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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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만 남긴 올림픽 축구, 막막한 '향후 2년'

기사입력 2008.08.15 23:44 / 기사수정 2008.08.15 23:44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베이징, 박형진 기자] '희망'이라는 단어를 과연 어디에다 붙여야 할까?

8강 진출에 실패한 올림픽 대표팀이 고개를 떨구며 귀국했다. 온두라스를 1-0으로 이겼지만 카메룬전 무승부와 이탈리아전 대패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 메달권에 진입해 병역혜택까지 노리며 열심히 땀방울을 흘렸던 어린 선수들은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조국 땅을 밟았다.

결과도 결과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좋지 않았던 대회였다. 카메룬과의 일전에서는 힘에 밀렸고,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기술에서 밀렸다. 한 수 아래인 온두라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빈공에 시달리며 한 골에 그쳐 목표했던 다득점에 실패했다. 3경기에서 2득점 4실점. 공격은 무디었고 수비는 헐거웠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이 대부분 23세 이하의 젊은 선수로 이루어진 만큼, 이들의 실패를 한국축구의 위기로 모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축구를 견인해야 할 이들에게 올림픽의 아픈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

자신감을 잃어버린 올림픽 대표팀

다른 스포츠도 그렇지만 축구 역시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험에도 긍정적인 것이 있고, 부정적인 것이 있다.

올림픽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힘과 기술의 열세를 처절히 경험했다. 박성화 감독 역시 "거대한 산맥을 만난 것만 같았다"며 개인 기량의 격차를 거듭 언급했다. 심지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역시 온두라스전을 참관한 후 "우리 선수들이 상대 수비 하나 제치지 못한다"며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문제 삼았다.

올림픽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은 아직 완성된 선수가 아니며 한참 성장세에 있는 선수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번 대회가 현실을 직시하는 '채찍'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강팀을 상대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유소년 축구와 리그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과 동등한 개인 기량을 갖춘다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이러한 선수들에게는 기술적 열세를 전술과 조직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의 잘못된 분석과 실패한 전술이 그나마 있던 자신감마저 빼앗아버렸다.

박성화 감독은 힘과 기술이 좋은 카메룬, 이탈리아를 상대로 중원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카메룬전의 경우 힘을 앞세운 카메룬 축구에 적응하지 못하며 승리를 거두는 데 실패했고, 이탈리아전에서는 낯선 4-3-3 전술을 무리하게 시도하다 자멸하고 말았다. 8강행 여부를 결정짓는 온두라스전에는 득점의 부담을 경험이 부족한 조영철, 김근환에게 맡겼고 이들은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하며 득점에 실패했다.

이근호는 훈련 후 가진 인터뷰에서 "체격적인 부분도 중요한 것 같고, 집중력을 키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탈리아 선수들을 보면서 공격수로서 공을 소유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패배를 통해 느낀 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감독마저 선수들을 격려하는 대신 개인 기량의 차이를 운운해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한국축구, 결코 밝지 않은 미래

문제는 현재 올림픽 대표팀의 선수들이 향후 10년간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주축이라는 점이다. 박성화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을 맡으면서 청소년 대표팀 출신의 어린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했고, 이들을 주축으로 올림픽 본선에 도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린 선수들은 세계무대에서 회복하기 힘든 좌절을 겪고 말았다.

이들은 곧 있을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비롯해 많은 국제대회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쁜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고, 한 번 잃은 자신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다음 국제대회에서 아무리 좋은 감독이 훌륭한 전술과 전략을 갖고 대회에 임하더라도, 가슴 속 깊이 유럽팀과 아프리카팀에 대한 공포감을 간직한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을 이끌 훌륭한 국내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성화 감독은 부산 감독을 맡자마자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며 많은 파문을 낳았지만, 파문을 상쇄할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했다. 성인 대표팀을 맡고 있는 '동갑내기' 허정무 감독 역시 지금과 같은 지루한 축구를 계속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사퇴 압박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이들을 이을만한 감독으로 꼽히는 변병주, 최강희, 김학범 감독 등은 모두 K-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이들은 대표팀을 맡은 경험도 없고 대표팀을 이끌 카리스마도 부족하다. 선수의 개인기 부족과 자신감 상실도 중요한 문제지만, 이들을 이끌 훌륭한 지도자의 공백이 더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축구, 상처를 이겨낼 수 있을까?

베이징 올림픽에서 충격과 상처를 경험한 한국 축구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의 2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당장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 중요한 과제가 되겠지만, 충격을 추스르고 어떻게 발전의 계기로 삼느냐에 따라 한국축구의 향후 10년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4강 진출로 자신감이 살아났던 한국축구는 지난 6년간 세계무대에서 잇따라 좌절을 경험하며 후퇴를 거듭했다. 올림픽대표팀의 본선 8강 탈락은 그러한 후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 위기와 상처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한국축구는 히딩크와 월드컵이 남긴 훌륭한 유산을 이어받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축구가 다시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축구장이 다시 관중으로 가득 찰지, 아니면 실망만 남긴 채 축구장에 물을 채우게 될지는 향후 2년에 달려있다. 

[사진 : 10일 이탈리아전이 끝나고 주저앉은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 (사진제공:골닷컴)]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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