아시아여자배구대회에 참가하게 된 점은 대표 선수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감이 되었습니다.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인 조혜정 위원은 이번 대회의 참가에 대해서 ‘희망을 안고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했으면 좋겠다’라는 소감을 남겼었습니다.
선수들 간에 손발을 맞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GS 칼텍스 팀 위주로 대표 팀을 구성했다는 이번 여자배구대표팀은 한국의 정예 1군 대표 팀이 아닙니다. 올림픽진출 실패 이후 명예회복을 노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출전했지만 과연 이 멤버들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의문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AVC 컵에 참가한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은 예선전에서 최고의 난적인 홈팀 태국을 3-2로 물리쳤고 대만과 베트남, 그리고 말레이시아등을 연파하면서 준결승전에 안착했습니다. 비록 서브리시브가 나쁘고 단조로운 플레이가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해보고자하는 열의는 분명히 높아 보였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확인할 수 있었던 한국여자배구의 진면목
그런데 한국시간으로 6일 저녁에 벌어진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나타난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의 경기력은 실로 오랜만에 한국여자배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일본대표팀이 올림픽 출전 멤버가 포함되지 않은 2군 선수들이었지만 한국 팀 스스로가 해내고 있는 다채로운 플레이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의 컬러를 새롭게 바꾼 선수는 단연 주전세터인 이숙자(28, GS 칼텍스)입니다. 이숙자는 리시브가 난조를 보인 예선전에서 안 좋은 볼을 오버 토스로 연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배구에서 가장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언더토스를 버리고 최대한 오버토스로 올리려는 이숙자의 의도는 한국 팀의 전력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예선전에서 리시브 성공률이 매우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난적인 태국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버토스로 올려주는 이숙자의 플레이와 네트에 바짝 붙거나 상대코트로 넘어가려는 볼도 적절히 살려내는 세터의 능력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소속 팀이나 대표 팀 등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던 이숙자와 중앙 미들블로커인 김세영(27, KT&G)의 호흡이 찰떡궁합처럼 맞는다는 점입니다. 서로 호흡을 맞춰볼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세영은 이숙자와 만나면서 그동안 ‘먼지 털기’로 지적받은 약한 공격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김세영의 높이에 맞게 정확하고 빠르게 올라가는 이숙자의 토스를 김세영은 적절한 타법으로 때려내며 시원스러운 속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중앙의 김세영과 배유나(19, GS 칼텍스), 그리고 양효진(19, 현대건설)등의 센터 진들이 모처럼 활기를 펼치기 시작하니 좌우 날개의 공격과 세트플레이도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과 맞붙은 준결승전은 철저한 준비가 엿보인 경기였습니다. 비록 상대방이 대표팀 1진 선수들은 아니었지만 한국 팀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플레이들을 모두 충실하게 수행해 주었습니다. 또한, 예선전에서 보지 못한 다채로운 패턴의 플레이가 나오면서 이에 대비가 없었던 일본 팀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전에서 나타난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은 분명,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특정 공격수에게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플레이를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고무적인 현상은 리베로에게 서브리시브를 전담시키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능동적으로 서브리시브에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여자배구가 마땅히 시도했어야 할 플레이가 이번 대회를 통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 이렇게 활기차게 경기를 하는 여자배구선수들의 모습은 좀처럼 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한국여자배구가 성장하려면 국제대회의 경험이 가장 중요
오늘 저녁에 벌어질 중국과의 결승전도 힘든 승부가 예상되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고 최선의 플레이를 선보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1군 멤버가 아닌 이 정도의 선수구성을 가지고 참가해 결승전에 오른 것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했지만 한국여자배구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쉽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여자배구는 이번 국제대회를 통해 한층 빨라졌으며 국내리그에서는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다채로운 플레이를 구사했습니다. 이렇게 국제대회의 참가는 중요하며 국내리그에만 연연했을 경우, 세계 배구의 다양한 플레이를 보는 시야는 좁아져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여자배구는 내년에 있을 국제대회 중, 선수들의 경험을 쌓는데 가장 중요한 그랑프리 대회의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에 대해 대한배구협회는 대회에 치를 스폰서와 참가비 부족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예산안과 스폰서가 걸린 문제라 해도 계속해서 여자배구선수들에게 국제대회의 경험을 주지 못한다면 2010년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여자배구가 다시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번 AVC대회를 통해 한국여자배구는 땅까지 떨어진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해서는 안 되고 국내 프로리그와 고등학교 팀에서 뛰고 있는 많은 선수들에게 국제대회의 장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지난 9월 초에 있었던 2008 코보컵에서 드러난 국내리그 경기의 갑갑함이 이번 AVC컵 대회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기민한 플레이로 해소되고 있습니다. 한국여자배구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을 국내리그에 한정시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보다 더욱 폭넓은 국제대회의 경험을 가짐으로서 세계배구의 흐름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진 = 한국여자배구대표팀 (C) AVC 홈페이지(www.asianvolleyb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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