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04:09
스포츠

바둑의 스포츠화 정책

기사입력 2005.02.23 22:13 / 기사수정 2005.02.23 22:13

주진효 기자

'바둑이 스포츠냐'는 질문에 대한 의견은 지금까지 여러 바둑 사이트에 다양한 관점과 시각들이 올라왔습니다. 저 또한, 작년 9월에 몇가지 글로 '바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글로 남긴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바둑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간단하게 정의합니다.

'흑백을 교대로 두면서 바둑 고유의 규칙에 따라 승패를 가리는 보드 게임(Board Game)'.

바둑은 게임이므로, 근본적으로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와 상당히 많은 공통성을 보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체적 활동의 격렬성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바둑은 머리속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는 정의에도 상당히 동의하구요. 바둑에 대한 제 생각은 작년의 제 글 두편에서 단상으로나마 쓴 적이 있으므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래 글을 참고)


바둑에 대한 단상 1

바둑에 대한 단상 2 그리고 잉씨배 4강전을 보며


그리고 또한 이러한 제 정의에 따라 바둑은 스포츠의 면을 70% 정도는 그 속성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계량화해서 말하곤 합니다. 70%냐 60%냐 40%냐는 식의 계량화한 숫자의 높고 낮음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눈으로 봐서 쉽게 들어오는 것을 선호하는 보통의 사람 입장으로서 간단하게 시각화해서 말하는 것일 뿐이죠. 

개인적으로는 70%정도가 스포츠적인 면이고 나머지 30%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말해왔던 도(道)나 예(禮)로서의 속성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 따라 그간 바둑의 정의나 혹은 그에 관련된 생각을 글로 남겨오신 분들에게도 道나 禮로서의 속성을 그 主屬性으로 보시는 분들의 시각에 대해 제가 보는 관점은 다르다는 의견을 피력해왔지요.

이제는 시대가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졌나 봅니다. 처음 그런 제 생각을 쓸 때만 해도 저와는 반대의 의견을 가진 분들이 반수를 넘어갔는데 어느새 이제는 '원래부터 스포츠다'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오히려 다수로 변한 것을 각종 설문 결과를 통해 볼 수 있으니까요. 한국기원의 '바둑의 스포츠화' 정책이 실시되고 몇 년이 흘러간 것이 바둑팬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까지는 오늘의 제 논점을 전개하기 위해 서론을 쓴 것이고 오늘 제가 쓰고 싶은 글은 바둑의 정의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 아닙니다. [바둑의 스포츠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바둑 발전을 위해 좋은 정책 방향인가?]가 오늘 제 의문입니다.

한국바둑계는 '바둑의 미래'의 문제를 놓고, 바둑팬들이 낸 작은 목소리와 그 내부(한국 기원 이사진, 프로 바둑 기사들 등)의 자각의 단계를 거쳐서 수년 전 부터 바둑의 스포츠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대세가 되었죠.

그러나 최초로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 중 한명인 제가 2005년 2월의 시점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방향이 옳은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됐습니다. 이 상황이 얄궂지만 현실적으로 최초의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할지라도 정책과 방향이란 추진 과정에서의 세밀한 검토와 분석과 주의를 거치지 않으면 엉망이 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의 과정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upkorea님의 글을 일부 인용합니다. 작년 12/1 통달인 바둑클럽에 upkorea님이 올리신 '신기루 속에 둥지를 틀다' 란 글의 일부 인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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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배까지를 포함하는 과거의 업적은 눈부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눈부심이 오늘 우리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바위덩어리를 가려버리는 결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한국 바둑은 그 동안 세계바둑 시장에서 포식자의 위치를 독점해 오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런 행운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적 기반은 여전히 경쟁상대국인 일본.중국에 비해 가장 취약한 위치에 머물러 왔다.

나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바둑을 체육으로 정립시키고자 하는 중국의 노력은 결국 실패할 것으로 본다. 다만 오늘 우리의 눈에 그것이 부분적인 성공 사례로 비치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1970 년대에 보인, 압축경제성장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동반징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중국의 정책적 시도는 현재 중국이 당면해 있는 정치.경제개발단계와 잘 맞아 떨어져 중국바둑의 사회기반으로써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여전히 바둑을 과거와 같은 사회문화전통 가운데 유지해 오고 있다. 일본 바둑에 작용하고 있는 사회.심리적 요인은 근래 급격한 감소세를 보여온 바둑 인구 가운데서나마 안정된 스폰서를 유지해 갈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그 결과는 투입대비산출이라는 투자효율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는 수용인구의 감소를 문화적 전통가치라는 보완요인으로 상쇄시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먼 장래에도 그 누군가의 말처럼, 혹 일본은 없을지 모르지만 일본의 바둑만큼은 여전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근래 몇 년간, 한국의 바둑은 마치 무엇에 스스로 쫓기듯 바둑의 스포츠로의 전환을 서둘러 왔다. 그러나 나는 그 결과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 첫 번째 요인은, 타 종목과의 경쟁에서 우선 비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쟁이란 관중동원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그나마 확보된 팬의 세대순환에서 오는 자연감소를 메워갈 만한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왕에 바둑을 배운 사람들을 팬으로 확보하기는 쉽다. 그러나 새로운 바둑 팬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물론 바둑이 배우기 어려운 게임이라는 점에 있다.

