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지은 기자] "내일 선발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나가면 좋지만 욕심은 안 내요."
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잠실에서 만난 이현호(23,두산)은 내심 피어나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3차전까지 유희관-니퍼트-장원준 3선발이 이미 모두 마운드에 올랐고, 4차전 선발로는 뉴페이스가 필요했다. 2차전 호투를 펼쳤던 이현호의 등판이 유력했지만, 이날 구원 등판할 경우 자연스레 다음날 선발 후보군에서는 제외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팀이 승리를 위해 나를 필요로하는 상황이 온다면 당연히 올라간다"며 힘주어 말했다.
대구 2차전에서 이현호는 8회 1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날 자신의 KS 첫 출전 기록은 1⅓이닝 1실점, 연속안타로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볼넷을 하나도 내주지 않고 정면승부 하며 아웃카운트를 하나하나 차분히 수확한 끝에 팀의 승리를 지켰다. 마무리 이현승이 지쳐가는 만큼, 이현호의 이런 모습은 두산 불펜의 활력소였다.
이날 경기를 두고 이현호는 "좌타자 두 명만 상대하라고 해서 짧게 던질 생각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게 잘 되다보니 다음 이닝까지 잘 던졌던 것 같다"며 "주자 신경쓰지 않고 점수와 아웃카운트를 바꾸자는 생각으로 공격적으로 피칭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1실점은 마음의 짐이었다. "투수는 점수를 안 줘야 한다. 팀이 이긴 건 좋지만 나는 만족 못 했다"라며 자평이 덧붙었다.
그래도 준플레이오프 3이닝 3피안타 3실점(2자책)에 비하면 준수한 성적이다. 볼넷도 2개나 내주면서 피해가는 피칭을 했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과한 책임감'을 버렸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현호는 "그때는 내가 잘해서 길게 던지고 막아야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젠 내가 못해서 짧게 던지더라도 다른 투수들이 해줄거라고 생각한다"며 차이를 설명했다.
"내가 아니라 누가 나가도 막으면 좋고 아님 다음 투수가 있다"는 이현호에게서는 신예답지 않은 여유가 있었다. 동료 투수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현호는 "내 눈에는 우리 팀 투수들이 제일 좋아보인다. 특히 현승이 형은 최고다. 내가 다 던지겠다는 생각 안 하고 뒤에서 형이 막아줄 거라고 생각한다"며 웃어보였다.
팀메이트에 대한 믿음은 야수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우려하던 취재진에게 이현호는 "투수들은 몸을 풀고 올라가면 오히려 덥다. 하지만 야수들은 수비하면서 가만히 서있으니까 춥게 느껴진다"며 "그래서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맞더라도 빠른 템포로 정면승부해서 타자들이 공을 빨리 치게해야 한다. 그러면 야수들이 잡아줄거다"고 답했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도 "그다지 떨리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들이었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죠. 우리 팀이 또 올라간다고 해도 제가 엔트리에 들지 안 들지는 모르잖아요." 결국 이현호는 '가문의 영광'이라던 4차전 선발 등판의 기회를 잡았다. 이날 3차전에서 장원준이 7⅔이닝을, 마무리 이현승이 남은 1⅓이닝을 소화한 덕분이었다. 이제 4차전까지 잡으면 두산의 시리즈 전적은 3승 1패, 자신이 반복해 말하던 '우승'의 문턱까지도 한껏 가까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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