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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를 꿈꾸다 - 대전 시티즌, 김형일 (상)

기사입력 2007.05.04 01:08 / 기사수정 2007.05.04 01:08

김민숙 기자

엑스포츠뉴스는 '예.스.(예비스타) 인터뷰'를 통해 내일의 슈퍼스타를 꿈꾸는 선수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두사부 일체'가 적힌 내의 세레머니와 함께 파이팅 넘치는 활약으로 대전 시티즌의 차세대 수비수로 주목을 받고 있는 대전 시티즌의 김형일 선수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안녕하세요"

넘치는 투지로 그라운드 위를 달리는 모습만 보아왔기에, 조금 더 우렁찬 목소리와 커다란 너털웃음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눈앞에 나타난 김형일의 목소리는 나지막했고, 볼 가득 보조개를 띤 웃음은 예상 외로 수줍었다. 그리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오는 김형일에게서는, 어쩐지 조금 잔디 냄새가 났다. 그러니까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면 코끝을 매콤하게 만들던 푸릇푸릇하고 싱그러운 잔디의 냄새 말이다. 

부평 초등학교와 부평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부평고와 경희대를 거쳐 대전 시티즌에 입단한 김형일은 올 시즌 대전팬들의 시선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 선수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형일이 대전의 최후방에서 보여주고 있는 투지 넘치는 수비는 그 어떤 공격수가 보여주는 골보다도 더 화려하고, 더 눈부시기 때문이다. 187cm에 83kg이라는 뛰어난 신체조건과, 상대 공격수를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는 끈질긴 수비로 대전 시티즌의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형일은 올 시즌 대전이 배출해내는 또 하나의 스타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참 이상한 일이다. 김형일은 아직까지 자신을 향한 박수와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퍼플 크루가 자신에게 보내는 지지를 알고 있느냐는 말에, 김형일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김형일은 지금까지 자신이 주전을 꿰차고, 베스트 11에 뽑힌 그 모든 일이 그저 ‘운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한두 번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치게 됐을 때, 그래서 꾸준히 박수를 받고 사랑을 받게 됐을 때, 그때는 자신도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겠다는 김형일에게서는 미래를 향한 의지가 느껴진다. 지금보다 더 밝은 미래를 꿈꾸는, 당차고 기분 좋은 그런 의지 말이다.


열 한 살의 소년, 축구를 만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어요. 학교에 축구부가 없었는데,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교실에 오시더니 이 반에서 달리기 제일 잘하는 사람 세 명만 나와 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나갔더니 축구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그 때가 한참 축구가 인기가 좋았던 때라서, 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 오라고 하셨어요. 부모님은 하라고 하셨죠. 그런데 처음엔 그냥 특활활동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막상 시작해보니 결국엔 이렇게 되었지만요." 


십 삼년 전, 자신이 처음 축구를 만났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김형일은 슬쩍 웃음을 짓는다. 그저 달리기가 빠르다는 이유 하나로 잔디 위를 달리게 된 열 한 살의 소년. 그 소년은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축구가 자신의 평생 업이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땐가, 갑자기 시력이 나빠졌어요. 잘 보이지도 않고, 운동을 하니까 안경을 낄 수는 없어서 렌즈를 했는데 그것도 불편하고. 그리고 그 때 골반이 많이 아팠어요. 남들은 성장통이라고 하더라구요. 어쨌든 잘 안 보이는데 골반까지 아프고 그러니까 그때는 운동이 진짜 하기 싫었어요."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형일은 한 번의 호된 부침을 겪었다. 시력이 나빠짐과 동시에 키가 자라면서 골반이 함께 아파왔던 것이다. 몸이 아프면 마음속의 열정도 사그라드는 법. 그렇게 김형일은 몸의 통증 때문에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잠시잠깐 잊었다. 


"어떻게 극복했냐구요? 글쎄요. 그냥... 흘러갔어요."

하지만 김형일에게 부침의 시간은 그리 길게 지속되지 않았다. 입가에서 떠날 줄 모르는 웃음처럼,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태도처럼, 밝고 자신감 넘치는 천성 때문일까. 김형일은 그냥 담담하게 그 시간들을 흘려보내는 것으로 슬럼프를 극복해냈다고 말한다.

"그냥, 흘러가더라구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죠. 그때부턴 그냥 괜찮아졌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는 렌즈를 끼다가, 4학년 때 수술을 했죠. 이제는 괜찮아요. 잘 보이고, 골반도 안 아프고. 대학교 3학년 때는 무릎을 다쳐서 일 년 정도 쉬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것도 괜찮아요. 사실 4학년 때 안 다친 게 다행이었죠."

