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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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농심배] 전설의 여정

기사입력 2005.02.26 01:29 / 기사수정 2005.02.26 01:29

주진효 기자


전설이란 무엇일까요? 그보다는 바둑계에서 전설은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한국 바둑에서도 전설이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첫번째 전설은 조훈현 9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나가서 다른 나라 기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한 잉창치배 1회 우승의 전설. 그리고 이창호 9단이 10년 넘게 무수히 증명해 온 실적이 훗날 전설이 되리라 보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2004년 농심신라면배 제 6회 대회가 그의 전설 중 하나가 될 거라 봅니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면서 더욱 확고한 전설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앞의 국가 대항전인 농심배에서 앞의 네명의 기사가 1승을 올리고 모두 탈락한 상황에서 당대의 세계 일인자의 등장. 그의 앞에서 차례로 기다리는 다섯명의 차이나, 일본의 기사들. 당대의 일인자라 해도 일류기사 다섯명을 한차례의 실족도 없이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6회째인 2004년 농심배. 5회까지 대회 5연패를 달성한 한국. 물론 그 동안도 평탄하게 이겨온 것은 아니지요. 특히 후야오위가 5연승을 달성한 2002년 농심배는 파란 많은 대회였죠. 일본은 자국내 대 삼관 우승자들을 비롯해서 역대 최강의 멤버들을 내보낸다고 광고했다가 실제 나와서 한국의 박영훈에게 4연승 제물이 되고 그 다음에는 후야오위의 5연승 제물이 되어서 조기 탈락했으니 말이죠. 

그리고 실은 바로 전해인 2003년 제 5회 농심배에서도 한국은 초반 앞의 3명의 기사가 단 1승도 못올리고 탈락함으로서 위기를 맞았지만 그 때 구원투수 원성진이 등장해 3연승으로 흐름을 완전히 돌려놓았었죠. 이창호 9단은 앞의 한명의 기사만 연승으로 제 몫을 해주면 누가 보기에도 깨끗하게 끝내는 마무리를 해왔으니까요. 위기를 그 동안 맞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2004년 농심배처럼 앞의 네 명의 기사가 최철한 구단의 단 1승만 거두고 모두 물러난 상황은 그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열악한 상황이었죠.

네 명의 기사가 단 1승이고 모두 탈락이라... 이것이 한국의 얘기가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면 그리고 그 남은 한명이 바로 이창호가 아니고 다른 어느 기사였다면 누구나 90%는 우승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한 명이 이창호이기에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죠. 바둑팬들의 염원과 응원을 등 뒤에 받으며 이창호 구단은 묵묵히 훗날 전설이 될 그 길을 걸어갑니다.

(여기까지가 작년 12월 2일 타이젬 바둑 논단에 올렸던 '전설의 시작'에서 처음에 썼던 구절을 그대로 다시 쓴 것입니다. 그 때 말씀드린바 전설의 시작을 바둑팬들과 함께 축하하는 의미에서 첫번째로 올린 글이었고 지금은 그 중간 과정에서의 전설의 여정을 기록하는 두번째의 글입니다. 그리고 전설이 마무리된 후 세번째로 전설의 끝을 올릴 예정입니다.)

2/23 사이버 오로에 실린 뉴스의 제목은 '이창호, 그가 온다'였습니다.
그 뉴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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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9단이 부진을 벗어 던지고 농심배 6연패의 신화창조를 이뤄낼 수 있을까? 홀로 남은 이창호 9단이 농심신라면배 6연패 사냥을 위해 나선다.

2월 22일, 선수 이창호 9단과 단장 김인 9단, 대회 관계자 일동이 인천 국제공항 OZ365편을 타고 중국 상하이에 몸을 실었다. 예정대로라면 오후 3시10분에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흐린 날씨 탓에 1시간이 지연되어 출발. 기다리는 동안 이창호 9단은 주로 책을 읽는 모습.

일행은 푸동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가량 이동, 서울의 명동과도 비슷한 주장루 근처 왕바오허 호텔에 투숙했다. 호텔로 들어서니 먼저 온 동생 이영호 씨가 형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편, 일행에는 이창호 9단의 열렬한 팬 세명도 응원차 함께 동행해 눈길.

지난 18일~20일까지 북한 금강산에서 국수전을 치렀던 이창호 9단은 21일 하루 휴식을 취한 뒤 22일 다시 상하이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컨디션 조절이 무엇보다 우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은 두명씩 남아있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은 이창호 9단 오직 한명만이 남아 있다는 것과 최근 이창호 9단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LG배, 중환배 등 주요 대국에서 모두 패한데 이어 얼마전 최철한 9단에게 0-3으로 완패를 당하며 국수 타이틀 탈환에 실패, 올해 1승5패의 최악의 성적을 보이고 있어 전망이 밝지 않다.

