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아영 기자] 능력 있는 의사, 잘 나가는 기업인, 훈훈한 셰프, 완벽한 재벌 2세……. 큰 키와 부드러운 인상,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배우 이기우가 데뷔 13년 만에 악역에 도전했다. tvN 드라마 '기억'에서 내재된 폭력성을 세련된 외모로 감추고 있었던 신영진으로 분해 안방극장을 얼어붙게 했다.
이기우는 2014년 드라마 '꽃할배 수사대' 이후 2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으로 '기억'을 선택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역할이 의외였다. 늘 착하고 바른 이미지였던 이기우가 눈 하나 꿈쩍 않고 사람을 죽이는 악역이라니. 놀랍게도 이기우의 주변인들은 "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 제일 잘 어울린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이기우 역시 '기억'을 통해 "연기라는 게 그냥 대사만 전달하고 끝나는 게 아닌, 손가락 움직임 하나까지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또 '기억'을 통해 "공부 못하던 사람이 공부의 맛을 알게 된 것 같다"며 "연구하고 탐구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이면 사기꾼이든 뭐든 하고 싶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이기우의 말처럼 '기억' 신영진은 그를 공부하도록 했다. "나에게 주어진 장면 자체가 적었지 않은가. 그러니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전투적으로 연기했다. 선배님들의 연기, 할리우드 배우들의 연기를 찾아보고 신영진에 벤치마킹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찾아보고 저장해놨다가 소스로 활용했다. 머리를 쥐어짜 낸 아이디어가 방송에 고스란히 방송에 담겼을 때 성취감을 느꼈다."
캐릭터 차별화에도 신중을 기했다. 걸출한 악역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서 이기우가 택한 방법은 더욱 세밀한 캐릭터 분석이었다. SBS 드라마 '리멤버' 남궁민, 영화 '베테랑' 유아인과 외모에서 차별화를 주기 힘들었기 때문에, 대신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남궁민 선배는 불도저 같은 느낌이라면 나는 웃음 많고 어리숙한 캐릭터를 상상했다. 말투 역시 어린아이가 어른을 흉내 내듯 했다. 유아시기에 정체성이 멈춰 있고, 남자답지 않고 비열한 사람이 내가 생각한 신영진이었다. 사전 미팅에서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생각한 대로 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기억'은 이기우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이었다. '기억' 촬영 현장의 박찬홍 PD와 김지우 작가뿐만 아니라 배우 이성민, 김지수, 준호,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 모두가 기억에 남는다며 "좋은 팀과 함께해 첫 대본리딩부터 끝나는 날까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기억'에는 아이돌그룹 2PM의 준호가 출연했다. 이기우는 준호가 아이돌이라는 이유만으로 연기력을 폄하 당하는 게 속상하다는 속 깊은 형이다. 그는 준호를 가수가 아닌 배우로 생각했고, 그를 부를 때도 '이배우'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준호의 연기력이 인정받을 때 기분이 좋았고,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하길 바란다는 다정한 형이자 선배였다.
그렇다면 후배 이기우는 어떨까. 선배 이성민에 대해 "선배로서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고, 눈높이를 항상 저희에게 맞춰주신다. 경험이 많지 않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선배님들 덕분에 자기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갓성민'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도 "그런 별명 덕분에 '기억'을 선택하고 채널을 고정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다"며 웃었다.
패션모델에서 영화 '클래식'으로 깜짝 데뷔한 이기우는 지난 13년을 돌아봤을 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지 방향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기억'은 앞으로 10년간 잊지 못할 자극이 됐다.
"'기억'이라는 드라마를 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감독님, 스태프, 대본이 너무 좋은 에너지였다. 지금 이 기억을 잘 새겨뒀다가 앞으로 10년 동안 써먹으면서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30대를 더 많은 작품으로, 더 다양한 캐릭터를 연구하고 보여주는 시간으로 보낸다면 행복할 것이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lyy@xportsnews.com / 사진 = 위드메이
[XP인터뷰②] "야식·과식 좋아해"…우리가 몰랐던 이기우
이아영 기자 ly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