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암살 작전을 다룬 이야기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데…".
최동훈 감독이 마음속에 담아왔던 생각을 조심스레 꺼냈을 때, 많은 이들은 '그게 될까?'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930년대 영화는 통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징크스. 그리고 실제 이를 실행으로 옮기려면 예산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하고 싶고, 만들고 싶었던 최 감독의 뚝심은 2년 반이라는 시간을 거쳐 '암살'이라는 작품으로 세상의 빛을 봤다. 그리고 그 영화는 상반기 한국영화의 부진을 깨준 시발점이 됨과 동시에, 개봉 17일째인 8월 7일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관객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200억이 넘는 높은 제작비로 최 감독의 어깨에 부담감을 더하기도 했지만, 이미 손익분기점인 7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불패'인 그의 입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최 감독을 만난 날은 '암살' 개봉 후 3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이날 '암살'은 100만 관객을 기록, 2015년 한국 영화 중 최단 기간 100만 명을 돌파하며 일찌감치 흥행 예고를 한 때이기도 했다.
"2년 반 동안 작품만 생각하고 산 것이어서, 이제는 다 끝났구나 싶기도 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집에 가서도 이 작품에 나온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에서 긴 시간 품어온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최 감독을 서울 이화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케이퍼필름에서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눠봤다.
▲ "'암살' 속 여성 캐릭터, 도구로 쓰고 싶지 않았다"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 등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던 운명을 그려내고 있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출연진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것은 물론, 작품을 이끄는 인물로 독립군 안옥윤을 연기한 전지현을 전면에 내세운 것 또한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최 감독은 "여성캐릭터를 도구로 쓰고 싶지는 않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 '타짜' 속 김혜수가 연기했던 정마담을 언급하며 "'타짜'에서 (김)혜수 씨도 분량 자체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극 전체를 흔드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다. 원래 센 여자가 나오는 것을 선호한다. 그만큼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전지현에 대해서도 "(전)지현 씨는 정말 잘했다. 훌륭한 배우들이 갖고 있는 그런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매우 즐거웠다"며 흡족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액션이 굳이 남자의 영역은 아니다'라는 그의 생각도 포함돼 있다. 최 감독은 "여성 감독이 찍는 액션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남자가 찍는 것과는 또 다른 시각에서의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라며 자신이 바라는 바를 살짝 덧붙였다.
이처럼 '스토리 속에 캐릭터가 묻히면 안 된다'는 최 감독의 생각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으며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냈다. 이는 극 중 황덕삼을 연기한 최덕문을 비롯해 김구 역의 김홍파와 카와구치 역의 박병은, 사사키 역의 정인겸, 명우 역의 허지원 등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한 모습에서 그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최 감독은 "'암살'이 재밌길 바란다. 물론 그 재미의 영역이 굉장히 넓지만, '암살' 속 캐릭터들은 특히 더 극적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잔상이 보는 이들에게도 여운을 주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 "다섯 번째 연출작 '암살', 나를 돌아보게 만든 작품"
앞선 제작보고회나 언론시사회 등에서 언급됐듯이, 최 감독은 '암살'을 만들기 위해 1년 간 썼던 시나리오를 폐기처분 하는 등 쉽지만은 않은 시간을 거쳐 왔다.
촬영에 들어가면 테이블에 어떤 컵을 놓고, 커튼은 무슨 색깔로 정할지 또 엑스트라는 몇 명이 필요한지, 액션 신을 찍을 때는 2층과 1층에서 각각 몇 명이 죽는지, 또 총은 어디에 맞는지 아주 작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감독의 일상이다.
요즘에는 한 갑 반으로 줄었지만, 그렇게 한창 촬영 때는 하루 세 갑의 담배는 기본, 감독들의 직업병이라는 불면증까지 안고 살며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 또 집중했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하는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이 있어 힘든 것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최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캐스팅이 굉장히 중요하다. 배우가 걷고 말하는 게 그 영화의 온도, 색깔, 향기처럼 운명을 만들어가니까. 그래서 원하는 캐스팅을 얻기 위해서는 첫 번째 관객인 배우들을 위해 시나리오를 열심히 써야 하는 거다"라고 웃으며 "나와 배우가 시나리오를 보고 생각한 것이 같으면 정말 좋은 거다. 그건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난 이번 작품이 다섯 번째 연출작이지만, 스태프들은 보통 여러 작품을 하지 않나. 경험 많은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얻어갈 게 정말 많더라"고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그에게 '암살'은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전우치(2009), '도둑들(2012)'에 이은 다섯 번째 연출작이다. '도둑들'로는 129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 감독'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얻었다.
그렇게 '최동훈'이라는 이름 석 자에 주어진 주변의 기대. 최 감독은 "물론 부담감이 많지만, 그건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얘기니까 나에겐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운이 좋다는 생각도 한다. 부담감이 떨쳐진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니, 인정하고 가는 거다"라며 다시 한 번 웃음을 보였다.
'암살'을 '나를 돌아보게 만든 영화'라고 정의한 그는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걸 하고 싶었고, 이걸 하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상처를 입더라도 올라가고 싶은 험한 산처럼 꼭 해보고 싶고 꼭 가보고 싶었다"며 작품을 시작했을 당시의 마음을 다시 되새겼다.
개봉 후에는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못 보겠다고 말한 최 감독은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뿌듯함과 미안함이 늘 공존했던 것 같다. '다음엔 더 잘 찍어야지, 소통도 잘 하고 더 잘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이 든다"며 현재의 흥행 기쁨에 도취되지 않고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러면서 "이제 점점 밑천이 떨어져가고 있다. 다시 책 보고 음악도 듣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보면서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전했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되서도 찍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러닝타임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시는데,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자면 '타짜'보다 1분 적다. 편집을 하고 또 하면서 7분을 줄여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재미가 없어지더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만들어낸 139분의 이야기. 이미 '암살'을 만난 8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의 숫자가 긴 러닝타임을 생각할 틈 없이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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