그렇게 김형일은 중학교 시절의 슬럼프와 대학교 시절의 부상을 이겨낸 후, 성장통과 헤어졌다. 그 성장통을 잘 이겨낸 덕에 김형일은 성장할 수 있었다. 성장을 마친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청년에게는 프로 무대 데뷔라는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물 네 살의 청년, K리거가 되다.




"대전에 오게 됐을 때는 좋았어요. 아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로 좋았어요. 대전은 오고 싶었던 팀이에요. 재미있게 축구하고, 숙소 생활도 재미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어떤 팀들은 잘하는 선수들끼리만 어울리고, 조금 실력이 낮다 싶으면 얕보고 그런대요. 그런데 전 그런 분위기가 싫어요. 듣기로 대전은 굉장히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했어요. 직접 와보니 진짜 그렇기도 하구요."


하지만 대전 시티즌은 가족적인 분위기를 가진 팀으로 소문이 난 만큼이나, 여건이 열악한 팀으로서도 소문이 나있다. 조금은 더 좋은 여건을 갖춘 팀에서 뛰고 싶지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져 대전은 여러 가지로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단박에 김형일은 웃음을 짓는다. 

"이런 줄 몰랐죠."


아니나 다를까. 김형일은 너무나도 솔직한 대답과 함께 웃음을 터트린다.


"진짜, 숙소가 이런 줄은 몰랐어요. 운동장이 없어서 돌아다니는 줄도 몰랐고. 제일 힘든 건, 숙소가 멀리 있는 거예요. 저는 지금 차가 없거든요. 사실 아직 운전 면허증도 없어요. 이상하게 전, 운전에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차가 없는데 운전 면허증을 왜 따야 하는지도 몰랐고. 지금도 꼭 따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겨울에는 딸 생각이에요."


여자들이 예쁜 옷에 유난스런 욕심을 내는 것처럼, 남자들은 멋진 차에 욕심을 낸다는데 김형일은 스물넷이 되도록 차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더불어 차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니까, 면허증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하는 스물 네 살의 청년.


"프로가 되고 나니까, 밖에서는 자유로워요. 그런데 운동장에선 더 타이트해졌죠. 대학교 때는 내가 공격적으로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그랬어요. 하지만 여기선 내가 골 잡으면 (상대 선수들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적응 중이에요."


프로가 되고 나서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묻자 경기장 밖에서의 생활과, 경기장 안에서의 생활을 나누어 대답한다. 경기장 밖에서 자유가 찾아왔다고 해서, 경기장 안에서 역시 무조건 자유를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김형일은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김형일은, 프로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 


'푸
욜'을 꿈꾸는 한국의 센데로스.
 



"삭발은 주장(강정훈 선수)이랑 부주장(정성훈 선수)이 괜찮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서, 그래서 했어요. 상대팀한테 강하게 보이라고 그러더라구요."


사실 처음 대전에 입단할 때만 해도 김형일은 삭발의 청년이 아니었다. 김형일은 노랗게 염색한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대학가를 걸으면 흔히 눈에 뜨이는 멋지고 세련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김형일은 파르라니 머리를 밀고는 밤톨 같아진 새까만 머리로 나타났다. 당시 최윤겸 감독이 머리를 짧게 자른 후, 대다수의 대전 선수들이 머리를 잘랐다고는 하지만 삭발을 한 것은 김형일 한 사람뿐이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머리가 잘 안 길어요."

  

“전 푸욜을 좋아해요. 스페인 선수, 푸욜. 그래서 머리 스타일도 똑같이 하려고 그랬어요. 계속 길러서 똑같이 해야지 했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이렇게 됐네요."


좋아하는 선수를 외모에서도 닮아보고자 기르고 있던 머리였으니, 삭발에 대한 아쉬움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삭발을 한 후, 김형일의 이미지가 한층 더 강인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후 그가 보여준 삭발 투혼은 ‘한국의 센데로스’라는 별명과 함께 ‘김형일’이라는 이름을 K리그 팬들에게 알린 계기가 되기도 했다. 4월 1일, 퍼플 아레나에서 펼쳐졌던 경남전에서 김형일은 처음으로 삭발을 한 채 경기에 나섰고 이 경기가 열린 후 축구 게시판에서는 ‘대전의 저 빡빡머리는 누구냐?’는 글들이 쏟아졌던 것이다.


“경남전 끝나고 베스트 11에 뽑혔을 때는, 기분 좋았죠. 부모님께 말씀 드렸더니, 자랑스러워하셨어요.”


경남전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문득 그 날 김형일이 속옷에 적어뒀던 메시지가 떠올라 당시 준비되어 있었던 대전 선수들의 속옷 세레모니에 관해 물어보았다.


