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네덜란드는 유로 2008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 9득점 1실점이란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 상대가 이탈리아, 프랑스, 루마니아였단 사실은 더욱 경이로웠다. 매 경기 네덜란드의 압도적인 경기력이 펼쳐지자 전문가와 도박사들은 대회 최강팀으로 네덜란드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의 우승은 마치 시간문제인 것처럼만 보였다.
그러나 그 놀라운 퍼포먼스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네덜란드가 가진 잠재적인 문제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그것은 바로 수비.
잠재적 문제점
수비는 이전부터 네덜란드의 가장 큰 불안요소였다. 화려한 공격진에 비해 수비진의 무게감은 예전의 네덜란드와는 달리 많이 떨어져 있었다. 지난 3월 오스트리아와 가진 친선경기에서 네덜란드는 비록 4-3으로 대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전반에만 3골을 내주는 최악의 수비를 보여줬다. 그나마 꾸준함을 보여주던 ‘네덜란드리그 MVP’ 요니 헤이팅하의 존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철벽 수문장’ 에드빈 반 데 사르의 존재도 평범한 수비진이 'S급 수비진‘의 실점률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유로 2008을 앞두고 마르크 반 바스텐 감독은 네덜란드의 전통과도 같은 4-3-3 전형을 버리고 4-2-3-1를 새롭게 채택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 중 하나는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함으로써 불안한 수비를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부족한 측면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할리드 불라루즈를 '깜짝 카드'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실제로 이러한 반 바스텐의 선택은 효과를 나타냈고 결국 네덜란드는 누구도 예상 못한 성적을 거두며 '죽음의 조' 탈출에도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유로 2008 조별리그에서도 표면적으로는 1골밖에 내주지 않았지만 수차례 실점위기를 맞았다. 아마도 상대팀 공격수들이 조금만 더 침착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특히 중앙수비는 언제든지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드러난 문제점
결국 8강전에서 네덜란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의 파상공세를 막아내지 못하며 1-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앞선 3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불라루즈는 사흘 전 딸이 출생 하루 만에 숨진 충격으로 경기에서 제 기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불라루즈가 교체 아웃된 이후 오른쪽 수비수로 나선 안드레 오이에르는 끊임없이 러시아에 측면을 내주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늘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요리스 마테이센은 이날도 첫 번째 득점 상황에서 러시아의 로만 파블류첸코를 완벽하게 놓치며 선제골을 허용했다. 믿었던 헤이팅하마저 이 날 경기에선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장전에 허용한 두 골에서도 네덜란드 수비진의 무력함은 그대로 드러났다. 오이에르는 너무 쉽게 크로스를 허용했고 중앙수비수들은 뒤에서 들어오는 선수들을 놓치거나 공격수들에게 너무 많은 공간을 허용했다.
네덜란드의 약점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히딩크 감독의 전략에 ‘오렌지 군단’은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고, 3골을 내주며 앞서 그들이 짓밟은 세 팀과 같은 아픔을 겪게 되었다. 결국, 잠재적 불안요소가 그대로 현실화되며 네덜란드는 또 다시 메이저대회에서의 비운을 이어가게 됐다.
앞으로의 과제
웨슬리 슈네이더, 라파엘 반 더 바르트, 로벤 반 페르시, 아르옌 로벤, 클라스 얀 훈텔라르로 대표되는 네덜란드의 공격진은 젊고 강하며,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있는 한 네덜란드는 유럽 최강의 공격력을 앞으로도 10년 가까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비는? 현재 헤이팅하를 제외하고는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야프 스탐과 프랑크 드 보어로 대표되던 과거의 강력한 수비를 가까운 미래에 다시 볼 수 있기 위해선 지금부터 수비진의 세대교체와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오렌지 군단이 유로 2008의 실패를 딛고 다음 월드컵과 그 이후의 메이저대회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수비의 안정이 필요충분조건이다.
[사진=또 다시 실패를 맛본 '우승후보' 네덜란드 (C) 유로 2008 공식 홈페이지]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