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강대호 기자] 독일축구에는 ‘돈이 골을 보장하진 않는다.’라는 좋은 격언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30일, 이적료 1,100만 유로(172억 원) 4년 계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이탈리아대표공격수 루카 토니(이하 토니, 리그 26경기 18골 6도움) 와는 무관하다.
지난해 8월 11일, 이번 시즌 리그 개막전인 한자 로스토크와의 홈경기에서 토니가 독일대표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리그 25경기 10골 8도움)의 도움을 받은 분데스리가 데뷔골에 걸린 시간은 불과 14분이었다. UEFA컵 10경기 10골 4도움, 리그컵 3경기 3골로 바이에른에서 총 39경기 31골 10도움을 기록 중인 토니는 1년도 안 돼 독일리그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다.
토니는 어느덧 게르트 뮐러(만 62세, 리그 565경기 489골/독일대표 62경기 68골)의 별칭인 ‘폭격기’를 계승하며 실력뿐 아니라 인기도 분데스리가 정상급이다. 뮐러는 바이에른에서만 리그 398골을 넣었고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만 67세, 리그 669경기 626골/A매치 92경기 77골), ‘문전의 귀재’ 호마리우(만 42세, 리그 451경기 311골/A매치 74경기 56골)에 이어 개인 통산득점 세계 3위인 위대한 공격수다.
토니는 《유럽축구연맹》 스테펜 포터와의 인터뷰에서 “바이에른이 내게 거금을 투자했기에 득점으로 이에 보답하고 있다.”라며 활약 동기를 설명했다. 토니의 ‘보답’은 지난주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10일, UEFA컵 준준결승 2차전, FC헤타페(에스파냐)와의 원정에서 연장 종료 5분을 남기고 2골을 넣은 토니는 팀의 3-3무승부와 합계 4-4, 원정 골 우선 준결승 진출의 1등 공신이 됐다.
13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리그 홈경기에는 경기 3분 만에 독일대표공격수 루카스 포돌스키(리그 19경기 2골 1도움)의 선제골을 도왔고 프랑스대표수비수 윌리 사뇰(리그 5경기 1도움)/브라질대표미드필더 제 호베르투(리그 26경기 5골 4도움)의 도움으로 전반에만 2골을 넣어 5-0 대승을 주도했다. 바이에른이 유럽클럽대항전 경험이 없던 30대 공격수에 1,000만 유로 이상의 이적료를 투자한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적만으로도 바이에른은 판단의 정확함을, 토니는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
1977년생의 토니는 전형적인 대기만성이다. 1994년 프로데뷔 이후 2000/01시즌 비첸차 칼치오 입단 전까지 이탈리아 하부리그에 머물렀다. 비첸차에서 리그 31경기 9골을 기록한 후 브레시아에서 유럽/세계 최우수선수(1993) 경력의 이탈리아대표공격수 로베르토 바조(만 41세, 리그 644경기 291골/A매치 56경기 27골)와 2년간 함께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리그 44경기 15골의 그저 그런 공격수였다.