"경기 들어가는 주전 형들 다 썼어요. 전 날, 정훈이 형이 지금 우리 팀이 이런 상황이니까 우리가 이런 걸 적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했거든요. 그래서 숙소에서 미리 적어간 형도 있고, 운동장 가서 적은 형들도 있고. 적긴 다 적었어요. 대부분 다 비슷한 말들을 적었던 것 같아요. 스승과 제자는 하나다. 우리는 가족이다. 감독님, 코치님 사랑해요…… 뭐 그런 것도 있었구요. 저는 영화 제목인 두사부일체를 썼죠. 사실 골 넣으면 유니폼 벗고 다 같이 세레모니하려고 했는데, 골 못 넣고 전반전 끝났잖아요. 그리고 하프타임 때 들어가려고 하는데, 정훈이 형이 유니폼 벗으라고 하더라구요."


그 경기에서 대전은 시종일관 경남을 밀어붙이고도 득점에 성공하지 못하여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팀 상황이 좋지 않았던 때인 만큼, 그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싶었던 탓일까. 경기를 끝냈을 때, 김형일의 표정은 침통해 보였다. 하지만 대전 서포터들은 90분 내내 최고의 수비를 펼친 김형일에게 감동을 받은 듯했고, 결국 경기가 끝난 후 자신들에게 인사를 하러 온 선수들 중 유독 김형일의 이름만을 크게 외치며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제 이름만 불러주신 것, 알고 있어요. 왜 그러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삭발해서? 머리가 아까워서? 왜 그런 거예요?"


그렇지만 김형일은 그 때 자신의 팀 서포터들이 어째서 자신의 이름만을 그토록 크게 외쳤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알고 있기는커녕, 질문을 던진 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되돌려 놓는 김형일.


김형일은 아직 모르는 것이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투지가,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은 자신의 집념이, 1분 1초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감동을 느끼게 하는지 말이다.


K리거가 된, 나의 첫 경기. 나의 첫 승리. 나의 첫 골. 


“울산전(3월 11일) 때 처음으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어요. 엔트리는 전날 나왔지만, 사실 그 전날부터 윤열이 형(최윤열 선수)이 아팠어요. 현규 형(장현규 선수)도 지금 부상 중이고. 그래서 백업 요원이 저밖에 없었으니까, 혹시 경기에 출전하게 되지 않을까 은근슬쩍 기대는 했는데…… 뭐, 출전은 못하고 끝났죠.” 


하지만 김형일은 K리그 데뷔를 위해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로부터 엿새 후, 김형일은 포항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날, 운동하는데 임코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셨어요. 내일 게임 들어갈 거니까 생각하고 있으라고. 그 얘기 듣고 완전 긴장했죠. 포항 가서는…… 어떻게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경기 내내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끝나고 나니까, 그냥 배가 고프더라구요. 정말로 너무 배가 고팠어요."


자신의 첫 K리그 경기를 떠올리자, 김형일은 그냥 웃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뿐이다. 그 얘기를 듣다 문득 생각이 나 ‘뭐 했는지 기억 안 나요? 경고 받으셨잖아요?’라고 되묻자, 이번에도 그냥 웃음뿐. 김형일의 K리그 데뷔전은 그렇게 웃음 속에만 묻혀 있다. 90분을 쉬지 않고 달렸지만 그럼에도 더 달려야만 할 것 같은 허기만을 남겨둔 채.


"전북전(4월 15일)에서 처음 이겼을 때는, 뭐 너무 좋았죠. 사실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수원전(4월 25일) 골은 사실 데닐손 골이죠. 저도 버스 타고 알았어요. 정훈이 형이 제 골로 됐다고 해서, 다들 축하 해주더라구요. 데닐손 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냥 고맙게 받았어요."


K리거가 된 후 뛰었던 자신의 첫 경기. 자신의 첫 승리. 자신의 첫 골.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동안 김형일은 시종일관 명쾌하다. 어떤 질문을 던지든 오래 고민하거나 망설이는 법이 없는 김형일은,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대화를 즐기는 사람 같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어쩐지 무척이나 자신만만해 보여 축구 선수로서의 포부도 당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신인으로서, 신인왕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을 던지자 김형일은 또 금세 고개를 흔들고야 만다.


"아니에요. 전반기도 이제 갓 시작했고, 대회도 많이 남았고, 이제 이만큼 한 것 가지고 신인왕을 욕심낼 수는 없죠. 그리고 전, 수비잖아요. 신인왕은 저보다는 태균이(하태균 선수)가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요. 수원에서 잘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김형일은 시원한 자신감 속에 조심스러운 겸손함을 숨기고 있다. 아니, 어쩌면 조용조용한 그 겸손한 얼굴 뒤에 아무도 쉬이 깎아내릴 수 없는 당찬 자신감이 감춰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성은정]



김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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