하지만, 이창호 9단이 누구던가? 단체전 불패신화를 이어오고 있는 바로 그 '이창호' 아니던가. '특급 소방수'인 이창호 9단은 제1회부터 5회 대회까지 한국의 우승을 견인해 온 '철의 수문장'. 5명이 연승전 방식으로 겨루는 이 대회에서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출전한 이창호 9단은 단 한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다. 농심신라면배 개인통산 10연승, 예선전적까지 포함하면 26승 무패의 신화.

현재 중국은 왕레이 8단과 왕쉬 5단이, 일본은 왕밍완 9단과 장쉬 9단이 남아있다. 장쉬 9단은 故 가토마사오 9단을 대신해 나왔다.

이창호 9단은 23일 오후3시(현지 오후2시), 일본 2장과 맞붙는다. 한편, 23일 오전11시반에는 당일 대국자를 제외한 기사들과 각국 단장이 참석해 기자회견이 벌어질 예정.

과연, 이창호 9단이 최근 부진을 말끔히 씻으며 6연패를 향한 3차전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이버오로에서는 '랜드킴' 김성룡 9단의 중국 현지 해설로 바둑팬들과 함께 호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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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달, 즉 2/25에 올렸던 글이 있었죠. LG배 4강전에서 위빈에게 져서 탈락하고 연초부터 1승 4패를 기록하면서 여러가지 말들이 나올때 이창호 구단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을 쓴 글이었는데요. ('기사읽기') 위의 기사에서도 그 때 나온 여러가지 말들처럼 그런 한편의 우려감을 담고 있습니다만 슬럼프란 소리를 듣고 있는 이창호 구단이 가장 중요하고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 벌어질 상하이에서의 농심배 3차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하는 거죠.

또 하나 여기 남기고 싶은 기사가 있었는데요. 이창호 구단의 말입니다. 타이젬 뉴스에 나온 건데요. 장쉬와의 대국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창호 구단이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인터뷰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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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한국 단장인 김인 9단이 '거의 한국 우승을 포기했다'라고 했는데 이9단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이 멘트에 대해 모 기자는 한국의 허허실실 전술이라고 표현함)
어떤 뜻으로 말씀하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팀원들과 한국의 명예가 걸려 있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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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각오가 이창호 구단이 농심배에 주장으로서 임하는 각오란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죠. 전에 통달인 바둑통이신 위성웅님이 쓰신 바대로 이창호 구단은 10여년간 국가의 명예를 짊어진 뒤가 없는 싸움을 여태 해 왔고 온몸을 던져 전력투구를 하는 모습으로 언제나 감동을 줘왔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서라고 봅니다만, 연초의 그러한 부진한 성적을 보면서도 여전히 한국 바둑팬들은 55.14%(사이버 오로의 온라인 설문 결과. 2/26 현재의 기록입니다.)가 여전히 그가 이창호이기에 한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남은 차이나, 일본의 기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할 것이라고 대답했죠. 그리고 2월 23일과 24일에 연속으로 이구단은 제 6회 농심배 3차전 11국과 12국에서 승리를 거두고 3연승을 달성합니다.

현재 제 13국이 벌어지기 직전인 상황에서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정리해봅니다. 1라운드와 2라운드 그리고 3라운드 12국까지 끝난 상황입니다.

1> 미무라 : 한종진 - 미무라 불계승

2> 미무라 : 저우허양 - 저우허양 불계승

3> 안달훈 : 저우허양 - 저우허양 불계승 (저우허양 2연승)

4> 저우허양 : 다카오 - 다카오 불계승

5> 다카오 : 유창혁 - 다카오 4.5집승 (다카오 신지 2연승)

6> 펑첸 : 다카오 - 펑첸 불계승

7> 펑첸 : 최철한 - 최철한 불계승

8> 최철한 : 조치훈 - 조치훈 불계승

9> 조치훈 : 뤄시허 - 뤄시허 불계승

10> 이창호 : 뤄시허 - 이창호 불계승

11> 이창호 : 장쉬 - 이창호 불계승

12> 이창호 : 왕레이 - 이창호 불계승 (이창호 3연승 중)

* 제 12국까지 끝난 시점에서 차이나 1명 (왕시), 일본 1명 (왕밍완), 한국 1명(이창호) 이렇게 남은 상황입니다.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았던 한국은 이창호 구단이 3연승을 거둠으로써 다른 두 국가와 대등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기보를 보는 것은 이번의 '전설의 여정'에서는 어제의 왕레이와의 12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레이가 밀렸던 판이고 일본의 떠오르는 태양 장쉬와의 11국이 역시 바둑팬들의 관심을 많이 모았죠. 막판 중앙에서의 이창호 구단의 절묘한 수도 감상할 수 있었고. 그래서 전설의 여정에 맞게 그 판을 살펴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 2005년 2월 23일 농심신라면배 제 3차전 제 11국> 흑 : 이창호 구단 (한국) 백 : 장쉬 구단 (일본)

11월 29일 드디어 제 10국이 열립니다.