토니가 이탈리아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한 것은 2003/04시즌 USC팔레르모 입단부터다. 토니는 팔레르모(리그 80경기 50골, 2003-05)/ACF피오렌티나(리그 67경기 47골, 2005-07)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가공할 득점력을 보였다. 청소년대표 경력도 없는 토니가 2004년 국가대표로 발탁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2004년 리그 45경기 30골로 팔레르모의 2부리그 우승을 이끈 토니는 2006년, 이탈리아리그 득점왕/유럽리그 최다득점, 월드컵 우승/올스타로 생애 최고의 해를 보냈다. 27세까지 이탈리아 대표팀과는 무관했던 그가 월드컵 우승으로 훈장까지 받았으니 인생역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토니는 지난해 9월 20일, UEFA컵 80강 1차전 Os벨레넨세스와의 홈경기에서 34분, 미드필더 마르크 판 보멀(리그 22경기 1골 3도움)의 도움으로 유럽클럽대항전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다. 이번 시즌 토니는 생전 처음인 UEFA컵에서 2위와 2골 차의 득점 선두다. 과거 이탈리아 1부리그와는 거리가 멀었던 무명이었고 국가대표로 메이저대회 경험 없이 월드컵 우승팀의 주전 공격수로 올스타에 선정됐던 토니의 축구인생은 이렇듯 객관적 예측의 단골소재인 ‘사전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 1부리그에 이탈리아 선수가 뛰는 것 자체가 역대 두 번째다. 챔피언스리그(1985)/UEFA컵(1977, 1991, 1993) 우승의 명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만 69세, 이탈리아)가 1996/97시즌부터 2년간 바이에른을 지도할 때 공격수 루지에로 리치텔리(만 40세, 리그 368경기 84골/A매치 9경기 2골)가 함께하며 리그 45경기 11골을 기록한 것이 분데스리가 최초의 이탈리아인이 자취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인 감독과 함께한 리치텔리와 달리 토니는 독일이 자랑하는 오트마 히츠펠트(만 59세, 세계 최우수지도자 2회)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만 리그 6회(1995-96, 1999-2001, 2003)/FA컵 2회(2000, 2003)/챔피언스리그 2회(1997/2001)/클럽월드컵(2001)을 제패한 히츠펠트가 토니를 중용하고 높이 평가하는데 국적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진정한 전사이자 승리자다.” 포터와의 인터뷰에서 히츠펠트가 토니를 평한 말이다. 조직과 정신을 강조하는 독일축구가 낳은 최고의 명장이 극찬할 정도라면 축구를 대하는 토니의 자세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분데스리가 두 번째 이탈리아 선수’라는 딱지를 달고 있음에도 토니는 사적으로도 약간의 향수병을 빼고는 독일생활에 대만족을 표하고 있다. 특히 토니가 좋아하면서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던 것은 바로 세계적인 명문인 바이에른 선수단 전체가 유명맥주축전인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하는 등 축구선수가 경기/훈련 외의 시간에는 대중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번 시즌 전까지 축구관련 폭력으로 몸살을 앓는 자국에만 활약했던 토니에게 이는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독일 최고의 덕목인 성실함으로 무장한 토니에게 분데스리가/바이에른은 최고의 리그/팀일지도 모른다. 리그 6경기를 남기고 2위와 10점차인 바이에른의 우승은 거의 확정적이다. 토니는 득점 2위에 3골 앞서있다. 생애 첫 월드컵 출전에서 우승을 경험한 토니는 역시 처음인 분데스리가/UEFA컵에는 우승/득점왕이 가시권이다.
UEFA컵 4강 중 바이에른은 객관적인 최강이다. 오직 전진뿐인 이탈리아산 폭격기가 분데스리가/UEFA컵 우승/득점왕을 석권한다면 생애 첫 유럽선수권 본선이 기다린다. 월드컵 우승팀으로 유로 2004 조별리그 탈락을 설욕하려는 이탈리아(3위)는 프랑스(7위)/네덜란드(10위)/루마니아(12위)와 대회최강인 C조에 속해 이번에도 준준결승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물러섬을 모르는 폭격기는 막강한 세 팀에도 골칫거리다. 특히 프랑스는 월드컵 결승에서 토니의 헤딩슛 두 번이 골대 강타/오프사이드로 득점무효가 됐던 아찔한 경험이 있다.
청소년 시절부터 유명한 선수가 흔한 현실에서 늦깎이 토니의 경력은 이례적이다. 경험 없이도 토니의 거침없는 메이저대회 폭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예상과는 무관한 사람의 미래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어떤 팀도 현재 절정인 그를 막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참고: 이 글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현지시각을 준수했다.
루카 토니
생년월일: 1977년 5월 26일 (만 30세)
신체조건: 196cm 94kg (신발 290mm)
위치: 중앙공격수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2007-현재)
프로통산: 리그 375경기 179골
국가대표팀: 33경기 15골
주요경력: 2004년 이탈리아 2부리그 우승, 2006년 이탈리아리그 득점왕/유럽리그 최다득점, 월드컵 우승/올스타(2006), 2007년 독일 리그컵 우승
비고: 월드컵 우승으로 이탈리아 훈장 받음
[사진: 루카 토니 (C) 유럽축구연맹 공식홈페이지 (UEFA.com)]
강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