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지은 기자] "이슈야 되겠지만, 내가 선택한 타자의 길이니까요."
나성범이 '깜짝 투수'로 나섰던 건 지난 24일, 마산 홈에서 있었던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였다. 양팀 모두 2승2패를 나눠가지며 마지막 1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권은 가려지는 상황,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NC가 4-6으로 패하면서 가을야구의 꿈은 플레이오프에서 그쳤다.
그만큼 중요한 경기였지만, 김경문 감독은 약속을 지켰다. NC가 4-6으로 패색이 짙던 9회초, 연세대 '에이스' 투수 출신 나성범이 마운드에 올랐다. 연습 경기에서만 투수로 등판하며 화제가 됐던 상황, 신경전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김경문 감독은 "가장 마지막 경기에 팬들을 위한 선물을 할 것이다"라며 설명했다. 결국 만원 관중의 앞에서 147km-147km-146km의 강속구를 뿌리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사실 나성범은 투수로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의 제안으로 타자로 전향한 뒤, 투수로는 한 번도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송구가 아닌 투구를 하는 건 근 3년만이었지만, 140대 후반의 강속구를 뿌렸다.
당시 타석에서 나성범을 상대해 땅볼로 물러났던 오재원(두산)은 "초구에서 류현진의 향기가 났다. 투수를 한참 안해서인지 마지막에 공의 힘이 조금 빠지면서 훅 꺾이는데 그게 더 위협적이었다. 147km의 커터성 공이 들어왔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나성범이 한국의 '나타니'가 돼야한다"며 투타 겸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21,니혼햄 파이터스) 얘기였다. 이 야구 천재는 개막전 첫 상대인 일본이 선발로 일찍부터 점찍었다. 190cm가 넘는 큰 키에서 직구 최구구속 160km까지 찍히는 강속구가 나온다. 슬라이더나 포크볼 등 변화구도 수준급인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에이스다. 방망이도 꽤 뜨거운 덕분에 투타 겸업을 하는 특이한 유형의 선수다. 나성범에게 '나타니'라는 칭호가 붙은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나성범도 간만에 떠오른 재미있던 기억으로 크게 웃었다. "팀이 계속 지는 상황에서 큰 게임이다 보니 솔직히 나갈 거라고 생각 못했다"며 "플레이오프라는 무대에서 공 4개로 두 타자를 상대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팬들을 위한 이벤트였는데,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내년에도 투수로 나설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No'를 외쳤다. 머릿 속엔 오직 '타자'뿐이었다. "안 그래도 재원이 형이 나한테 투수하라고 하더라"며 웃던 나성범은 "마운드에 오르면 분명 이슈야 될 것이다. 하지만 두 개는 어렵다. 내가 선택한 길은 타자이니 내년에도 하나만 하고 싶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타당했다. 제살 깎아먹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성범은 "사실 타자로 전향한 이후 피칭 그 때 딱 한 번 해봤다. 준비도 플레이오프 전 연습경기에서 등판했던 게 전부다"라며 "하지만 오히려 후회했다. 안 쓰던 근육이 전부 올라와서 팔부터 몸까지 알이 배겼다"라는 고백했다. 이어 "괜히 내가 내 선수생명을 짧게 만드는 일은 안 하겠다"고 강조했다.
"타자로 타석에 들어설 때보다 투수로 마운드에 오를 때 응원이 더 크더라고요." 재밌는 이벤트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빛이 나는 법. "타석에 섰을 때도 그만큼 큰 응원을 보내달라"며 너스레를 떠는 나성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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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number3tog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