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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인터뷰] '조작된 도시' 박광현 감독, 조화로운 현장을 꿈꾸다

기사입력 2017.03.07 06:30 / 기사수정 2017.03.07 05:35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박광현 감독과의 이야기는 2005년의 '웰컴 투 동막골'과 2017년 '조작된 도시' 사이의 시간부터 시작됐다.

"혼자 집에 있으니 시간이 불과 몇 년 안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대화할 때 제가 최근 얘기인 줄 알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언제 적 얘기냐'고 하더라고요. 가끔 시계가 저와 잘 안 맞아요. 그럴 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약간의 서러운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라고 말문을 연 박광현 감독은 신작이 나오기까지 걸린 12년의 시간을 '천천히'란 표현으로 정리했다.

"많은 분들이 '웰컴 투 동막골'을 좋아해주셨죠.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그 작품은 제가 영화를 잘 모를 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든, 제 문법의 영화였어요. 그러다 보니 그 이후에는 영화를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천천히, 정말 천천히 공부하듯이 시나리오를 썼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집중하면서 만들어 온, '박광현 감독이 내놓는 12년 만의 신작'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조작된 도시'는 지난 2월 9일 개봉해 249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조작된 도시' 개봉 이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광현 감독은 집에서 즐겨 마신다는 모과차와 태블릿PC, 휴대전화를 가지런히 테이블 앞에 펼쳐놓은 채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달라지고, 또 다양해진 영화 홍보 환경에 얼른 적응해야겠다면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태블릿PC를 펼쳐놓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표준근로계약에 따라) 하루에 12시간 이상 찍을 수가 없잖아요. 또 스태프들이 외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도 확실해졌더라고요. 제가 영화 현장에는 없었지만 늘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한 영화를 보고 있었거든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의 변화에 대해선 전혀 예측이 안 됐던 거죠. 그런 변화가 12년 만에 돌아온 것에서 느낀 점이에요."

과거 '웰컴 투 동막골'을 정말 재미있게 봤었다는 이야기에 "아이고, 부끄러워라. 영화 좀 자주 만들었어야 했는데"라고 쑥스럽게 화답한 박광현 감독은 '조작된 도시'를 기획하고, 또 완성하기까지 지나왔던 2년 10개월의 시간을 회상했다.

"2014년 4월부터 시작했어요. 시나리오를 8개월 동안 쓰고, 캐스팅 준비, 프리프로덕션을 2~3개월 한 후에 6개월 동안 촬영, 후반 작업에만 1년이 걸렸죠.(웃음)"

박광현 감독은 '조작된 도시'를 '상징'에 대한 영화라고 정의했다. '조작된 도시'라는 제목이 탄생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박광현 감독은 "한 사람에 대한 조작이 아니라, 어쩌면 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 전체가 이런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를 주는 영화죠"라며 "만화적이거나 극 사실주의거나에 상관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어쩌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야'라는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 '조작된 도시'라고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젊은 세대, 이 시대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표현됐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선택한 후 '게임의 영웅이 현실에서도 영웅이 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면서 그림을 덧붙여나갔다. '범죄이지만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배우 지창욱과 심은경, 안재홍 등 적재적소에 제 역할을 다 해낸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지며 경쾌한 리듬으로 완성됐다.


'조작된 도시'는 3분 16초 만에 살인자로 조작된 남자 권유(지창욱 분)가 여울(심은경), 데몰리션(안재홍) 등 게임 멤버들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며 반격을 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박광현 감독의 비주얼 텔링이 돋보인다. '조작된 도시'만의 감각적인 비주얼은 보는 이들에게 신선함, 혹은 또 낯선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간다.

박광현 감독은 "오히려 저는 시각적인 것에 굉장히 의미들을 많이 포함시켜요"라면서 "저는 그림에 의미를 둬서 스토리를 진행시키고, 텍스트로 진행되는 대사는 대사 그 자체가 되길 원해요. 다른 사람들하고 좀 다르죠. 기존의 화법과는 좀 다르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는 금방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어른들은 불편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로 자신의 방식을 전했다.

