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희찬 기자] 여전히 골프팬들이 회자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1세대'. 박세리와 함께 빠지지 않는 이름이 '그레이스 박' 박지은(36,스포티즌)이다.
박지은은 2004년까지 메이저대회 1승 포함 LPGA 통산 6승을 거뒀다. '골프여왕' 박세리, '슈퍼땅콩' 김미현 등과 함께 태극낭자들의 미국 진출 물꼬를 튼 개척자 중 하나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부상이 매번 걸림돌이 됐다. 슬럼프도 함께 따라왔다. 신지애, 박인비 등 '세리 키즈'들이 곧바로 1세대의 빈자리를 메웠고, 박지은이라는 이름은 잊혀져갔다.
2012년 6월, 박지은은 "이제는 정말 그만둬야 할 때인 것 같다. KLPGA 투어 시드가 있는 만큼 쉬면서 거취를 고민하겠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2012년 6월 9일 해럴드경제).
하지만 이후 박지은을 KLPGA에서도 볼 수 없었다. 부상으로 힘들어했고, 가정을 꾸리고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소문이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박지은이 201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서 객원해설로 마이크를 잡고 팬들을 찾았다. 14일 대회가 열리는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박지은이 은퇴하게 된 이유, 엄마로서의 제2의 인생 등에 대해 속 시원히 털어놨다.
박지은은 자신의 은퇴 이유가 부상은 아니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레이스 박을 KLPGA 대회서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
"그러게 말이다. 해설은 이번이 3번째인 것 같다. LPGA는 내가 선수들을 대신해 뒷 이야기, 캐스터가 모르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다. 반면 KLPGA는 처음 (해설)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다. 솔직히 KLPGA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래도 날 불러준 만큼 거절할 수 없었다. 후배들의 시즌 마지막 대회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해설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은퇴가 빨랐다. 필드를 볼 때 설렌 마음은 없었나.
"은퇴가 빨랐나? 어쨌든 이제 설렐 시기는 지났다. 대신 카메라가 선수들을 잡아줄 때면 '아 나도 저 상황에서 저렇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옛일이 '데자뷔'처럼 스쳐 지나간다."
-정확한 은퇴 과정에 대해 알려진 게 없다. 많은 이들이 '부상'으로 은퇴했다고 알고 있다.
"절대 아니다. 나는 2012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은퇴할 생각이 없었다. (은퇴한 2012년부터) 한 2~3년은 더 선수생활을 할 줄 알았다. 부상도 없었다. 오히려 선수생활 마지막 해에는 모든 시합을 참가할 정도로 컨디션, 샷의 느낌 등이 모두 좋았다. 물론 약 5년간 슬럼프, 부상으로 고생한 건 맞다. 그러나 은퇴하기 전 마지막 두 해 동안 내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잘 쳤는데 은퇴라니.
"중학교 1학년때부터 객지 생활을 했다. 난 미국에서 생활했지만 한국사람이다. 모든 생활과 사고방식이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미국 진출 1세대이다 보니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결해야 했다. 매니지먼트는 행정적인 도움을 주는 게 끝이었다. 혼자 렌트카를 운전하고, 혼자 호텔 방에 있고. 그 생활을 99년부터 쭉 해왔다."
"애리조나에 살고 있던 중 미국 동부에 대회가 있어 비행기를 타야했다. 평소 같았다면 2~3일 전에 짐을 다 챙겨놨을텐데 그날은 출발 당일 낮까지 짐을 싸지 않고 버텼다. 시간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짐을 챙겨 비행기에 탔는데 우울했다. 대회장에 도착해 연습라운드를 치르는데도 우울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때 '아 도저히 투어생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가족들에게 은퇴 의사를 밝혔다."
-가족들도 놀랐을 텐데.
"아니다. 가족들은 '그래 그 정도면 됐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제일 잘 아는 분들이다. 농담으로도 그만두겠다고 한 적 없던 내가 은퇴 사실을 알리자 곧바로 알았다고 하셨다."
[심층 인터뷰②] 박지은 "인지야, '엔터테이너'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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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찬 기자 etwood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