<실전보> 1 ~ 21

이 바둑은 초반에 이창호 구단에게 기울었고 그 뒤에는 장쉬의 끈질긴 추격전이 벌어졌던 판이라고들 국후 감상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흑 21로 움직인 수가 뜻밖의 수였고 이 우변 공방전이 가장 중요한 싸움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실전보> 1~32

이창호 구단이 21을 두고 이후 32까지 우변 공방전이 마무리된 장면입니다. 저는 바둑수가 낮긴 하지만 흑이 백돌을 잡고 안정하고 두터워졌고 백은 하변을 기어서 넘어간 모양이 된 것이 흑이 좋아보이는군요.

<실전보> 백 204와 흑 209

장쉬 구단이 204(R,7)로 둬서 아마도 스스로 생각에 선수로 우변을 조이고 득을 보는 수를 두니 이창호 구단이 패로 받은 장면이 위 기보의 마지막 수(빨간색 세모 표시된 수)입니다. 바로 209수죠. 패감은 상변쪽 백말을 압박하면서 많으니 백을 물러서게 만들고 흑이 다른 곳에 둘 수 있게 하기 위해 패를 낸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바둑수는 낮으니 해설을 듣고 알게 된 거지요. 역시 바둑이 참 오묘한가 봅니다. 생사의 압박을 받는 돌을 의도적으로 패를 내는 것이 상황에 따라 아주 좋은 수가 된다니 말입니다. 아마도 이런 것이 수읽기가 아닌가 합니다. 수상전의 수가 누가 빠른지를 보는 것이 수읽기의 힘이 아니라 어떤 수순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좋은지를 판단하는 능력. 형세판단과 결부된 그림 그리기의 창의력. 이런게 진정한 수읽기이겠지요?

<실전보> 이창호 구단의 절묘한 수 - 흑 235

위의 흑 마지막 수(빨간색 삼각형 표시된 수)가 바로 흑 235수입니다. 이 한방으로 바둑이 실제로 끝나버렸죠. 중앙 백집이 확정가인듯 보이는데 흑이 저렇게 두는 수가 성립하는가? 다음 참고도를 보시면 백이 왜 J,13으로 차단할 수가 없는지가 나옵니다.

<참고도>

이 흑 235수에 대해 백이 J,13으로 그 흑돌을 잡으려하면 어떻게 되는가 보여주는 참고도입니다. 흑 6까지 진행이 되고나면 이후 흑은 L,9로 한점을 따내는 수와 K,12로 백 3의 한점을 잡으며 전체가 연결되는 수가 맞보기가 되어서 그대로 끝장이 나고 말죠. 흑의 235수가 놓이고 나니 모든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든 참고도입니다. 장쉬는 어떻게 받아도 피해를 볼 수 밖에 없게 된거죠.

이후 진행은 장쉬가 결국 I,11로 물러서는 수를 두고 더 진행이 되지만 실제 바둑은 235수가 놓임으로써 끝났다는 게 맞을 겁니다.

그렇게 전설의 시작이후 두달이 지나고 이창호 구단은 전설의 여정을 이어갑니다. 불과 그 두달 사이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지나갔군요. 바둑대상 시상식이 열려서 객관적인 성적이 앞서는데도 이창호 구단이 최우수 기사상을 수상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고 국수전 리턴매치를 최철한 구단과 일년만에 다시 벌이게 되었지만 3대 0으로 힘도 못써보고 물러나게 된 일이 또 있었고 연초부터 1승 5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가운데.. 그렇게 힘들게 맞이한 2005년 2월의 시점에서 국가의 명예를 짊어진 어려운 대결을 맞아 이창호 구단이 보여준 투혼의 한 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창호 구단의 모습은 언제나 지켜보는 바둑팬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제가 꽤 오랜 시간 고생하면서 이런 글을 올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겠지요.

전설의 여정은 이어지고 우리는 아직 그 결말을 모릅니다. 제 희망대로 전설의 끝이 이창호 구단의 5연승으로 마무리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주진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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