극 초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남다른 위압감을 주는 교도소의 모습이나, 지창욱의 목소리로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천상병 시인의 시 '나무',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하는 통쾌한 카체이싱까지 공간과 장면 장면에서 드러나는 신선함이 돋보인다.

"교도소 신은 권유의 억압감과 억울함, 막막함이 공간에서 표현돼야만 감정이 나온다고 생각했죠. 감정의 공간이었어야 했어요. 또 자세히 보면 권유가 교도소에서 자해를 하고 난 후에 햇살을 한 번 보여주는 장면이 있거든요. 평상시의 햇살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둠의 세계를 한 번 관통하고 났을 때의 햇살은 의미가 있는 것이죠. '나무' 시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고요. 카체이싱은 보통 대결 형식이잖아요. 그렇지만 '조작된 도시'에서는 아니에요. 여울이 해킹할 수 있는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이지, 누굴 괴롭히거나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콘셉트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에서도 보는 사람이 웃을 수 있다고 봐요."


'조작된 도시' 작업에 들어간 이후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아이디어들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4살부터 10살까지 어렸던 시절, 박광현 감독의 표현을 빌려 ‘정말 동막골 같았던’ 할머니 댁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그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시절에 놀 때 나오는 감정들이 있거든요. 정말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친구들과 미친 듯이 노는데, 그 때의 그 즐거운 느낌이 있어요. 아이디어를 선택할 때는 그 때의 감정에 맞추려고 하죠"라며 과거를 떠올렸다.

이런 과거의 기억은 영화 속 장면에도 투영됐다. 살인범의 누명을 쓴 권유가 고생 끝에 여울의 집을 찾아 한 상 가득 차려준 집밥을 먹으며 눈물을 쏟는 모습은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손꼽는 부분이기도 하다.

"밥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죠.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사람이 느낄 감정을 밥으로 상징화했죠.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 곁에서 크다 보니까, 사실 그 밥상도 할머니가 차리는 밥상처럼 나물 반찬도 있고 뚝배기에 찌개가 나오고, 그렇게 만들어지길 원해서 스태프에게 사진도 주고 그랬거든요.(웃음) 여울이가 권유에게 달걀프라이를 주는 장면도 어렸을 때 제가 달걀을 좋아해서 나오게 된 것이고요. 또 지창욱 씨가 잘 먹어줘서 의미가 담긴 좋은 먹방으로도 탄생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웃음)"

박광현 감독은 '조작된 도시'를 통해 무엇보다 영화를 함께 한 스태프들이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주목받고, 또 만족할 수 있기를 바라왔다.

"한국 스태프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며 껄껄 웃어 보인 박광현 감독은 "고맙게도 스태프들이 잘 따라와 줬어요. 저는 저 혼자 빛나는 건 싫거든요. 그건 캐스팅부터도 마찬가지죠. 너무 센 사람, (보통의) 원톱이나 투톱보다는 모두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람들로 간다고 생각하고요.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에요. 각 스태프들이 이 영화에 참여했는데, 즐겁지가 않으면 작업하는 5개월 동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죠"라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감독이 해야 할 몫이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촬영, 무술, 미술, 사운드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중요하잖아요. 말로만 종합예술이 아닌, 배우와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뭉친 게 영화인거죠. 적어도 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다고 하면 우리의 모든 이 감각들을 자극할 수 있는 다채로운 표현들이 빼곡히 있어서 모두가 빛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건물 하나를 짓는데 얼마나 많은 파트가 필요해요. 그런데 하나만 좋다고 해서 건물이 지어지진 않잖아요. 그럼 부실공사겠죠. 그래서 저는 적어도 영화는, 감독이 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잘 못하면 열심히 해도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도 겁이 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고요. 그렇죠?(웃음)"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박지영 기자, CJ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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