그나마 이 두 가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길이 있다면, 바둑을 경마나 경륜처럼 사행산업화 하는 방안 외에 별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 바둑계가 겪고 있듯 한국 또한 바둑 인구의 체감기를 맞고 있다. 이와 같은 내부여건의 변화는 한국 바둑 시장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첫째는, 국내 기전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시장의 위축과 교란으로 먼저 나타나게 된다. 최소한 국내에서만큼은 바둑은 기업을 홍보하거나 제품을 선전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다. 그 결과 스폰서의 산업 간 이동이 급격하게 나타날 것이다. 과거 안정된 스폰서 역할을 도맡아 왔던 신문사들이 퇴장하고 인공지능체와 인간과의 경연이라는 새로운 이벤트를 통해 IT업체들이 유력한 후견기업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하여 바둑 시장 또한 세계로 향할 것이다. 삼성화재배, LG배, 농심신라면배 등 굵직굵직한 국제기전의 주요 대국들이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만 놓고 봐도 이런 추세는 한 눈에 드러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외부환경변화에 대응이다. 일본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현재만 해도 그들의 문화적 중층구조가 이미 그런 충격들을 흡수해 내고 있다. 중국은 그들 고유의 사회체제와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통하여 이 모든 외부의 변화를 완충시켜 갈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바둑계의 위상은 어떤가.

세계바둑대회에서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며 호들갑을 떨 때가 아니라 한국바둑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냉정히 되돌아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최소한 오늘 한국바둑의 수혜자로써 위치에 있는 바둑사이트들의 책임 있는 기자들에게 묻고 싶어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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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에 있어서 위의 글에 상당한 동의를 합니다. 물론 윗 글의 요지는 한국 바둑의 미래에 대한 우려입니다. 그러나 바둑의 스포츠화를 하면 장미빛 미래가 있을 것같이 광고하는 한국기원과 관계자들에게 '과연 그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담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둑이 스포츠이지만 스포츠화를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 추진하는 '스포츠화 과정 - 대한 체육회 가입' 이 옳은 방향인가라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댓가가 지금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어제인 22일 타이젬 명예기자이신 i진선님이 이광구님의 바둑 기사를 인용해 올리신 '[한국] 대한 체육회, '한국기원' 명칭 바꿔!' 란 기사에 나타난 실상이죠.

요지는 대한 체육회 준가맹단체 신청을 한 한국 기원에게 대한 체육회가 한국 기원의 명칭을 '대한 바둑 협회'로 바꾸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한국 기원의 명칭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시중 기원도 아니고 일본 명칭을 그대로 쓰는 '기원'이란 것은 시대 착오라고 생각해 왔죠. 그리고 실은 대한 체육회가 '권고'한대로 대한 바둑 협회로 바꾸는 것은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실은 20년쯤 전에 벌써 그렇게 바꿨어야 했을 문제죠. 그러나, 이름을 바둑팬과 한국 기원측의 논의와 토론을 거쳐 바꾸는 것과 다른 단체가 [바꿔]라고 해서 강제로 정리당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외부 세력이 나서서 강제 정리를 시키면 자존심이 상한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명제 앞에 자존심 내세우고 있다가는 바둑은 지금까지처럼 시대에 도태당할 것입니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부 역량이 미약할 때 외부의 힘에 의한 휘둘림이 바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가 심히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바둑이 스포츠로 정식 인정을 받게 되면 어린 바둑 기재들이 각 학교에서 스포츠 특기자로 육성될 수 있다는 장점을 한국 기원은 얘기합니다. 그 부작용은 지금 스포츠 특기생들이 공부를 완전히 등한시하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 체제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특기생 중 성공하는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수는 스포츠에서도 성공 못하고 사회에 나가도 바닥으로 내려가는 부작용을 안고 있습니다. 

세계대회에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되고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된다는 장점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바둑의 국위선양이라는 측면에서 바둑에서만 희한하게도 인정받아오고 있던 일부 세계대회 우승, 준우승자 - 현재 동양 증권배는 폐지되고 후지쓰배와 잉창치배 두 가지만 인정 - 의 병역면제도, 스포츠로 인정 받는 상황에서는 다른 스포츠 종목과의 형평성과 균형이라는 면에서 조정 - 늘게될 지 오히려 줄게될 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 - 을 거칠 것입니다. 즉 가장 현실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둑이 스포츠가 됨으로써 다른 스포츠와의 형평성이라는 면에서 각종 제한까지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며, 여러가지 폐해까지도 유입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러한 모든 과정을 안고 가더라도 미래의 생존이라는 절박한 명제앞에 +, -를 따져봐도 결국 단점과 문제점은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그동안 저 또한 바둑의 스포츠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의문을 제기합니다.

바둑은 스포츠지만 스포츠화를 현실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가?

더 중요하게는

이러한 정책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했으며 우리 - 여기서는 바둑과 관련된 팬과 한국 기원과 모든 종사자들까지 최대한 넓은 의미로 쓰는 말입니다 - 는 그 부작용과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제가 오늘 제기하는 의문입니다.



주진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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